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23) "베들레헴에서 나사렛까지"
(마2:23)"나사렛이란 동네에 와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2)
A. 계시의 발견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살펴 보게 된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하여 이 기뿐 소식이 주께서 택한 백성 유대인에게 주어졌으나 그에 대한 계시적 발견은 흥미롭게도 이방인에게 의해서 실현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 가운데서 성취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예정을 성취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경륜이라 할 수 있다.
마태는 서두에서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더라"(1-3) 기록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동방박사란 옛 갈대아 우르인 페르샤 지역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곳은 바벨론 제국의 영광이 서기 전부터 종교적 신비가 가득했던 지역으로 이방인 선지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발람 선지자도 이 지역 사람이다. 또한 욥기에 나오는 욥의 친구들도 동방 사람들이다.
흥미롭게도 수천년 동안 성경적 계시를 통하여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 왔던 유대인들은 민족적 대망의 메시야가 탄생한 시각에도 그 위대한 시간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직 율법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열심을 다하며 막연히 그들의 주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모순 된 믿음의 상태는 교리적 모순에 빠져 현실의 복을 기원하는 우리 교회의 모습과도 같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는 기록 속에서 우리는 택함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 속에서도 천지만물의 조화를통하여 하나님의 예정을 계시하셨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증거하였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유대를 방문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그들은 낙타를 타고 박사의 행렬에 걸맞는 복장과 위세를 갖추었을 것이다. 이 소동으로 헤롯왕은 유대의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 곧 메시야가 어디서 나겠느냐 묻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공론 끝에 '유대 베들레헴' 이라 대답하였다. 그것은 마가서 5장 2절에 "또 유대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들은 그 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말씀을 믿었다면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흔적을 찾아 나섰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적 관심을 갖고 있던 헤롯 왕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그들을 먼저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라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8) 당부하였다. 물론 헤롯이 그를 경배한다는 말을 거짓말이다.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탄생은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과 주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이 갖고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 이단들이 재림에 대하여 열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9절에는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기록되었다. 이들이 처음 본 별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가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난 별은 동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별이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렀다는 말로 하여 사람들은 예수께서 막 말의 구유에서 태어났을 때를 연상하지만 사실 이 때는 예수께서 태어나신 지 1,2년이 경과된 때라고 보아야 한다. 헤롯왕도 나중에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였다고 하였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와 모친 마리아를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11).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고 아기께 경배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교회의 장자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카톨릭 교회는 아직도 마리아에게 경배를 하고 있는 것은 성경에서 떨어져 나가도 한참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다. 여기서 황금은 왕을 지칭하며, 또한 유황은 제사장직무를 의미하고 몰약은 죽음 사람의 매장을 위한 향품이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예물이 아닐 수 없다.
B. 헤롯대왕(BC40-BC4)
여기서 우리는 헤롯 왕에 대하여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헤롯은 에서의 마지막 후손 곧 에돔사람으로 기원 전 40년에서 BC 4년 사이에 생존하여 로마의 옥타비얀과 안토니아에 의에 유대의 왕이 되었다. 그는 120센치의 아주 작은 키로 편집광적인 증세를 갖고 있어 사람을 믿지 못하였고 시시 때때로 마음이 변하여 그의 생각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으로 다섯명의 처에게서 일곱의 아들을 낳았다.
그는 명실공히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하고, 제사장 하몬스 가문의 상속자 미리암느(Mariamne)와 결혼하였으나 막강한 제사장 가문의 세력으로 정치적 위협을 느끼자 제사장과 아내 미리암느와 그에게서 난 아들 아리스토블르스와 알렉산더까지도 살해하였다. 그로하여 세간에 '헤롯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보다 그의 돼지가 되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이 생겨났다.
헤롯은 건축에 특별한 조예가 있어 예루살렘 대성전과 헤롯궁전, 알렉산더 궁전 등을 건축하였고 예루살렘의 문제점 중의 하나인 급수시설을 시설하였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던 유대의 영토를 자신의 세 아들들에게 분할하여 나누어 주었는데 헤롯 빌립 2세는 이두메, 드라고닛 분봉왕으로, 3000명의 유대인 학살한 아켈레오에게는 유대 사마리아와 이두메 왕으로 헤롯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봉하였다. 이들에 관하여는 추후에 다시 살펴 보도록 하자.
II. 네 번의 꿈과 네 번의 말씀의 성취
A. 4번의 꿈
흥미롭게도 우리는 메시야 탄생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4번의 꿈을 통하여 인도하신 사실과 또한 네 번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 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네 번의 꿈에 관하여 살펴 보자.
12절에는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함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현몽한 꿈이다. 오늘날도 꿈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지만 성경에는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서의 꿈의 현몽이란 주께서 그의 부르신 자들의 잠든 무의식을 열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한 일들을 미리 보여 주실 때 사용되었다. 이것은 환상과 또 다른 것으로 환상은 앞날의 비전을 보여 주신 것이라면 꿈은 행하여야 할 일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후 나타난 두번째 꿈은 요셉에게 주어졌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하니 일어나 그의 모친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 내가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13) 한 것이다.
세번째 꿈은 19절에서 다시 소개 되고 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게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였다.
요셉은 주의 사자의 현몽을 따라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 왔지만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의 임금이 됨을 듣고 갈릴리 지방으로 들어 가기를 두려워 하니 다시 꿈으로 지시함을 받은 사실이 기록되었다. 요셉은 그당시 아켈라오가 유대인 3000명을 살해한 사건을 알고 있어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은 현실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음과 계시된 꿈은 지시를 받은 사람의 믿음과 직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요셉이 얼마나 실천적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B. 네 번의 말씀의 성취
또 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네 번의 성경말씀이 성취 된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5절의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미가5:2)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 믿던지 말던지 그대로 성취 되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말씀은 스스로 권위를 갖고 있어서 사람들의 믿음과 관계 없이 예정하신 때에 그대로 성취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두번째 성취된 말씀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기록된 15절 말씀이다. 사실 이 말씀은 호세야 11장1절의 말씀으로 구약의 본문 배경과 다른 의미에서 해석되었다. 다시 말해 15절에서의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의 인용은 예수께서 이집트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인데, 호세아는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솔직히 말해 호세아의 말씀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향한 예언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는 역사적 사실의 당연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의도적으로 역사적 진술을 예언으로 바꾸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성경적 예언의 이중성과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에서의 베들레헴에서의 나심은 사람들의 믿음과 관계 없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속성을 설명한 것이라면 이 사건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 내신 구원 섭리의 영원성을 역설한 것으로 미래 지향적인 구원의 속성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의인 요셉은 이 역사적 사실을 예언적 계시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는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세번째 성취된 말씀은 17절의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음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 졌느니라"는 말씀이다. 흥미로운 것은 앞에서는 '이루려 하심'이라 기록한 데 비하여 여기서는 '이루어졌다'고 완료형을 사용한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해 이 예언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야곱의 사랑하는 처 라헬을 지칭하여 또 다른 이중적 예언을 언급한 것이다. 라마는 야곱의 처 라헬의 소생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라마는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던 중 풀려난 곳으로(렘40:1) 유다를 멸망시킨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 백성을 라마에서 집결하여 포로로 끌고 갔다. 그러므로 지금 마태는 헤롯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한 사건을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역사적 사실에 적용한 것이다.
끝으로 마태는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23) 기록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나사렛이라는 말은 구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신약에서 여러 번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요1:46, 18:4, 19:19, 행24:5)
우리가 굳이 구약에서 이 말씀을 연관 지으려 한다면 이사야 11장 1절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란 말씀에서 '가지'에 해당하는 단어 '네체르'는 '베어 넘어 뜨린다'는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민수기에 소개되는 태어남으로부터 선별된 나실인의 원어가 '나지르'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사역적 소명을 의미하는 데서 그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이 나사렛이라고 확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루려 하심'이라는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예언은 구약과 신약 그 모든 말씀 속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태는 1장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속한 모든 일들이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곧 성경의 무오함과 권위를 내포한 것이라 하겠다.
III. 메시아 탄생에 대한 4종류의 사람들의 반응
여기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내 부류의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 보자. 먼저 동방박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별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 알았으며 별의 인도함을 따라 그 먼길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정말 믿음의 모험을 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만왕의 왕이신 메시야를 만날 것을 믿고 예물을 준비하였으며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예물을 드렸다. 또한 그들은 꿈의 지시를 받고 헤롯대왕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길로 돌아가는 용기 있는 믿음의 결단을 실행하였다.
두번째 소개된 그룹은 헤롯대왕이다. 그는 소문을 듣고 그 소문의 근거를 알기 위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들여 성경적 증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소문의 근거인 동방박사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회유하고 예수의 탄생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였으며, 동방박사들이 자기를 속인 것을 알고는 곧바로 베들레헴 일대의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였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또 다른 그룹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제자장의 직무와 하나님의 말씀 맡은 신적 권위자들로서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백성들의 스승이며 민족의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보전하며 가르칠 의미가 있는 사람들로서 성경적 권위에 서 있는 집단이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대하여 믿지 않고 있었으며 동방박사의 출현에도 이론적인 근거만을 제시할 뿐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오늘날 신학적 교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권위만을 앞 세우는 목사들과 신학교 교수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성경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사람은 요셉과 마리아다. 그들은 숫한 고난과 비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오직 믿음으로 인도함을 받는 순종의 삶을 살았다. 이들은 자기들 속에서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목격하며 이 땅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처음으로 섬긴 의인들이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의 삶이다. 나는 이들에게 아직도 신적인 권위가 역사하여 그들이 주를 뵈올 때까지 주의 사자들의 인도를 받을 것이라 믿는다.
'신약강해 > 마태복음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5:20) "의의 필요성" (0) | 2007.09.01 |
---|---|
(마태5:11) "복된 사람"(BLESSED PERSON) (0) | 2007.08.27 |
(마태4:23) 메시야 사역의 출발 (0) | 2007.08.18 |
(마태3:2) "천국" (The Kingdom of Heaven) (0) | 2007.08.12 |
(마태복음1:22) 예언의 성취 (0) | 2007.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