신약강해/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 서론) 두 가지 배경

이요나 2007. 6. 28. 16:15

(히브리서 서론) 두 가지 배경

오늘부터 우리는 히브리서를 공부할 차례입니다. 히브리서는 정경에 속한 일에까지 많은 논란이 있으나 히브리서는 성경 66권 중 그 어느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서신 속에 작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내용의 문체나 그 지식 그리고 편지 끝에 디모데(13:23)를 언급한 것이나 또 이탈리아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한다는 내용들로 보아 이 서신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썼음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쓴 시기는 네로황제의 폭정(64년) 이후 70년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당시 대부분의 사도들은 순교를 당했고 육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바울은 다시 이어질 박해를 예견하면서  그 당시 네로황제의 박해로 투쟁의 믿음을 상실하고 유대교와 헬라사상으로 회귀하려는 히브리인들에게 그들이 미쳐 깨닫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일깨워야 할 필요성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붕괴 이후 복음의 물결은 바울을 중심으로 전 로마 지역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유대인들과 종교적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믿는 유대인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히브리적 종교관을 보고 많은 고심했을 것입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유대교적 율법 의식과 종교적 경륜을 갖고 있었음에도 복음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 관계로 진취적인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교리로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히브리서를 공부하기 전에 이해하여야 할 것은 그
 시대를 이끌고 가던 두가지 사상입니다. 그 하나는 유대인의 헤브라이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헬라니즘입니다. 히브리 사상은 유대교적 종교적 이념과 사상이었고 헬라니즘은 플로톤 이래  당대 유명한 철학 교부들로 이어져 500년동안 신지식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I.
헬라사상
그당시
  세상 사람들은 플라톤의 주장한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어딘가에 완전한 형(形) 또는 개념이  있어 이 지구상에 있는 피조물은 모두 불안전한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사람들은 피조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원형에 도달하려는 이상적인 노력에 빠졌으며 고도의 훈련을 통해 선지식을 깨달은 지식인들만이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 원형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들의 논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복음의 물결이 일어나자 결국 그들은
 복음을 대적하는 그노시스 사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러한 헬라사상은 자연스럽게 유대교의 히브리 사상과 접목하여 하나님은 피조물의 세계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도 먼저 이상의 세계를 창조하신 후 그 영의 존재로부터 가시적인 피조물을 창조하였다는 괴변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라 한 것입니다.

이러한 헬라철학의 개념 즉 불안전한 그림자의 세계로부터 완전한 세계로의 이상적인 접근을 추구하는 헬라사람들에게 복음적으로 접근한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에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창조적 영적 개념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II. 히브리사상
헬라문화의 터 위에
 전세계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한 로마시대에 만연된 두번째 사상은 유대인의 히브리 사상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증오의 원인인 선민사상이기도 하며 수쳔년 동안 전쟁을 일으킨 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모든 선민의식 속에서 어느 시대이고 간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종교적 노력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종교적 열정은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추구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유대인의 열정은
 구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모형제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 왔고, 이방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을 찾아가던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였으나 생명이 보전되었다"(창32:40)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을 갈망하여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를 만나고 살자가 없다"(출33:20)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는 사십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아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유대인의
 열정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계약이라는 방법으로 실행 되었는데 그것이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율법을 주셨는데(출24:3-8) 이스라엘 민족은 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 하셨는데 그것이 속죄일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제정한 성막의 지성소에서 일년에 단 한번 속죄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시는데 그곳은 아무나 들어 갈 수 없고 아론의 자손으로 부름받은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도 인간이므로 죄성을 갖고 있어서 그 죄를 없이하기 위해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자신과 백성의 죄를 사하는 의식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 위엄과 두려움 때문에 제사장은 지성소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대제사장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시간이 오래 경과하자 백성들이 불안해 했던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짐승의 피로는 인간의 죄를 영원히 없앨 수
 없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끊임없는 희생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추구하던  인간의 이상적 목표와 종교적 비전을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 책입니다. 바울은 히브리인들의 역사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발자취를 기록한 경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그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