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15:16) ‘사랑의 열매’

이요나 2008. 8. 20. 14:08

(요한15:16) 사랑의 열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까지 예수님은 자신의 인격을 여러 모습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셨다. 주님은 먼저 자신을 생명의 떡(6:35), 세상의 빛(8:12)라 칭하시어 자신은 사람들의 생명과 영적각성을 위해 오신 하늘로 오신 창조자의 인격을 언급하신 것이다. 또한 주님은 자신을 양의 문(10:7), 선한목자(10:11) 라 칭하셨다. 이는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적 인격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오늘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가리켜 참 포도나무라고 새롭게 소개하셨다. 이는 참 포도나무 열매를 많이 얻어 많은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초청하여 충만한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다.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종말론적 비유로서 우리는 이 혼인잔치의 기쁨을 계시록 19장에서 미리 보게 된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접하면서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풍요롭고 기쁨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속에서 보여지는 삶의 행태를 보면 마치 축복이란 그들만의 축제인 것 같으며 대부분 이러한 기쁨을 말하는 사람들은 뭔가 보편적인 정론을 갖지 못한 이단 사설에 미혹된 집단들에게서 나타나기 일 수다.

 

대개 그들은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그들의 삶은 상당히 매마르고 까칠하다. 이런 비합리적인 논리를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 몰몬인, 통일교 그리고 또 바람직한 은사집회 중심의 교회에서 보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포도나무의 가지에서 열린 포도열매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은 종교생활에 빠진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해 내치리라'(3:16)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이 물질문명의 매너리즘에 빠진 마지막 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경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들을 문제점은 자신들이 참 포도나무의 가지에 붙어 있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맺고 있는 열매의 모습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당신은 어떠한가 나는 그것을 묻고 싶다(요나

I. 포도나무 가지들(1-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

 

A. 포도나무와 가지들의 정의(1-2)  포도나무,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묘사

주님은 서두에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1) 증거하셨다. 이는 참으로 심요한 비유다. 지금 주님은 여기서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그 포도나무를 가꾸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어떻게 관리하고 계신 가을 그 제자들에게 알게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주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것은 성경적 근거이기도 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포도원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10:1) 하였고 시편기자는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심었다(80:8)고 노래하였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말하여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는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5:1) 고 노래하였으며 이 축복을 거절한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5:7) 한탄하였다.

 

주께서 자신을 가리켜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 흥미롭게도 주께서 사용하신 참에 해당되는 헬라어 엘레에디노스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와 같이 구약에서의 포도나무는 항상 타락적인 개념을 갖고 사용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은 참 포도나무가 아니였음을 가시적으로 언급하신 것이다.

 

B. 가지치기의 의미(2,3)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계속하여 주님은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2) 말씀하셨다. 이는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참 포도나무를 관리하시는 원리를 언급하신 것이다.

 

포도나무는 심은 지 3년간은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강한 나무와 가지를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가지를 쳐낸다. 또한 성숙한 포도나무는 12월과 1월 사이에 걸쳐 가지치기를 한다. 이는 열매 맺지 못할 가지로 하여 영양분이 유실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차 없이 그 가지들을 쳐 버린다. 이처럼 냉정하게 가지를 쳐 내지 아니하면 농부가 바라는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포도나무에는 쳐 버려야 하는 가지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제하여 버려야 하는 가지는 어떤 가지인가? 이는 세상적 열매를 맺는 가지를 뜻한다. 이미 주님은 알곡 가운데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13:24-29). 이는 양의 얼굴을 한 이리인 것이다. 이에 요한은 후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10) 증거하였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치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여기서 깨끗게 라는 말은 13 10절에서 사용된 말과 동일하다. 또한 주님은 17 19절에서도 제자들을 보전키 위한 동일한 원리에 적용 하셨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하나님의 기준치에 부족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에서 제외 시키신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세족식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가르쳐 자기와 함께 된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여 거룩한 그 리스도의 한 지체를 이루라는 계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열매 맺기에 온전치 못한 가지를 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종말론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3)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깨끗함(PURITY)에 대한 교훈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거룩함과 의로움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영적 성결을 언급하신 것이다. 그러나 영적 성결은 온전한 마음과 행실과 무관치 않다. 이에 다윗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오리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할 것이니이다 (119:9) 하였다

 

또한 내가 일러 준 말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곧 진리의 말씀 곧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메시지이다. 다윗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9:11) 고백하였으며 예수께서도 제자들의 영적 성결을 위하여 아버지께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라고 간구하셨다.

 

이와 같이 성경이 요구하는 영적 도덕은 우리의 삶의 행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 말씀은 우리의 잘못된 행실들에 대하여 엄하게 책망한다. 이는 우리를 벌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녀 된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칙질하심이니라(12:6) 하심과 같다.

 

C. 포도나무에 속하라(4-5)  - 두 가지 의도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 하셨다. 이 말씀은 앞에서도 언급된 말씀이다. 주님은 보혜사 성령을 소개하시며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9)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말하고 교회 부흥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전도나 열매는 결국 그리스도의 열매로서 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하시며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7:18,19) 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열매는 그 열매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다.

 

또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 하셨다. 이는 제자들과 그리스도의 커뮤니티를 뜻한다. 다시 말하여 이심전심의 상태로서 합일치를 뜻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들은 무능한 존재(INABILITY)가 될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포도나무 가지는 아무 짝에도 사용하지 못한다. 재목이나 하다못해 불 쏘시게 감도 되지 못한다. 다만 길에 버리워져 버릴 뿐이다.

 

D. 위험한 열매들(6) -  해석을 필요로 하는 구절

계속하여 주님은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말씀하셨다. 이는 특별한 해석이 필요로 하는 구절이다. 

 

앞에서도 잠간 언급하였지만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그의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요한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계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마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아느니라(요일3:24) 하였고 다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 증거하였다.

 

또한 버려진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주께서 이미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쫓지 아니하리라(6;37)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미 주께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하신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날의 감격적인 재회에서 제외될 것이 암시된 말씀이다.

 

그러면 시들게 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는 더 이상 열매 맺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뜻한다. 바울은 주께 죄를 토설치 않았을 때 여름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32:4)고 고백하였다. 또 주님은 사람들이 마른 가지를 모은다 고 하셨다. 이는 추수 때를 뜻한다. 주님은 이미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리라(13:39,40) 말씀하셨다. 따라서 불에 던진다라는 지옥을 뜻하기도 하고 어쩌면 하나님의 불시험이나 주의 판단을 뜻하기도 한다.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3:10) 하셨고 주께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7:19)하셨다. 또한 바울은 각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한 공력의 시험이 있을 것을 말하여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증거하였다. 결국 이는 구원과 보상과 관련된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불 세례인 것이다. 어쨋던지 태워버린다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는 뜻이다.

 

E. 제자의 임무(7-8) - 2가지의 적용

계속하여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 하셨다. 이는 당부의 말씀이 아니라 명령에 속한다. 제자로서의 첫번째 덕목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두번째는 그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주님은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8) 하셨다. 이는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열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전도이며 곧 교회 부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열매는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자기가 원한 바 그 형상의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무리 수많은 열매를 맺었다 해도 그 열매가 그리스도의 형상과 닮지 않았다면 그 열매는 불에 태워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 사랑의 커뮤니케이션(9-17)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노라(15)

 

A.     사랑의 모델(9-10, 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참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과실을 맺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적 비전이다. 이제 잠시 후면 주님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께서 실천하신 사랑의 열매를 그의 제자들이 맺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과실을 맺는 방법을 비유로서 말씀하신 것이다.

 

먼저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9)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성경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기뻐하노라 하신 하늘로서 하신 말씀을 들었을 뿐, 독생자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논하건대 먼저 그것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자리는 오직 아들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고 증거하였다.

 

또한 주님은 자기를 향하신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35)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만물의 통치권을 아들 예수께 주셨다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께 속한 권세를 아들에게 이양하신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다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5:20)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친히 모델이 되셨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아버지께서 선생이 되셨다는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의 권세와 영생의 권세를 아들에게 맡기셨다 하시며 그도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신다 하셨다(5:22-30). 그러므로 요한은 후일 이를 증거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4:9) 기록하였다.

 

그러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 주님은 이를 말하여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0)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이란 무엇인가? 주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22:37,38) 하셨다.     

 

그러면 제자들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3:34,35)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주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첫째 계명을 생략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주 안에 거하는 것은 오직 서로 사랑하라 하신 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에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일3:11) 증거하였다.

 

이 말씀을 하시며 주님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11) 하셨다. 사랑의 증거는 기쁨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나 누구에게 사랑을 받을 때 나타나는 것은 기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저를 기뻐 하노라하신 것이다.

 

주님은 12절에서 다시 한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고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하시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3,14) 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주종관계 사제관계를 떠나 이제는 친구관계로 진전된 것이다.

 

B. 열매 맺는 기쁨(15-1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요구하신 것은 친구간의 사랑 곧 필레오라 하는 사회적 사랑의 한계를 초월해야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아가페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음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그를 위해서는 친구간에 초월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온전한 공유를 뜻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5) 말씀하셨다.

 

오늘날 교회간의 문제는 복음 곧 하나님의 계시를 함께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각 교파간에 교리적 담을 쌓고 서로 침범하지 못하고 하고 반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로 친구의 관계를 갖지 않고 주종관계를 가지려는 권위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니골라당의 교훈을 자들이 있다고 책망하셨다. 초대교회 때에 있었던 니골라당의 교훈이란 교회 안에 계급제도를 도입하여 마치 교회가 정치적 모순에 빠지게 하였다. 사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러한 속성에 물들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교만하여 복음의 계시를 마치 자기들만의 권세 속에 있는 것으로 자랑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도 진리의 복음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다. 이에 바울은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2:10) 증거하였다.  

 

계속하여 주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5) 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택하고 세우신 목적을 말씀하신 것으로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 곧 그리스도의 붕어빵을 만드는 일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주님은 여기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셨다.  하나는 과실을 맺는 것이고 더 나아가 과실이 항상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열매 맺는 일을 멈추어서는 않된다는 뜻이다. 곧 제자를 양성을 멈추어서는 않된다는 말씀이다. 17절에서 주님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다.

 

나는 갈보리채플의 사역자가 된 것에 대하여 감사드린다. 나는 갈보리채플의 위대한 목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하여 많은 실수와 경거망동한 행동이 있었는데도 척 스미스 목사님은 그때마다 나를 용납하셨고 나를 제재하려는 한국인 목사들을 도리어 책망하셨다.

 

내가 더욱 감사하는 것은 내가 갈보리채플 사역자가 된 것은 내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주의 택하심과 그의 세우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갈보리채플 성경대학(CCBC)도 또한 SOM(School of Minintry)도 졸업하지 못하였다. 나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과 그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움을 받았다. 나는 아직 그리스도의 과실을 많이 맺지 못하였지만 내 생명이 있는 동안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이 일을 위해 나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때가 이르면 주께서 내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실 것이다.

 

시편기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3) 노래하였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결코 마르지 않고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열매가 소개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하였고(5:22-23) 또 죄에서 용서함을 받은 자라서 의인의 거룩한 열매를 맺으라 하였다(6:20-23, 7:4-6).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주의 징계를 참아 연달하여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으라 하였고(12:11) 다시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입술의 열매를 맺으라 권면하였다(13:15). 어디 그뿐인가? 잠언 기자는 사역자 된 우리에게 충실하고 현숙한 여인과 같이 그 손에 가득한 열매를 받으라(31:31) 하였으며 바울은 모든 이방에서 열매를 맺으라고 권하였다(1:13).

 

. 박해를 이기는 방법" (18-27)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20)

 

  A. 박해에 직면해야 하는 이유(18-25)

이제 주님은 제자들에게 곧 다가 올 박해에 대하여 언급하여 세상이 너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하시며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사는 세상은 이 세상임금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속에 있음을 알리신 것이다. 이는 영적 문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 제자들의 삶에 그대로 미칠 것임을 언급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이 미쳐 깨닫지 못한 지배 구조를 언급하여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20) 말씀하셨다. 이 지배구조는 아직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고 또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여전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지키고 있다. 이 구도는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그러나 사람들은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하셨다. 사실 후일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 생각했었다. 주님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하시며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23) 하셨다.

 

계속하여 주님은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24) 하셨다. 여기서 저희가 내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이미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시는 그 일은 인하여 나를 믿으라(14:11b) 말씀하셨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일, 오병이어, 바다 위를 걸어 오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신 일, 소경을 눈 뜨게 하신 이 모든 일들은 그들 중에서 이미 있었던 일로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세상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무리들을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주님은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없이 나를 미워하였도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25) 이처럼 세상 임금은 하나님을 아는 형제들 속에서 미움과 시기로 역사한다. 가인이 그러하였고 고라가 그러하였으며 또 사울이 그러하였다. 그러하여 주님은 나와 함께 모이지 않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라고 하셨다.

 

이제 주님은 내가 아버지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음으로 증거하느니라(26,27) 하셨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증거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주님은 진리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16:13,14) 하셨다. 이와 같이 제자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일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된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영화로움을 송축드립니다. 이제 주의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주여 나를 부르신 주의 뜻을 따라 내 안에서 주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소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여 친히 함께 나타나신다 하셨사오니 주여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