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데살로니가강해

(살후2:2)광신도를 경계하라

이요나 2005. 1. 24. 14:01

(살후2:2)광신도를 경계하라

(살후2:2)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두번째 편지를 써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그들에게 닥친 환난에 대한 믿음의 인내에 대해 위로와 격려를 할 필요가 있었고 두번째는 그 당시 나타난 종말론자들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부터의 경계였습니다. 또 세번째는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자들과 일하지 않는 자들로부터의 경계였습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서는 광신자들에 대한 경계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지금 여기서 성도들에게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 가운데 종말론에 문제가 크게 파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그 나타난 문제점을 제기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교리적인 메시지
여기서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라는 말은 그 당시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으로부터 전달되는 메시지의 경로를 말합니다. 그당시는 아직 성경이 써내려가는 시대였음으로 복음은 주의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서 성령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에게 전달된 메시지의 특징은 은혜로의 구원과 성령세례를 통한 복음의 역사와 주의 재림에 관한 것이였습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돌연적인 재림에 관한 메시지가 광신자들에 의해 즉각적인 재림을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금부터 10여년전에 다미선교회라는 단체가 나타나 종말에 관한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이끌고 갔었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에 세계 도처에는 이러한 광신도적인 집단들이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교회사에 커다란 문제는 주의 재림에 관한 메시지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들은 교회성장을 향해 달려가며 축복의 메시지만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주의 오심이 가장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나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믿을 때 보다 가까워졌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들 가운데 나타난 영적인 역사를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영적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사도나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전달된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충분한 성경적 지식과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 소견과 감동에 이끌려 잘못된 지식을 유포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교리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경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2:20)기록하였으며

다시 경계하여 "사랑하는 바울 형제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니니라"(벧후3:16)하였습니다.

사단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 광야에서 주를 시험할 때에나 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도전이였습니다. 상대가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사람인 것을 아는 사단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자{사단)이 와서 그 마음에 뿌리 운 것을 빼앗는다'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 그 악한 자들의 미혹의 손길이 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바울이 말한 '혹 영으로나'라고 한 것은 그동안 여러차례 언급한 종말론적인 교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발전된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혹 말이나'라고 하여 유언비어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순회 사역자라 칭하며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은 사도에게 의탁된 복음이 아니라 유대의 율법과 헬라철학에 입각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세번째 나타난 현상은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본서 끝에서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썼노라"(살후3:17)기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그 당시 사도들의 이름을 빙자한 편지들이 난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 싶이 그 당시는 아직 정경이 채택되지 않은 시대로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글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를 기록하면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눅1:1)고 증언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 바울이 '영으로나 말로나 편지로나~' 라고 말한 내용은 모두 교리에 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교리, 성령에 관한 교리, 종말에 관한 잘못된 교리들이 믿는 사람들 속에서 만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의 말씀 속에는 진리의 교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이단들이 설치는 것은 어쩌면 성경적 바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한 교회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이단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구원에 관한 교리 즉 침례론, 성화론, 예정론, 성령은사, 종말론에 대하여 일반 교회들보다 집중적인 교리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적인 문제는 사실 성경을 순서대로만 가르치면 말씀 속에서 모두 터득할 수 있는 지식들입니다. 조급하게 한 부분적인 것만을 제목으로 삼아 가르치기 때문에 균형을 잃고 무식한 변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구태어 신학적인 것을 조명하지 않아도 음식물 속에 녹아 있는 영양분과 같아서 성경전체를 순서에 입각하여 바로 공부하면 그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