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이사야강해

(이사야25장-26장 강해) “그날의 프로잭트”

이요나 2009. 2. 6. 13:00

(이사야25-26장 강해) “그날의 프로잭트

 

(25:1)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I.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이사야25)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8)

 

A.   찬송 받으실 주의 이름 (1-5)

이사야 선지자는 24장 말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날들에 있을 일들을 아주 리얼하게 증거하였다. 이는 마치 계시록의 말미를 축소해 놓은 것과 같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 700여년 전에 살던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주의 재림이 아주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의 예언들을 부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25장과 26장에서 그날에 주께서 행하실 놀라운 기사를 바라보며 만군의 왕으로 오시는 주 여호와를 찬미하고 있다. 그는 서두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1)고 증거하였다.

 

그는 먼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의 주이시며 하나님이라 고백하였다. 이는 믿는 자들의 당연한 고백이기도 하지만 이사야는 지금 자기의 구속자이신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께서 아직 이 땅에 오시지도 않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계속하여 그는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한다 하였다. 주를 높인다는 것은 그에 대한 최고의 경외함과 신뢰를 언급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주를 높인다고 하면서도 정작 생활 속에서 예수님은 뒷전으로 물리고 있다. 세상 가운데서 자기와 자기 가족의 유익을 위하여 권세자를 찬미하고 또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주는 기사를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는 말씀이다. 어떻게 보면 이 증거는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상황을 언급한 것 같지만 사실 이사야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삶 속에서 여호와의 이적과 기사를 체험한 일은 없었다. 그는 사대에 걸쳐 왕을 섬겨 왔으나 비난과 저주 속에서 결국은 톱으로 켜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지금 이사야는 장래 이루실 하나님의 기사들을 주께서 성실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성취할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주의 기사들은 모두 장래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B.   만군의 주께서 이루실 기사(6-8)

그는 먼저 주께서 견고한 성읍을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3) 증거하였다.

 

여기서 외인의 궁성은 누구이며 강한 민족은 누구인가? 사실 그 시대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있던 때로서 그때의 강한 민족은 앗수르 제국이 된다. 그러나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주를 신뢰하며 여호와를 주로 삼은 백성 이스라엘을 뜻한다. 또한 포악한 나라들은 어디를 칭한 것인가?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대적한 나라들 곧 애굽, 앗수르, 바사 뿐만 아니라 바벨론과 헬라제국들을 모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을 일삼고 지배를 하고 있지만 결단코 이스라엘 땅에 그들의 궁성이 들어 오지 못하고 그들의 성읍이 이루지 못할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이는 참으로 흥미로운 예언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38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자기들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조선 총독부를 비롯한 관청을 지었다. 어느 나라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그 땅에 자기의 주권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이스라엘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지배를 받았지만 이스라엘 땅에 외인들의 궁성은 짓지 못하였다.

 

외인들이 이스라엘에 주권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주께서 포악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보장이 되시며 피난처가 되시며 뜨거운 태양을 구름으로 가리시고 포악한 자를 낮추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수천년 동안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6) 노래하였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때 어떤 것을 먼저 노래하겠는가?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막아주는 주의 보장되심을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심을 노래 할 것이다.

 

우리가 야곱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이방 땅으로 도망을 칠 때에 꿈에 주의 사자를 만난 후 주께 서원하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28:20,21)라고 기도하였다.

 

C.   구원의 기쁨(9-12)

여기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한 연회를 베푸실 것이란 매우 흥미롭다. 그는 벌써 주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대환난 동안에 이스라엘에서 일어날 일들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은 장차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좌정할 수 없음을 언급한 것이며 그 백성들의 보장이 되신다는 말씀은 그 때에 특별히 이스라엘을 섭리하셔서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또 26 20절과 21절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들에게 피할 곳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계시록 12장에서 보게 된다. 11장에는 이미 수천년 동안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예루살렘 성이 재건될 것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때 적그리스도가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스스로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칭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때서야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되어 적그리스도를 대항하게 된다.

 

이 일을 말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힌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리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셨느니라”(7,8) 기록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사야는 지금 계시록 12장부터 20장까지 써머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하여 수천년 동안 가리웠던 이스라엘의 영적 베일은 볏겨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수천년 동안 고대하던 메시야였음을 믿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사야와 함께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라”(9)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러므로 1절에서 그가 말한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다하신 증거가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장차 세상 끝날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손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오직 이사야로 더불어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II. ‘그날’ (이사야26)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A.   주의 명령(1-7)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하여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시리로다”(1) 고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다 땅이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곳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있고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사야의 기쁨은 그 이상이다. 그의 기쁨은 과거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상하며 갖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의 칼로부터 완전히 구속하신 그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의 시험은 없다. 이제 그들은 구원의 문에서 생명의 물을 길을 것이다.

 

계속하여 이사야는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 오게할지어다”(2)고 외치고 있다. 이는 자기들의 구원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들을 열어 이 땅의 모든 백성으로 믿음의 백성을 통하여 의로운 나라에 들어 오게 하라는 주의 메시지이다. 이들에게는 아브라함이 받은 바 열방을 통치할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기록하였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뜻하며 이것은 온전한 마음으로 그 모든 길에서 주께 의뢰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잘못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믿음은 마치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이력서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주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4절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선언하였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수천년 동안 시험을 받아 왔다.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과 율법과 믿음의 조상을 가진 이스라엘은 항상 온전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고난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시험은 끝났고 이제 그들은 주의 평강 가운데서 영원한 반석이신 주를 따를 것이다.

 

B.   여호와의 위엄과 심판(8-15)

8절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가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 기념 이름이란 주를 기억하게 하는 기념 칭호를 뜻한다. 그러나 아직 그들에게는 주의 이름을 주신 바 없다. 아직 그들은 주를 대하여 야훼’ ‘아도나이라고 부를 뿐이다. 따라서 이사야는 여기서 지금까지 수천년 역사 속에서 이사와 기사 속에 나타나신 주의 이름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옥중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오실 그이냐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느냐?” 물었다. 이는 그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이 땅에 세워질 그의 나라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에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7:22) 답하셨다.

 

 주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미리 말한 바 61 2절을 상기시킨 것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기 때문에 곧 오실 자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으나 아직 성령이 그에게 임하지 않으신 고로 그가 메시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리하신 말씀이 현실 가운데 현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사야 선지자도 아직 메시야의 실체를 알 수 없어서 주의 기념 이름이라 칭하며 그 영혼이 사모하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도 세례 요한을 가리켜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시며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저보다 크다 하셨다. 이는 주의 이름을 말씀에 증거를 받아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르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오즌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9)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만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완전한 날 곧 이 땅에 펼쳐질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우리는 다시 이사야로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10) 하였다. 이 말은 어쩌면 이 땅에 유기된 백성 곧 주로부터 버림을 받아 영영 구원을 얻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인 구원의 의로 들어 오기를 기다리신다. 다만 마음이 강팍하고 불의를 좋아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말한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은총 가운데 살면서도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불의를 행한다면 그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로마서1:18 참조).

 

그들을 가리켜 이사야는 여호와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합니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 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을 사를 것입니다증거하였다. 주의 열성이란 인간을 긍휼이 보시는 그리스도의 자비하심과 인내하심이다. 베드로도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그를 사모하며 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평강을 베푸시며 주께서 우리에 속한 모든 것을 친히 이루신다. 이것이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의의 백성들이 누릴 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13) 고백하였다.

 

그 이유는 주의 은총을 받으면서도 주의 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살았으나 죽은 자들로서 사망이 그들을 주관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의 나라에서 그들을 멸하시고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 모든 더러운 것들을 멸절하실 것이다(15).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사는 그의 백성이라 칭하는 사람들의 패역함을 목도한다. 의인의 자격을 얻었음에도 의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거룩하다 칭함을 받았음에도 거룩하지 못한 백성들 과연 이들은 장차 이 땅에 펼쳐질 의의 나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은 절대로 들어 오지 못할 것이라 증거하였다(22:15 참조)

 

그러나 옛사람을 벗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의의 백성들은 그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이다. 주께서 이미 이기는 자들은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1:7)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공은 당신의 손에 넘어갔다. 당신이 불의를 벗지 못하면 그 행위의 값을 반듯이 받게 될 것이다.

 

C.   마지막 때(16-21)

이사야 선지자는 16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니 주의 징벌을 그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이 주께 기도하였나이다기록하였다. 이는 언제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복음의 시대가 아니다. ‘주의 징벌이 그에게 임할 때란 이미 예고된 그의 심판의 날 곧 계시록에 기록된 칠년대환난의 때를 뜻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때에 주를 앙모하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 중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의의 나라로 들어 오고 있다. 주께서 그의 날에 임하기까지 모든 날 중에 주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얼굴에 가리워진 베일을 벗지 못한 그의 백성들은 심판이 임할 그 날에서야 주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나이다”(17) 고백하였다. 이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아이를 잉태하면 해산할 날은 임하게 마련이다. 주께서 예정하신 그의 백성들은 더 이상 물러날 시간이 없다. 주께서 그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날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은 당연하다. 이로서 여인들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잉태하고 해산의 고통을 갖으면서도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택하시고 그 백성을 아내로 삼으셨다. 그것은 이 땅에 많은 아들을 얻어 열방에 하나님의 의의 빛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녀는 행음을 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그의 날에 이르기까지 외면을 당하여야 했다. 그러나 자기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그의 날에 임하여 그들로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주께 나오게 하셨다.

 

낳은 것은 바람과 같아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잠시 버림을 받은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는 그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하고 이방이 그 은혜를 입을 것이라 하신 것이다. 이것이 교회시대의 개막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도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 하셨으며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이사야 선지자는 19절에서 놀라운 것을 선언하고 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이리로다하였다. 이는 복음의 시대 사람들로 미쳐 깨닫지 못한 말씀으로 지금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이다. 이는 살아 있는 자들의 심판을 말한 것이 아니고 죽은 자들의 부활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제자들에게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교회시대로부터 시작되어 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최종적인 심판을 말씀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 일을 말하여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이 땅에 거하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의 심판 곧 둘째 사망과 관련된 말씀이다. 다니엘 선지자도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는 자도 있을 것이라”(12:2) 증거하였다.

 

이 일에 대하여 계시록 기자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나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2)하였고 다시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3)라고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교회시대의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과 또 죽어 열조의 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활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20절과 21절에서 매우 흥미로운 예언을 하고 있다. 이 일들은 부활의 날 전후에 일어날 일들로서 사실 이 말씀은 27장과 연결이 된 말씀이다. 이사야의 글을 장과 절로 구분한 사람들이 이 부분을 왜 26장 말미에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장래에 이루어질 소망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장래의 백성들을 향하여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 지어다”(20) 하였다. 이 일은 대환난 기간 중 미혹의 잠에서 깨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말씀이다.

 

이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계시록 12장을 좀더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날이 되어 교회가 들림이 받고 나면 이 땅은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시간 한 이레에 해당되는 일로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구원하시고 그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와 그 나라들을 모두 멸망하실 것이다.

 

그때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여 이 땅에서 멸절하고자 할 것인데 이 때 주께서 그들을 위해 한 반석을 준비하시고 모압 백성에게 환난에서 피한 백성들을 위해 밀실을 열라고 명하셨다(16:4) 그것이 바로 페트라 암반도시로서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대적들을 멸하실 때까지 3년반 동안 양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맞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날의 있을 일들을 말하여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21) 증거하였다. 이는 주께서 친히 이 땅에 임하셔 마지막 심판을 하시고 의의 나라에 세우시고 그의 백성들과 함께 천년왕국을 통치하실 것을 예고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말씀들은 주께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성취하실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심지가 견고한 자들에게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라 굳게 믿는다. 주여 그렇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여기 섰사오니 주여  내게 하실 일들을 이르소서. 내가 주의 택하신 백성들을 그 갇우신 밀실로부터 부르겠나이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