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예언은사1) 예언의 은사가 무엇인줄 알고 하는 것이냐?

이요나 2000. 7. 5. 05:04

(예언은사1) 예언의 은사가 무엇인줄 알고 하는 것이냐?

*서론*

고린도전서 12장에 열거되어 있는 성령의 은사 중에는 4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예언 은사입니다. 바울은 성령은사를 다루면서 예언은사를 방언 은사와 함께 가장 많이 할애를 하여 다루었습니다. 그만큼 예언은사는 방언은사와 함께 초대교회의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였고 이것은 우리 교회 속에서도 아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은사는 성경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 있습니다.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2:21)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키우시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녀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언에 대하여 오해와 선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을 장래의 일을 말하는 것만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도 틀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언은 앞날에 대한 것을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늘 장래의 것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언은 말씀이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 중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시편기자 다윗입니다. 사무엘하23장 1절을 보면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23:1-2)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장 16절을 보면 베드로가 다윗의 말을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르쳐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다윗이 성령에 의하여 말한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 25절에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누구든지 다윗의 시편을 읽으며 이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기록된 글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일체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시편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편은 일반적인 교훈에 해당합니다. 기도가 매우 많으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이 주축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앞날에 있을 것을 예언하는 것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동기를 유발하는 권면
고린도전서 14장 3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예언 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며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방언과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는 것으로서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 설명하며 이에 비하여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교회나 사람에게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라는 말은 건축용어로서 성경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하여 지어지는 성도들의 인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목적은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온전케 세우는 것입니다. 또 예언은 권면입니다. 물론 별개의 권면의 은사가 있기도 합니다만 이 권면의 은사로 인하여 사람들이 동기가 유발되어 힘을 얻고 믿음의 생활로 나아가고 기도를 하고 교회 생활에 충실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많은 성경적인 지식을 얻기도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 소극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당연히 기도할 것인데도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늘 마음으로 기뻐하여야 할 것인 줄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권면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권면의 은사는 우리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은사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여성들 중에는 권면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이러한 은사를 가진 분이 있으면 그 교회는 힘을 얻고 예배가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예언은사는 사람을 권면 하는 것입니다.

*업그레이드를 위하여!
나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예언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제가 안수를 받을 때 성령으로부터 받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은사는 교사의 직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 가르침이 실행되기 위하여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공부가 끝난 후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이거야 이 말씀은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야. 자 이제 한 번 우리 함께 기도해 봅시다. 주께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라고 한마디 해주면 그 사람은 금방 힘을 얻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야고보는 권면의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음 생활에는 누군가가 우리의 믿음을 "UP"시켜 줄만한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절대 필요합니다. 따라서 예언의 은사가 역사하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언은사의 특징은 위로하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위로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사야서 40장에서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위로의 사도입니다. 고난받는 고린도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많은 말로 위로하였습니다.(고후1, 살후 1장 참조)

*하나님의 보좌로 이끄는 위로
우리 중에 누가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당하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이 위로의 말 한마디는 그를 하나님 앞에 이끌고 나가는 것으로서 그는 주님으로부터 위안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하여"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늘 이 부분에서 연약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할 말을 잃어버리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로가 예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말하는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가슴속의 모든 것이라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위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언은사를 받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 은사는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앞날의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덕을 세우고 권면을 통하여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위로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보좌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예언의 은사가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