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동성애를 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함

이요나 2010. 10. 5. 21:35

동성애를 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함

 

-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

 

‘홀리 라이프’ 이요나 목사

 

 

지난 9 29 조선일보에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이하 바성연) 참 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의 이름으로 “<인생은 아름다워>보고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책임져라는 공고성 광고가 게재 되었다나는 이 내용을 보며 얼마나 답답하였으면 일간 신문에 이런 내용의 광고까지 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안쓰러웠다.

 

광고가 나간 세간에서는 도대체 <바성연> 어떤 단체이기에 “<인생은 아름다워>보고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책임져라는 광고를 낸 것인가 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 내기도 하고, 동성애자들의 변화된 삶을 소망하여 애통함으로 기도하는 기독교단체와 정의사회구현을 소망하는 학부모단체와 시민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 <바성연>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찬반 시비에 나는 어떤 편견적 입장을 갖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같은 , 같은 역사 속에서 공감된 이념과 철학과 문화 속에서 함께 살아 민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는 있지만 궁국적으로는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찾기 위한 제안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마음이 심히 아픈 것은 오늘날 이들이 행하는, 일들이  과연  누구에게 유익한 일이며, 또한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 우리 민족의 자자손손에게  어떤 공공의 대의와 공통의 공익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구에게도 유익되지 못하고 또한 국가적, 사회적 공익도 없는 일이었다.

 

 

-          동성애 이슈

 

동성애의 문제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존재하였고 시대별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문제는 근자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를 비롯한 인간의 성생활의 문제는  나라와 민족들의 공동체적 제도권 속에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관리하여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문제를 어떤 특정한 법규로 규정하지 않아도 종교와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국가 기강과 국민 생활 복지를 근간으로 헌법과 시행 법률로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속한 기본권을 유지하여 왔다,

 

물론 아직도 일부 독재체제의 국가와 종교를 국시로 다루는 국가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며 도덕과 윤리를 덕목으로 삶는 우리 민족은 국가적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오늘과 같은 자랑스런 나라를 건설해 왔다. 나는 작은 나라가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이처럼 세계 가운데 주목을 받으며 우뚝 있었던 것은 자유와 평등과 도덕과 윤리를 중시하는 국민적 대의가 우리 민족정신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십여년 전부터 우리 민족으로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도덕과 윤리를 저해하는 일부 세력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성애적 성적지향을 법적으로 결정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일들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서구로부터 시작된 성소수자인권운동은 이제 전세계적인 거대한 세력으로 확산되었고, 이들의 중심에는 정치세력들이 있다.

 

물론 땅의 모든 인간은 생존의 존엄을 지킬 기본 자유와 권리가 있다. 기본적 자유와 권리는 누구도 제한 없으며 우리 사회는 그러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  문제는 성소수자의 인권으로 다스려야 문제 이기 전에 민족적 합의를 이룬 도덕과 윤리로서 건전사회 구성의 본성적 철학으로서, 특별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종교적 교리에 해당되는 절대적 사안이다.

 

이러한 국민적 합의덕목을 일부 성소수자들의 요구에 의해 인권문제를 빌미로 법률로 결정한다면 이는 도덕과 윤리의 공평성과 종교적 교리를 국가가 관장하는 것이 되고 만다. 물론 그들의 기본권과 인권문제는 합법적으로 다루어져야 것이며, 그들의 생존권을 제한 하는 문제는 공정한 법과 통치로서 다스려져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권의 문제는 이미 헌법에 보장되어 있으므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인권은 사회적 합의 속에서 조율되어 왔다. 그러나 민노당 출신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된 차별금지법 내의 성적지향의 조항은 종교적 교리와 인간의 태성적 본성을 법률로 결정하려는 잘못된 시도이다. 만약 이것이 결정되면 우리 기독교의 교리는 훼손되고 도덕과 윤리를 근간으로 하는 유림을 비롯한 모든 종교들도 굴욕을 당하게 것이다.  

 

 

-          동성애 문화의 대립

 

그들의 논리로 말하건데, 그들 자신도 동성애에 대해 확실한 정의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혹자는 태성적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환경적 영향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취향이라고도 주장한다이처럼 동성애 찬성론자들의 논리는 수세기동안 일관되게 정의되지 못하고 스스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만약 혹자가 말하는 논리대로 동성애가 천성적이라면 부분은 생물학적인 관점이든 정신의학적인 관점이든지 간에 과학과 의학에 맡겨 그들이 천성적으로 갖고 있는 유전학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해결하도록 연구 개발하여야 것이며, 국가는 이들을 장애인의 준한 법규로서 인권을 보호하고 생활 보호와 의료복지 대책에 만전을 기하여야 것이다그러나 이미 그들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므로 의학적으로 다룰 없다고 천명하며, 극한 투쟁과 로비활동으로 동성애 목록을 1973 미국 정신의학협회(APA) 질병코드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과 인권단체들이 수세기 동안 주장해 오던 동성애의 선천적, 태성적이란 주장은 스스로 철회한 모순적 논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동성애가 후천적 삶의 상황 속에서 학습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환경적 요소 속에서 살아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후천적 학습 논리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논리보다는 오히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동성애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다. 이는 개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동성애의 발단이 어떻게 언제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동성애를 개인의 취향으로 삼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공론화된 동성애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 그들이 성적지향에 올바른 지식과 지혜가 없는 어린 시절에 성적충동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동성애적 성향에 사로잡힌 것만은 사실로 인정된다. 논리는 동성애가 학습될 있다는 전재가 된다. 그러나 동성애의 학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것이다.. 그러므로 <바성연> 광고 “<인생은 아름다워>보고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책임져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염려해야 것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 문화’이다. 이는 선한 양심과 이성과 지성적 통찰로서 다시 정의 되어야 사회적인 문제이다. 동성애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화가 있고, 성적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성애 만화나 비디오는 문화적 산물이며 그것을 보는 것은 문화생활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성적행위로 옮기면 그것은 성행위이며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는 범법 행위가 된다.

 

이미 우리는 많은 범죄가 TV 같은 매개체를 통한 모방심리에서 시작된 사실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범죄 행위로 발전, 전이 있는 영화나 오락물은 연령과 장소의 제한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성애 영화 <친구사이> 청소년 관람 판정을 내린 것은 심히 우려되지 않을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문화는 법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것이다. 

 

따라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SBS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를 다룬 영화 <친구사이> 성소수자들을 지향한 문화매체로서 사회적 합의를 이룬 작품들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먼저 각계각층의 의견들이 수렴되어야 하고 사회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동성애 찬반 논란은 아직 반대여론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러함에서 일부 성소수자의 논리를 우리 사회에 충족시키는 것은 국민여론과 사회적 합의를 망각한 포플리즘적 가치주장으로 이는 한치도 양보할 없는 극한 대립을 초래할 사회적 문제이다.  

 

 

-          동성애와 종교와 정치적 포플리즘

 

교회와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에 비하여 동성애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의 성을 도덕과 윤리로 다루고 있지만, 생명과 도덕률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기독교 입장에서의 성문제는 창조시로부터 제시된 성경적 교리이다. 설혹 기독교적 교리를 떠나서 논할지라도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남녀 암수로 지어졌으며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이는 태성적으로 암수가 결합하여 합당한 결혼생활의 영유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인류 종족의 생육번성의 근본적인 원리와 계획 안에 주어진 창조자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생활은 인류공존의 생활의 질서와 도덕적 책임이 함께 부여된 천부적이고 전인격적인 본성으로서, 인류생활의 시작부터 인간의 양심을 바탕으로 종교적 영역이다. 따라서 인간의 성생활은 정치와 법률로도 결정할 없고 다만 개인과 사회에 위해되는 범법 행위만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성애 행위는 문화적 차원을 떠난 종교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수호하고 심신이 연약한 우리 어린 청소년들을 동성애적 유혹과 충동에서 보호하기 위해 시민단체의 연합체인 <바성연> <참교육학부모연합>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제하의 광고를 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함에도 문제의 중심에 선  '인생은 아름다워‘의 작가 김수현씨는 “이성애 커플 러브신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데 시청자를 무서워하는 방송사와 제작사 때문에 지금은 제대로 못 그리지만 10년쯤 후에는 마음대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쉬움을 표하였다. 이는 공인된 작가의 양심을 떠나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양심있는 지성인으로서 수치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개그맨 홍석천씨는 ”동성애는 전염병이 아니며 AIDS는 동성애자만의 병이 아니니 무식한 광고 전에 콘돔 교육부터 하라“는 식의 견해를 내놓은 것은 양식있는 시민들의 입장을 무시한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양쪽이 주장에 대하여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기 이전에 정결해야 할 인간의 성생활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결과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 가운데 정작 상처를 입을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바로 동성애자 자신들이며 그 가족들이다. 이 땅에 그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로 살고 싶어하겠으며, 비록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나 그 가족이라도 천추의 한 같은 동성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싶은 것은 인간 본연의 본성이며 양심이다.

 

동성애자들 속에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고, 그들도 주말이면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있으며, 또 그들은 교회에 나가 자기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눈물로 쏟아 내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동성애자들과 가족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 변화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인생을 놓고 가슴을 치고 있다.

 

그들은 김수현 작가나 홍석천씨도 탓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동성애자들의 회복을 부르짖는 <바성연> <참교육연대>를 향해서도 원망할 수도 없다. 그들은 어찌할 수 없는 자신들의 성정체성 곧 사람들 앞에 부끄러워 들어낼 수 조차 없는 성적지향을 놓고 통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이들을 슬프게 해서는 않된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동성애자들을 볼모로 잡고 정치적 싸움을 하는 것은 하늘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동성애 문제는 법률이나 정치나 인권문제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양심과 육체와의 전쟁이다. 다시 말하여 성중독자들이 자신의 무절제한 성적충동과 행위로 하여 자기 양심과 다투듯이 동성애자도 같은 내적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률과 정치적 제도로서 동성애 문제를 결정짓는다 해도 이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문란해진 성생활로 하여 양심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며 사회적 혼란은 가중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제안한다. 더 이상 소모적인 일들을 놓고 싸우지 말자. 기독교적인 관점이든 종교적 관점이든 인권적인 차원이든 이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설왕설래하는 것은 교만이며 정치적 포플리즘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동성애자들의 진정한 인권을 논하려면은 오직 그들을 회복시킬 대안을 갖고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인격회복이며 인권존중의 길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살아갈 꿈을 꾸고 있다. 설혹 커밍아웃한 사람들이라도 말이다.

 

 

-          회복의 제안

 

지난 10 1일자 조선일보 A18면에는 <인터넷, 트위터가 대학 신입생을 죽였다> 기사가 실렸다. 미국 뉴져지주 럿거스(Rutgers) 대학의 18세의 타일러 클레멘티라는 학생이 입학한지 한달 만에 허드슨 강으로 투신 자살을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청년은 기숙사 방에서 동성 애인과 성관계를 갖는 모습이 룸메이트가 몰래 놓은 웹갬을 통해 인터넷에 중계된 3 되던 , 은밀한 개인의 비밀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사실을 감당할 없어 자살하였다게재 되었다.

 

그런가 하면 1998 10스타 트리뷴신문1면에는, 와이오밍주의 레라미에서 ‘22살의 와이오밍 대학의 매튜 세퍼드라는 학생이 게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여 사망한 증오범죄사건이 게재된바 있다(1998 10 10). 사건은 보수성향의 미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사건을 하나는 동성애자의 양심의 문제이고, 하나는 동성애자를 반대하는 호모포비아들의 극단적 행동이다. 모두가 신이든 인간이든 용납할 없는 사회악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피해를 것은 모두 동성애자이다. 이처럼 누가 어떻게 대응하던 동성애 사건은 결국 그들의 문제이다. 수세기 동안 수많은 찬반세력들이 각각 자기들의 논리를 갖고 싸워왔지만 누구도 이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다.

 

만약 지금이라도 동성애인권단체들이 동성애자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있다면 나는 성경적 판단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들 편에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찬반전쟁은 백해무익하며 속히 중단되어야 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동성애로부터의 자유이며 본성을 반하는 육체의 반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러므로 찬성이든 반대이던 우리는 이들의 원초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어야 것이다.

 

그럼 이들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없는 저주의 문제인가? 과연 성경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교리적 정죄를 무책임한 종교경전인가? 과연 교회는 동성애자들의 멍에를 풀지도 못하면서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주장을 묵살하는 호모포비아적인 언행을 일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이상 하나님의 이름로 동성애를 논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정죄하였으되, 죄인된 인간의 영혼을 회복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어, 그의 이름 안에서 죄의 사슬을 풀어 영혼의 자유를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피의 역사는 아직도 우리 가운데 살아 있는 하나님 약속이다.

 

수년전 USA 투데이, 뉴욕 타임즈,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에는 850명의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담은 전면 광고가 실렸었다. 이들은 엑소더스 컨퍼런스’(Exodus conference) 모여, 그리스도 안에 변화를 체험하고 능력을 선포한 사람들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런가 하면, 오늘날까지 미네소타주에서는 동성애자의 아동보호와 입양에 관한 사법소송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은혜와 비극이 한 시대에 공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인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년들어 62세인 나는 43년간 동성애자로 살아 왔다. 서른 살의 젊은 아들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내 어머니는 아들의 저주와 업보를 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려 놓으셨다. 독실한 교신자였던 내 어머니는 그 길만이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내 어머니의 생명이 내 안에서 회생하신 것이다.

 

나는 서른살에 예수를 믿어 영혼의 평안함을 얻었지만, 여전히 동성애는 타고난 업보와 저주라고 생각했었다. 믿음생활 12년의 믿음생활 속에서 교회는 내게 동성애의 문제를 해결할 길을 열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내가 예수를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안에 역사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쉼을 얻고 그 안에서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동성애 속성이 해결되지 않은 것과 관계없이 내 영혼은 자유하였고 영생할 소망을 얻었기 있었다.

 

내 영혼의 아름다운 소망은 43살 되던 해에 이루어졌다. 이는 내 믿음이 성경의 기록된 말씀과 화합을 하던 날, 한 순간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홀연히 이루어졌다. 의의 삶을 살고자 하는 굳건한 믿음 속에서 신적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평안과 기쁨과 자유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내가 얻은 이 평안함과 기쁨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 허락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이다. 따라서 그의 사랑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 인생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한다.

 

 

 

2010 1010

 

 

한국성교육상담자협회 홀리 라이프대표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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