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나무의 맹세
(창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우리말에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 하였다. 아무리 지혜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자기 생각과 사고의 범위를 넘지 못하고 자기가 처한 환경과 상황을 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하늘에 닿을 지식을 터득하고 인생의 경륜을 두루 섭렵하여 세상에 모를 것이 없다 하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갑론을론할지라도 자기 발등에 놓인 불 앞에는 콧잔등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사람이다.
오늘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암양새끼 일곱을 놓고 서로 맹세한 후 그곳의 이름을 맹세의 우물이라 이름한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부른 것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다.
그곳은 그 땅의 지배자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외방에서 혈연단신 건너 온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고 자기와 후손들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한 곳이며 또한 이곳은 주인 사라의 뜻을 따라 아브라함의 첫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도 먼저 된 자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쫓겨난 하갈과 아이가 물을 얻지 못하여 방황하며 대성통곡하던 곳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눈앞의 현실이 불안하던가 장래의 경영이 불투명하면 그 장래를 보장받기 위해 서로 맹세를 한다. 더구나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자식의 생명과 장래 앞에서는 쫓겨난 여인이나 한 나라의 왕 아비멜렉이나 군대장관이나 모두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맹세는 가장 큰 자 앞에서 하게 마련이다. 성경도 이를 말하여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히6:16) 하였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다” (히6:13) 증거하였다.
백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도 아들과 그 후손의 생명을 위해 그 땅의 세력자 아비멜렉과 암양 일곱 새끼를 놓고 일곱 우물이 자기 판 것임을 서로 맹세한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암양새끼를 놓고 맹세한 것은 양들이 새끼를 낳듯이 선대가 세운 맹세도 지켜지기를 염원한 것이다. 금자에 김정일이 중국의 후진타오를 만나 대대손손 우호를 천명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시시때때로 간사하니 사람이 세운 맹세가 얼마를 지킬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미 성경은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이를 알리요’기록 하였다. 자기 마음도 믿지 못할진데 어찌 다른 사람의 맹세를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은 백발백중 거짓이다.
아비멜렉과 굳게 맹세를 하고 돌아 온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의 마음도 믿음을 수 없을진데 사람이 능히 맹세를 지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는 생명처럼 사랑하던 자기 아내라도 두 번이나 팔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인생 체험 속에서 얻은 믿음의 경륜이다. 죄인 된 인간의 마음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그곳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주님은 우리에게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5:33,34)하셨다.
이는 맹세를 지킬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께서 사람이 맹세로 인하여 사람과 세상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여 하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