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배자인가?"
(레10:8,9)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흥미롭게도 성경에는 술에 대한 상반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6장으로부터 시작된 포도주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두 기사만을 놓고 볼 때 성경에서의 술에 대한 규제는 서로 모순이 된다. 의인 노아에게 있어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여 자신의 수치를 들어내는 악이고, 혼인 잔치집에 있어 술은 초대받은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축복의 잔이 된다. 따라서 이 두 사건은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의 술에 대한 개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말씀은 아론의 두 아들 아비후과 나답이 다른 불로 분향단에 불을 붙일 때,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삼킨 일과 관련된 말씀이라 할 때, 어쩌면 여기서 언급된 포도주나 독주는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모든 제사의 규례가 세워졌고, 아론의 네 아들은 성결한 의식에 의거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여덟째 날,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봉헌하니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백성들에게 나타나, 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다. 이 놀라운 영광의 순간 백성들은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다(레9:24).
이때 제사장들이 지성소 앞에 놓인 분향단에 향불을 피워야 하는데, 아론의 두 아들이 흥분한 나머지 다른 불로 향을 붙이므로 여호와의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켰다. 지성소 앞의 분향단의 향은 성도의 기도의 상징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이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번제단의 숯불로 붙여 와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불을 사용한 것이다.
다른 불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임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유명해지고자 하는 공명심의 발로이다. 하나님 앞에 성도들을 대표하여 예배를 집도하는 자들이 우쭐된 마음에 흥분하여 덤벙대며, 백성들 앞에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려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술취한 상태인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시고자 하신다. 그를 위해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 모두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벧전 2:5). 그러함에도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우리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알파코스, G12와 같은 비기독교 그룹에서 만든 교회성장 프로그램으로 전도에 나서며, 또 어떤 교회들은 애니어그램, 내적치유, MBTI와 같은 심리학적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측정하려 한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신사도 운동, 예언자 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순진한 성도들을 마음을 미혹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려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납과 아비후와 같은 자들이다. 아직 이들에게 여호와의 불이 나와 그들을 삼키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여호와의 불은 살아 있다. 그들은 모두 거짓교사와 거짓 선지자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잠언기자는 우리에게“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잠 31:4,5) 기록하였다. 다시 말하여 지도자의 술취함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다. 오늘날 당신은 어떤 술에 취해 있지는 않는가?(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