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듯이 숨 가쁘게 달려 온 한해, 그러나 쉼을 얻지도 못한채 또 어쩔 수 없이 해를 바꿔타야만 하는 인생여정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히려 인생의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불혹의 나이가 훨신 지난 지금에도 “새해에는 잘 될꺼야!” 하는 기대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속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인 줄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를 믿은 지 12년, 43살의 늦은 나이에 주의 큰 은혜를 입어, 갈보리채플을 개척한 지 17년을 맞는다! 무엇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는 그 많은 날을 나는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그처럼 숨 가쁘게 달려와야 했을까? 약삭빠른 사람들은 차를 바꿔 타며 자기의 목적을 향하여 달려 나아갔건만, 오직 한 길만을 고집해 온 나의 선택은 과연 주의 뜻일까 아니면 철없는 아이의 고집불통이었을까?
그러나 돌아 설 시간도, 돌아갈 곳조차 없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한 점의 후회없이 “그래, 지난 한해도 잘 견뎌왔구나!”하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러나 밟고 지나 온 발자국 마다 선명하게 남은 많은 부끄러움을 볼 때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14:22) 하신 주의 말씀이 나를 책망하며 지나간다.
이 나이가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은, 그동안 미련스럽게 지켜 온 믿음의 지혜로 얻은 백발의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탕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돌아오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손으로 그린 지도를 펴고 길 떠나는 아들을 묵묵히 바라 본 체, 오랜 세월 집을 지켜야 했던 비유 속의 아비는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아야 할 온유한 그릇을 만들기 위한 오래 참음의 훈련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미련한 종을 아비와 같이 따르며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아들이 있어, 노인은 꿈을 꾸며 나는 그와 함께 짐을 져야 할 할 형제들을 낳기 위해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할 결심을 갖는다. 이것이 나의 숙명일진데 내 인생이 야곱보다 더 시기한들 무슨 후회가 있으랴!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