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3:2) "천국" (The Kingdom of Heaven)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은 3장은 400년 동안 침묵을 깨고 수천년 동안 계시되어 온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이 그의 말씀으로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숙원인 역사 속에 상실한 다윗왕국의 재건이며 곧 이스라엘 왕국의 도래를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 마태는 유대인의 정신과 마음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A. 정치적 배경(누가3:1)
여기서 ‘그 때에’란 언제를 의미하는가? 이것은 바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의미한다. 마태는 그 당시 정치적 배경을 직접 기록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누가복음 3장에서 “티베리우스 가이샤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인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1,2)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티베리우스 황제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란 그 당시 로마 황제는 가이사 아우구스토와 티베리우스가 함께 통치를 한 일이 있었는데 황제 아우구투스가 집권 14년 8월에 죽자, 원로원의 결정으로 티베리우스가 14년째 8월부터 2년간 통치를 하였다. 또한 헤롯대왕이 죽은 후 그가 통치하던 지역들은 넷으로 나누어 그의 아들들을 분봉왕으로 세웠으며 로마정부의 행정대리인으로는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부임되었다.
B. 종교적 배경(누가3:2)
또한 그 당시 유대인의 종교적 지배는 서기관 세력은 바리새인과 제사장 출신인 사두개인들이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각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 때의 대제사장은 가야바로서 그의 장인 안나스와 함께 종교적 실권을 쥐고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였으며(요18:12,13) 또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였다(행4:6). 대제사장 스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이 등장하여 활동한 때는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된지 11년 째이다.
II.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의 실현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3)
A. 세례 요한의 설교 - 400년간의 침묵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지 400년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중심으로한 종교적인 생활 속에서 메시야의 나라가 오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이 때 고요한 침묵을 깨고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 된 것이다.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메시지는 신약의 시작과 복음의 핵심이며 구약의 종결을 알리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의해 다시 증거되었으며 오늘날 우리 교회의 사명적 메시지이기도 하다(마4:17; 행 2:38; 17:30). 이때가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때를 기다리시며 평범하고 조용한 생활을 해 오셨다(요한3:22-36).
B. 회개(Repentance)의 정의
요한은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회개’(Repentance) 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회개는 구원의 첫 단계로서 베드로는 그의 메시지를 듣고 탄식하는 회중들을 향하여“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외쳤다. 그러므로 복음의 초성은 ‘회개하라’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출입구이다.
회개는 두 가지로 정의 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마음을 바꾸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통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하나로서 통회의 마음이 없이는 회개할 수 없으며 회개한 사람은 통회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회개 없이도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후회나 비애를 느낄 수 있으며 통회하는 마음을 갖고도 회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잘못에 대한 통회를 느끼고 회개를 한 후에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였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참된 회개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태는 3절에서 세례 요한을 소개하여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3) 하였다. 이 증거는 세례 요한이 서기관들의 물음에 직접 대답한 예언의 응답이기도 하다(요1:22,2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예비된 자들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근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누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름부어 복음을 전하라 하셨다 말하면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말씀이 아닌 것을 전하던가 또 잘못된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는 천국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러 온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이단교주들의 특색이다.
또한 마태는 세례 요한을 증거하여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4) 증거하였다. 사실 세례 요한은 그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집도하는 명문 제사장의 가문으로서 가만히만 있어도 평생 비단옷을 입고 정치세도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 살며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을 소개하며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하셨으며 율법과 요한은 세례 요한의 때까지라 말씀하셨다. 사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친히 오시기로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한 자로서 예수께 침례를 베푼 자이다.
오늘날 곧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이 땅에는 수많은 복음 사역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사역의 정당성을 필력하며 거대한 교회를 이끌어 가지만 솔직히 말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빙자하여 자기 왕국을 세우고 있다.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서기관과 대제사장처럼 현실 세계에 주역이 되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려 있는지 의심스럽다.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의 반응은 대단하였다. 마가는 온 예루살렘과 유대 사람들이 다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라고 기록하였다. 누가에 의하면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며 세금장이들과 군인들도 있었다(눅3:10-14). 이 거대한 세례 요한의 침례는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의 대립의 계기가 되었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베푸는 자기를 향하여 냉소하는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7) 고 독설을 퍼부었다. 사실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무슨 권한으로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푸느냐 질타하였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랍비, 율법사, 서기관들로서 천사도 믿고 부활도 믿지만 율법을 따라 의식적 종교생활을 강요하는 사람들로서 그 당시 유대인 세력을 중추적 세력이었다. 또한 사두개인은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결집된 종교그룹으로 그들은 천사나 부활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며 물질주의자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직도 이러한 그룹들이 우리 교회의 중추적 세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C. 천국의 정의(The Kingdom of Heaven)
이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외친 바 ‘천국’ (The Kingdom of Heaven)에 대한 정의를 해보자. 흥미롭게도 천국이란 단어는 마태복음에서만 소개되고 있다. 물론 다른 복음서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 ‘하늘나라’ (Heavenly Kingdom)과 같이 동일한 개념의 단어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이것은 서로 다른 메시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계시록에 소개된 ‘마흔 두달’이 ‘일천육백삼십일’ ‘한 때 두 때 세 때’와 동일한 기간임에도 전혀 다른 메시지를 갖고 있듯이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는 모두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와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는 이러한 어원적 개념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태는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라고 하였고 다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기록하였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차라리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마10:6,7) 하셨고,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말씀하셨다.
이 말씀들은 세례 요한이 선포한 ‘천국’ 개념으로 모두 이 땅에서의 실제적인 통치왕국과 관련이 있다. 마태가 이처럼 이 땅에서의 실존적인 왕국 개념인 ‘천국’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야 사상과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열방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고 야곱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35:11)하신 언약의 말씀을 믿고 있다.
사실 동방박사들도 이러한 개념으로 유대인의 왕이신 메시야를 찾아 나선 것이며, 헤롯이 2살 이후의 사내아이들을 죽인 사건도 그가 메시야에 대한 실제적인 사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 당시 주께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요6:15).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천국이 가까웠다’는 선언은 메시야로 출발할 이 땅에서의 실제적인 메시야 왕국을 언급한 것으로 이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과 함께 시작되어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이념과 사상적 틀인 교회 곧, 믿음의 왕국이 세워진 것이며, 인간의 왕국의 멸망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땅의 모든 성도가 소망하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실현 될 것이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 20장에 상세히 기록되었다.
그러면 누가복음 6장 20절에 소개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의미하지만 메시야가 이 땅에서의 통치권을 갖고 온 왕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이 땅에서 출발할 믿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5) 하셨으며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증거하였다. 지금 우리는 이 세계에 머물고 있으며 우리 성도들의 실제적 주소는 ‘천국’인 것이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삼층천 하늘에 들려 갔다 온 일을 기록하여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4) 증거하였으며 디모데후서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8) 기록하였다.
이것은 모두 우리 성도들이 육체의 시간을 다한 후 들어 갈 하늘보좌에 속한 ‘하늘나라’(Heavenly Kingdm)를 말한 것으로 이 나라들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사나 죽으나 다시 살아 난 후라도 그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다. 성경은 인간이 통치하는 세상이 다 한 후에 장차 올 날을 말하여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라”(계11:15) 기록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 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
D. 합당한 열매(마7:15-27)
계속하여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그러므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8,9)증거하였다.
여기서 ‘합당한 열매’란 회개의 변화의 시작을 말한다. 만약 누가 회개를 하였다 하면서도 계속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을 한다면 그는 변화된 것도 아니며 회개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처럼 종교적 활동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지 말라’는 말은 흥미롭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과도 같다. 다시 말하여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복이 보장된 사람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이들을 향해 요한은 “이에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10) 하였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말씀하셨으며 계속하여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셨다.
또한 우리는 시장기를 면하고자 무화과나무에 가시니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다시는 너에게서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 그 다음날 베드로가 그곳을 지나다 보니 나무가 뿌리 채 말라 죽은 것을 보고 ‘주여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고하였다(막11:12-14)
사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10절에서 세례 요한이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한 것은 이스라엘의 처한 계시적 현실을 언급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열매를 내지 않으므로 결국 그 나무는 찍혀 버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주님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하셨고 다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셨다.
E. 요한의 메시야 증언(11-12)
이제 세례 요한은 천국의 시초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소개하여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1, 12) 증거하였다.
요한의 자신의 사명의 목적에 대하여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라고 증거하였다. 요한복음에서 그는 내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기 위함이라 증거하였다.
사실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물론 그는 예수님과 같이 병자를 고치고 소경을 눈뜨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아니지만 그의 메시지를 듣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두 감동을 받아 회개의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5).
누가는 이 일을 증거하여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눅7:29,30) 기록하였다. 이처럼 그의 메시지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권세가 역사했던 것이다.
1970년대 미국 전역에 불어 온 갈보리채플의 침례 사건은 ‘타임즈’지에 소개된바 있다. 수천명의 젊은 히피들이 줄을 지어 척 스미스 목사 앞으로 나아와 침례를 받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일어난 예수운동의 시작이 되었으며 수많은 히피들이 회개하여 복음의 대열로 들어와 오늘의 갈보리채플 주역에 되었다.
세례 요한은 먼저 그의 ‘능력’(Power)을 말하였으며 두번째는 그의 ‘목적’(Purpose)에 대하여 그리고 ‘정화’(Purging)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주의 능력에 대하여 ‘자기보다 강하다’ 증거하였으며 그의 목적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는 것과 ‘정화’에 대하여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태워 버린다’ 증거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과 불의 세례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성경은 성령세례에 대하여는 많은 설명을 하였지만 불 세례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마가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리라’(막9:43) 하시며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막9:49) 하셨다.
III. 에수 그리스도도의 세례(13-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들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6)
A. 세례 요한의 영성(13-14)
이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세상의 자연계 질서를 벗어난 일로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인식되고 보여지는 영적 세계의 일이다.
13절에는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나에게 오시나이까” 라고 기록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알고 이 말을 한 것인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그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요1:33,34)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신 예수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나에게 오시나이까?’ 한 것은 아직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표적이 나타나신 바 없지만 그의 모친으로부터 성령으로 잉태하신 바 된 예수님의 기이한 탄생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말씀을 믿어 그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 보았을 것이다.
B. 주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15)
여기서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왜 침례를 받아야 했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어 사람이 침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얻으리니”(행2:38)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구원은 회개로 이루어진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는 그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에 동참하여 그와 한 몸을 이루는 믿음의 의식인 것이다(롬6:3,4)
세례 요한의 만류에 예수님은 그에게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 하셨다. 사실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출생하셨다. 마리아와 그의 모친은 친척인 고로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에 관한 정보와 탄생에 대한 사실들은 서로 갖고 있었을 것이며 양가는 서로 절친한 믿음의 왕래를 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씀은 또 우리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사역의 질서를 의미한 것으로 미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세례 요한에게 속한 사역적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세습 사건이나 담임목사와 부사역자와의 갈등은 참으로 민망하다. 그들이 서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는데 어떻게 의로운 자로서의 복음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성경에 기록된 바 하나님의 예정하신 일들이 현실 가운데 나타나시기 전까지 평범한 사람으로 자기의 삶을 사셨다. 나는 이 땅의 모든 사역자들은 자기의 때를 분변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C. 이상의 세계
마태는 16절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흥미로운 사건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먼저 우리는 ‘하늘이 열렸다’는 신비의 세계를 보게 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만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사건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 보신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 가운데 공개적인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미 누구든지 성령이 비둘기같이 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이심을 알라 하셨다 증거하였으므로 성령이 알게 하신 사람에게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아나니아에게 인도되어 안수를 받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었으며 또한 베드로와 고넬료 백부장의 일도 모두 특별한 관계 속에서 전개 되었으며,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는 하늘이 열려 보좌에 서 계신 주를 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이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곳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을 끝내고 들어갈 곳이기도 하다.
D. 성령강림의 목적(요한
그러면 성령이 임하신 목적인 무엇일까? 세례 요한은 앞에서 그는 성령과 불로서 세례를 주신 것이라 증거하였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그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다. 이 성령의 강림은 사도행전에서 그의 몸 된 교회에 다시 임하게 된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셨다.
성경은 구약의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이러한 신비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성령의 기름부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3:34) 증거하였다.
오늘날 성령세례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성령세례는 우리 성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령 안에서의 생활이 더 중요하다. 바울은 이를 증거하여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증거하였다.
E. 메시야 소명- "이는 내가 기뻐하는 나의 사랑한 아들이다"
마태는 이 일을 기록하여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7) 기록하였다. 예수님은 이로서 처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아들이심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 듣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때의 예수님의 감동이 어떠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어디에서든지 내가 전하는 교훈은 내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이라 증거하셨다.
베드로는 후일 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 천사와 같이 변화하신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장차 고난받으실 일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 이 때 베드로는 부지중에 그곳에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이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에게 들으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 후일 베드로는 이를 증거하여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큰 영광 중에
하늘로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증거하였다(벧후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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