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24:44) 깨어 있으라

이요나 2008. 2. 6. 16:29

(마태복음24:44) 깨어 있으라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우리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세상에서 일어날 징조들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이것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말씀이시다. 주님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날 일들과 아울러 이스라엘 국민에 속한 예언적 사실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다. 이 일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실현 되고 있고 장차 그 마지막의 일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이며 그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그리스도의 경고다. 주님은 그때에 임할 환난을 말씀하여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은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4:21) 하셨으며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13:37) 하셨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I. 무화과나무의 비유의 목적 (32-35)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줄 아나니”(32)

A. 깨어 있으라

주님은 31절에서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택한 자를 교회로 보고 있지만 문맥상 여기서 택한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속속 이스라엘 땅으로 모여 들고 있다.

 

큰 나팔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가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때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 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27:13) 기록하였으며 예레미야도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23:3)라고 증거하였다.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32,33)라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너희도라고 하셨으므로 분명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므로 우리 교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무화과나무를 배우라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매우 친숙하다. 무화과나무는 그들의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귀중한 나무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배우라 하신 것은 무화과나무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성경적으로 살펴 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여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말씀하셨고 앞에서 주님은 주 앞에 열매를 내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앞으로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하셨고 나무는 곧바로 말라버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버린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신 것이고 이제 주님은 다시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낼 것을 예언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씀하신 것이다.

 

1948 514일 이스라엘은 독립을 하였다. 이스라엘이 국가 없이 전세계 속에서 유랑생활을 한지 2500년 만의 일이다. 흥미롭게도 에스겔은 2500년 전에 이 환상을 보며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36:8) 증거하였고 다시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37:12) 하였다.

 

인류 역사상 어느 민족이 국가를 상실한 지 5세대 이상 지난 후 다시 국가를 재건한 민족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던 아모리 족속이나 여부스 족속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 민족들은 모두 다른 나라에 흡수 합병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2500년 동안 국가 없이 전세계 이방 속에서 흩어져 핍박을 받으며 살았으나 그들은 미리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다시 그의 땅으로 돌아 와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였다.

 

누가복음에는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밟히리라” (21:24) 기록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1967년에 유대인의 통치로 돌아 왔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이방인이 지배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이 말씀은 성취된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20:29)고 기록되었다. 사실 1948년을 기점으로 다른 나라에 구속된 민족들이 독립을 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 38년간 지배를 받던 우리나라도 1945년에 독립하였다.

 

흥미롭게도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34) 하셨다. 여기서 이 세대는 과연 무엇을 언급하신 것일까?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여 곧잘 성급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스도의 재림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36)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믿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세상에 큰 재앙이 일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한번쯤은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그로하여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세상을 미혹하여 혹세무민하고 있다.

 

한 세대에 대한 논란은 각 시대별로 여러 가지 대안을 내 놓고 있지만 우리는 주께서 이 세대라 하셨음으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하여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헬라어  "genea" 역시 종족적 세대에 비중을 두고 있다. 성경에서 세대라는 말이 처음 거론 된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15:16) 말씀하셨다.

 

그후 이스라엘 백성은 사백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한 후 모세에 의해 출애굽하여 다시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때의 해석을 따르면 한 세대는 100년이다. 또한 다윗도 노래하여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90:10) 하였다. 이로서 인생의 보편적인 삶이 한 세대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한 세대를 40년으로 보기도 한다. 성경에  내가 사십년을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95:10) 기록되었고 또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3:9-10) 하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1992년에 예수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는 한 세대를 51년으로 보았는데 이 수치는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의 년 수를 계산해 낸 2042년을 찾아 낸 후, 마태복음 1장에서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가 열네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열 네대더라”(1:17) 하신 말씀의 열 네대를 세번 합한 42대로 나누어 뽑아낸 수치다.

 

그들은 오늘 주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를 기점 곧 이스라엘의 독립한 1948년에서 한 세대라 하셨으므로 51를 더하여 1999년을 찾아냈고 또 이스라엘의 대환난 7년 환난이 남았으므로 7년을 빼면 1992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온 세상을 미혹하였고 어리석게도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들도 덩달아 춤을 추어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던 것이다.

 

B. 천지 유실 예고(35)

주님은 35절에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천지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계시록 20장에서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20:11b)하였고 다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1:1) 하신 말씀을 보게 된다. 만약에 이 새로운 세상을 소망하고 거룩한 의인의 삶을 마친 사람들은 이 영광의 땅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누가 이 말씀을 소홀히 여겨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정하였다면 그는 결국 영영한 지옥에 떨어져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우주만물의 조화를 보며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우주는 서로 지탱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법칙은 누가 만들었는가? 성경은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였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31:35-37) 기록하였다. 모든 우주의 법칙과 질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에 의해 멸하여지는 것이다.

 

이를 증거하여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벧후3:2) 하며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여 기롱하여 가뢰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립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3:2-5) 증거하였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전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들어 나리로다”(벧후3:7,10) 증거하였다.

 

이 말씀을 믿던지 부정하던지 각 사람의 생각에 달렸다. 성경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55:11) 하였으므로 각 사람이 스스로 택한 것에 대한 책임에 대한 응분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II. 성경역사 속의 종말적 예고(37-41)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37)

 

A.     사회적 상황(37-44)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의 사회적 상황을 말씀하여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37) 하셨다. 이 부분은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때를 살펴보란 씀이기도 하다. 노아의 홍수의 때의 일은 창세기 6장부터 살펴 보아야 하며 그 악한 상황은 하나님의 아들들 곧 타락한 천사들의 침입으로 이 땅에 고대의 용사라하는 특별한 육체들 곧 네피림이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하늘의 악한 영들의 역사가 실제 인간사에 미친 악 영향을 우리에게 언급한 것으로 성경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벧후2:4-5),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 (1:6) 고 기록하였다.

 

계속하여 주님은 그 때의 보편적인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38,39) 하셨다. 우리가 그 당시 인구밀도를 낮은 확률로 추산을 해 보더라고 1300억 이상이 될 것이다. 이처럼 과도한 인구밀도 속에 인간의 패역함은 날로 확산되어 성경은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6:5) 후회하셨다고까지 기록하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영적인 상태가 둔해져 하나님의 메시지를 바로 듣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에 있다. 베드로는 그날의 상황을 말하여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벧전3:20) 증거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지나간 날을 상기 시키고자 하신 것이 아니다. 장차 있을 일 곧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나타난 혼란 영적 상태를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회가 담배 자판기처럼 가득한 우리나라 같은 곳에는 걱정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어떤 교회가 있느냐가 중요하지 교회가 크고 많은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최근 나는 각 방송국마다 다투어 다루고 있는 교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상당한 우려를 갖고 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경고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에 의하여 모 교회 담임목사는 연봉이 13억에 이른다 하고 호텔과 같은 별장에서 살며 외국에서도 보기 드문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보도했다. 또 그들은 세금한푼도 내지 않으며 십일조를 강요하여 거두어 드린 헌금으로 지상 최대교회를 짓기에 급급하여 성도들의 헌금을 담보로 하여 수백억의 은행대출을 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땅의 군주이신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불과 3년반을 사시면서도  거지와 같이 빈곤한 생활을 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후일 이들이 주 앞에 서는 날 어떤 심판을 받게 될 것인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오늘날에도 또한 타락한 지도자들의 역사로 순결한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미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날의 상황을 말하여 이미 성경은 때에 온 땅에 하나님 앞에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6:11, 13) 기록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으니라” (11:7) 증거하였다.

 

B. 선택과 유기의 책임(40-41).

주님은 계속하여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24:40,41)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대하여 데려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 중 어느 쪽이 좋은가에 대하여 각 사람들의 해석이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둘 중에 하나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계시록을 살펴 보면 대환난 기간동안에 인구의 4분의 일이 죽고 또 그 중에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는 결국 둘 중에 하나는 죽임을 당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음 사람은 적다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밭에 있는 두 사람과 매를 가는 두 여인으로 남녀가 서로 각각 나누어졌음을 볼 수 있다. 무엇인가 아주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지만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성경은 이미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 가리라 선언하였다.

 

III. 교회의 역할(42-51)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42)

 

A. 사역적 권면 (42-44)

이제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42) 하셨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는 영적자각을 말씀하신 것으로 노아 홍수 때의 사람과 같이 세상 사는 일에 빠져 하나님의 메시지에 둔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들과 같이 일상생활에 패역한 생활에 젖어 있지 말라 하신 것이다. 

 

또한 주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은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다. 바울도 너희는 다 빛의 자녀이니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리라’(딤전5:5) 증거하였다. 이것으로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말씀은 우리 교회를 향하여 하고 계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이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는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은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은 원망을 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을 당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을 하지 말라”(고전10:6-10) 경계하였다.

 

44절에서 주님은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44)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비하라는 말씀은 지켜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날에 대하여 미리 하신 말씀을 따라 세상의 모든 일들을 지켜 보라 하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과연 어떤 말씀을 듣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많은 목사들이 교회부흥에 초점을 맞추고 축복에 관한 메시지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들이 장래에 곧 일어날 일을 예비치 못한다면 이들은 노아의 홍수때와 같은 일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미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4-27) 경고하셨다.

 

B. 종의 비유(45-46)

예수님은 갑자기 말씀의 방향을 바꾸어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45) 하셨다. 주님은 먼저 충성을 요구하셨다. 충성이란 변치 않는 마음의 행위 뜻하며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4:2)라 기록하였으며, 주께서 친히 충성된 자의 본은 되심을 증거하여 충성된 중인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1:5)) 기록하였고 바울도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0) 라고 증거하였다.

 

두번째로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요구하셨다. 지혜란 어떤 일과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으로서  교회를 훼방하는 악한 영들로부터 교회를 수호하는 성령은 은사를 말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님은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다. 이와 같이 양식은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이다. 믿지 안는 자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양식을 아픈 자에게는 치료의 양식을 귀신들린 자에게는 악한 영을 쫓는 양식을 또 말씀에 갈급한 자에게는 장래를 깨닫게 하는 믿음의 말씀을 전하여야 한다.

 

세번째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주인의 것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주인의 뜻을 따라 행하였다는 것이다. 곧 자신에게 밑긴 것이라 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도는 주인의 집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고 그 형제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우리는 유모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지식에 이르도록 때에 필요한 양식을 나누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진리에 대한 배도라고 하겠다. 이는 모두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배역함을 뜻한다. 이는 종말의 불법의 때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하늘로부터 좇아 나타난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중에도 주님은 충성된 교회 주님은 빌라델피아 교회 지도자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3:8b) 칭찬하셨다.

 

나는 가끔 미국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목사의 메시지를 들으며 참으로 때에 따라 합당한 말씀을 전해 주고 계심에 감사한다. 내가 척 스미스 목사를 만났을 10여년 전에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말씀이 주를 이르렀다. 그러고 수년전에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진리를 전해 주셨으며 최근에는 종말에 관한 마지막 때의 말씀을 듣고 있다. 늘 그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균형과 질서가 잡힌 메시지라는 데 있다.

 

주님은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46,46)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짓기 위한 것보다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직 성령의 말씀하심을 따라 모든 진리에 속한 것을 가르쳐 장래 일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권세와 재물을 얻어 쌓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해도 그가 구원의 날을 얻지 못하였다면 그 많은 재물과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계속하여 주님은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를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을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48-51)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누가 지혜롭고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에 있다. 이것은 누가 충성 된 종이며 누가 악한 종인가에 있다. 분명한 것은 지혜있는 종에게는 주인이 와서 그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신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말씀은 깨어 예비하는 일과 관계 된 것으로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데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교회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들을 바라보며 주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과 교회를 그의 종들에게 밑기신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성경 어디에도 주의 사도들이 대형교회를 짓고 성도를 끌어 모으는 데 힘을 쓴 일이 없었다. 오히려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할 때 성도들의 생활을 공궤하는 일보다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25장에서 어떤 자들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인가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