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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1:9)영혼의 구원

이요나 2007. 6. 28. 16:24

(베드로전서1:9)영혼의 구원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 사도는 3절에서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 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한 소망이 있게 하시며"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거듭남의 은혜를 찬송한 것으로 베드로는 우리의 거듭남의 역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가운데 죽으신 아들을  부활케 하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거듭남은 중생을 말한 것으로 우리가 주를 믿을 때 나타나는 성령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후에 일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불안과 고통의 날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듭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소망이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I. 부활의 산 소망(3-12)
베드로는 그의 부활의 목적에 설명하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재물을 모으려 애를 씁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모두 썩고 더러우며 낡아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 것이므로 거룩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아버지께 받으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이 나라는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고 그의 다시 오심으로 우주만물 앞에 밝히 나타날 것입니다. 바울은 피조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하였습니다. 주를 믿는 우리는 성령의 거듭남 속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그 기업을 물려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기업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믿는 자의 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만약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사도들은 왜 재물의 풍족함을 버리고 그 죽음의 고통을 자처했을까요? 그들은 과연 주의 은혜와 평강을 얻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세의 약속을 믿고 자신을 주께 드렸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막10:30)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금세와 내세의 받을 약속 중에 핍박이란 조건부가 있음을 기억해 합니다

II. 구원의 믿음
베드로 사도는 5절에서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또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로마교회를 향하여 '우리가 자다가 깰 때가 가까웠나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하였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하루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우리가 일어남과 동시에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전 10시도 하루이고 오후 5시도 하루에 속한 것이며 밤 12시도 하루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과수원에 들어가 일한 자들의 비유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주의 오심까지
 설정된 것으로 다만 구원의 섭리는 각 사람에게 다르게 적용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늘 믿음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과 능력은 오늘을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그의
 예비하신 그날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험의 때
이에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기뻐하도다'하였으며 계속하여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아마 이것은 믿음의 연단 속에서 시련을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부귀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재물의 복이 영원하기를 소망할 것이며 그것이 주의 축복이라 생각할 것입니다만 그것은 오히려 믿음의 걸림돌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그들이 천국에 들어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힘들다 하셨습니다.

  *영혼의 구원
베드로 사도는 8절에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줄거움으로 기뻐하나니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예수를 보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는 모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이 구원에 이르렀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는
 어떤 사람이 영혼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이 있던가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만족을 얻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이미 구원에 이르른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는 구원에 관하여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이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하였습니다.
 

  *성경공부
우리가 성경을 살펴 보건데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선지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의 날과 평강의 날을 소망하여 곧 오실 주를 찬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를 보지 못하고 본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장차 주의 오심을 예비할 백성을 위해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기록하였으며 다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기록하였습니다. 이 외침은 모두 주 오시기 전 수백년전에 그의 선지자들로 하신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 위한 것이니라"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지금 우리가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이 모두 아직 이 땅에 이르지 못한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그들이 모두 그 말씀 속에서 자기 안의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듯이 우리 또한 성경의 말씀을 상고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