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노의 그릇인가?"
(히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성경은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8:19,20) 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세상이 있음으로부터 일어서고 무너짐이 그의 계획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태양으로 일정한 거리에서 빛과 에너지와 열을 공급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열역학 법칙을 설정하셨다. 그 법칙 안에서 만물들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생성하고 보전되며, 그리고 서서히 멸하게 된다. 그 중심에 태양이 있고, 태양은 그 빛과 열과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자신의 질량을 매초 1,200,000만톤 만큼 태우고 있다. 그로하여 태양은 마치 거대한 시계태엽처럼 풀려나가 서서히 그 활동을 감소하며 만물은 갈수록 그 힘을 잃고 붕괴되어간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1) 증거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토기장이의 비유로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 대한 인간의 쟁론이 무익함을 언급하며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 9:18) 증거하였다. 이는 바로와 모세를 예로 삼은 것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이러한 성경적 결론을 놓고 인생을 논할 때 스스로 자기 존재를 알 수 없는 우리는 그 행하는 모든 일들이 무익해지고 허망해 진다. 이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멸하고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잘하고 못함에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인생을 포기할 없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또한 성경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대하여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9:22) 증거하였다.
이 말씀 역시 결과론적 인생을 말한 것이라고 할 때 허망해질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 우리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는 그의 전지하심 속에서 멸하기로 준비되었다 해도 하나님은 그의 돌이키심을 기대하고 계신 것이다.
오늘 나는 이 말씀들을 읽으며 과연 나는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가 아는 나는 불의하고 강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만약 그의 오래 참으심과 관용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망하고 멸하였을 것이다
그 무엇이 내게 있어 주께서 진노의 그릇을 멸하시는 중에서 나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셨던가 돌이켜 보건대, 나는 패역하고 불의하여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 오직 한 가지 그것이 남아 있었으니 주께서 나를 부르실 때 주의 음성을 듣기에 내 마음이 강퍅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