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채플 특징- 제 12 장 믿음의
모험
서울 갈보리채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은 항상 흥분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는 일에 당신도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일을 중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찾는 길은 믿음으로 모험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일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상한 일에 대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
가령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혹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물의 온도를 시험해 보는 사람들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 아님을 분명히 보면서도 인간의 노력으로 그 일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어떤
일을 성취해 보는 일에 자신의 명예도 걸려있고 해서 그 일을 성취하기로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일은 시작부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닌데도 그 프로그램을 위해서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퍼붓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고 있는 일을 발견하기 위해서만 모험적인 일을 해왔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 후퇴하는 것이다. 우리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일을 성공시키고 말 것이다”라고 교만하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일을 해보려고 우리의 안간힘을 다하는 것은 당신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만일 내가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 성공할 때에 나는 기뻐하며 “놀랍군요! 주님이 나를 인도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그 일이 성취되지 못할 때는 나는 뒤로 물러서서 “나는 이일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코가 납작하게 되었군요”라고 말한다. 사람이
어떤 믿음의 모험을 해야 할 때에 주의할 점이 있다.
구약시대에 우리는 사울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에 군대를
조직하였는데 그의 수하에 많은 군대를 두고 그의 아들인 요나단은 적은 군대를 거느리게 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해변의 모래와 같은 많은 군대를
이끌고 그 땅에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하려고 작정했다. 그들은 병거와 마병의 대 군대를 몰아 왔기 때문에 그 군대의 위엄과 협박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자기들의 군영을 다 버리고 요단강 건너편으로 도망갔다.
이쪽 진영에는 몇 사람이 남지 않았고 남아 있는 자들도 공포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요나단이 밤중에 깨어서 근심된 생각인지 아니면
흥분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해 주시려면 하나님은 전군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다면 한 사람이라도 십만 대군과 같이 역사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잠깐 중지하고 이일을 논리적인
견지에서 생각해볼 때 그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전군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그의 목적에 부합되는 한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일을 한사람을 통하여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은 도전적이요 흥분되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 요나단을 깨웠고 그리고
요나단은 자기 병기든 자를 깨워서 “하나님께서 오늘 블레셋 사람을 이스라엘 손에 부치실 것인지 가서 보자”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의 모험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역사하시기를 원하시는지 보자”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가짐인 것이다. “하나님이 오늘 역사하시기를
원하시는지 보자”라고 하는 말은 단지 자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바쳐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안전 수칙을 세웠다. 그들이 블레셋 진영으로
갈 때에 하는 말이 “우리는 하나님이 여기에 함께 하시는지를 확인해 보아야하겠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파수꾼에 발견되었을 때 ‘만일 그들이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야 너희들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 우리가 너희에게로 갈 테니
기다려라’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오늘 블레셋을 우리에게 붙이신 것이 아니요 그러나 만일 그들이 말하기를 ‘야 너희들 이리로 올라 오라 우리가 한
두 가지 보여줄 것이 있다’라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우리를 부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리라”는 생각으로 블레셋 진영으로 막연하게 뛰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저희들이 조심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나에게 확신이 없으면 어느 정도 조심을 하는 것이 항상 현명한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는 믿음의 모험을 한 자들의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몇 년 전에 우리는 KWVE 라디오 방송국을 판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에 우리는 KYMS 방송국에 설교 방송을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그들이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제정을 원조하고 있었다. 방송국장이 오렌지카운티에 기독교 방송을 실시하기 위해서 이 방송국을 구입했던
것이다. “오늘의 말씀”이 원래 이 방송국의 주된 방송 이였다. 그런데 새 주인으로 바뀌면서 현대음악을 주로 방송하며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짤라
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KBRT 방송국으로 옮겼는데 여기서는 방송료가 엄청나게 비쌌다.
그때 우리가 KWVE 방송국을
판매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한번 우리 형편에 맞는 금액으로 신청을 올려보자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주시해 보자 만일 주님께서 우리가 이것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면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이 잘 될 것이다”라고 결정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도록 기회를 드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묻기를 “오렌지카운티에 경배찬송과 성경 가르치는 방송을 하는 방송국이 있기를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이것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믿음의 모험을 하여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기로 작정했다. 이것은 단지 믿음의 행동이었다. 우리는 흥정이나 협상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결단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그들에게 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도 이 방송국을 구입하려는 자들이 있다”라고 했다. 우리는 말하기를 “좋다” 당신이 하나님께 결정한 태도로 나갈 때에 고압적인 장삿술은 통하지가 않는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주님! 주님이 원하시면 좋고 주님이 원치 않으셔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드디어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수락했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KWVE 방송국을 소유하게 되었고 방송국을 통해서 이 얼마나 영광스런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가?
흥미 있는 사실은 이 방송국은 이윤을 남길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방송국의 요금보다 삼분의 일 정도의 금액을 방송하는 자들이 지불하고
있다. 우리는 동역 하는 목회자들에게 훨씬 더 싸게 요금을 내게 하며 그들에게 많은 좋은 청취자들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KWVE
방송국을 축복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믿음의 모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기를 “하나님, 만일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는
믿음으로 오퍼를 내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텔레비전 방송국 하나가 판매에 나와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서
우리의 가격을 제의 한 후 우리는 그때에 우세했던 미친 듯한 장식이 가미된 방송 프로그램 대신에 “기독교의 대사”라 부르는 것을 방영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는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의 제안한 가격이 수락되지 않아 우리는 단지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는 그것을 구입하려고 계속 추구하지 않았고 또 하나님을 앞질러 가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것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단판 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바라보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물을 시험한다”라고 부른다. - (주) 물이 찬지 더운지 하나님의 뜻이
계신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는 표현인 것이다.
수년 전에 우리는 튄픽에 위치하고 있는 성경대학이 더욱 큰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방들이 학교의 기숙사로 사용하게 되어 교회에서 각 그룹의 특별 집회를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정규적인 교회의 각 그룹의
모임과 동시에 성경대학이 함께 운영하는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에 비스타 시에 있는 나성 구조선교 단체가 소유하고 있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한 목장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보증금을 걸어 놓았을 때에 그 목장 근처에 살고 있는 많은 시의회 회원들이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미디어를 통하여 반대 시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싸우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 목장을 구입하는 일을 포기했다. 복덕방이 신문을 보고 우리가 그 목장을 철회한 사실을 알고
전화를 하여 말하기를 지금 아직 공중에게 발표되지 아니한 뮤리에타의 온천 시설을 가진 큰 지역을 자기가 판매할 권리를 얻었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가서 그 시설과 대지를 보고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제안을 하면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면 우리가 갖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오늘의 뮤리에타 온천 시설을 구입하게 되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우리가 갈보리채플 코스타메사교회의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을 구입하기 원하여 수년동안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이 6층
건물이 초기에는 우리에게 1,800 만불의 가격을 제안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가 1,000만불의 가격을 소유주에게 제안했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그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라고 말하였다. 그후에 한사람이 와서 그 건물을 중요한 입주 자들을 포함하여 제의한 금액이
890만불 이였다. 이 금액은 우리가 제의한 금액보다 100만불이 적은 금액이라 즉시 구입하였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손이 여기에 있음을
보았다.
여기서 또한 흥미 있는 사실은 만일 우리가 이 건물을 먼저 구입하였다면 뮤리에타 온천은 결코 구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과정에 역사하고 계심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두 부동산을 모두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셨다. 6층 건물이 너무나
가격이 저렴하여 우리가 구입하게 되었을 때는 뮤리에타가 이미 우리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시간을 잘 조절 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금 부동산 두 개를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발걸음을 내어 디뎠으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거인의 발걸음을 걷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한 곧 바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믿음의 발걸음에서는 항상 모험적인 감각이 있다. 당신은
모험적인 믿음의 발걸음을 내어 디디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지 안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일에 열심을 낼 필요가 없다. 그 일을 더 추궁하지 않고 또한 인간의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우리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거짓으로 추진하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이 거기 계시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이 해결될 것이며 그 일이 부드럽게 진행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협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렉 로리가 월요일 밤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와 그의 목회를
축복하셨다. 월요일 밤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옴을 보았다. 나는 그렉을 불러 말하기를 “이번 여름에 퍼시픽
야외 극장에서 일주간 집회를 하면 어떻겠나, 좀 더 큰 장소를 빌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지 보자“라고 했다. ”월요일 밤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모든 사람들을 유치하기에는 교회의 장소가 협소하니 퍼시픽 야외 극장을 사용해 봄이 어떠냐?”라고 말했다.
그때가
4월 이였는데 그렉 목사는 그러한 일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 때 나는 반문하기를 “왜 안되나? 어디 한 주간을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 큰 장소를 가지고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지켜보자”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퍼시픽 야외 극장에 전화하여 알아보았더니 여름기간에 한 주간이 비여 있어
사용 할수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이 집회를 “하베스트 크루세이드”라 이름짓고 착수하였다. 이 한 주간의 집회가 너무나 성공적이요 영광스럽게
진행되어 우리는 넘치는 기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집회의 마지막 날에는 너무나 사람들이 많이 와서 앉을 곳이 없어 대문을 잠가야 할 형평에
이르렀다. 밖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여 저들이 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얼마나 전율적인가? 여기 자라고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믿음의 첫발걸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지 보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드려보자. 한번 믿음으로 나가보자” 우리가 몇 푼의 달러를 손해볼 위험성도
있다. 그러나 옛말에 “모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라는 말과 같다.
구약 성경에서 또 다른 믿음의 모험에 좋은 예는 사마리아
성이 시리아 군대에게 포위 당했을 때였다. 그 사마리아 성의 형편이 너무나 어려운 가운데 있음을 성경에서 엿 볼 수 있다.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2 Kings 6:24-25). 어떤 여인은 자식을 잡아먹는 일까지 하게 되어 왕에게
간청하였으나 왕은 말하기를 “나의 식탁에도 먹을 음식이 없으니 어떻게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으랴?“라고 대답했다.
그 여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2 Kings 6:24-33). 이 왕은 자기 자신이 야기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엘리사 선지자는 아주 흥미 있는 특수한 선지자이다. 그는 놀라운 영적인 안목을 가진 자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사건을 계시하지 않은데 대해서 놀랄 정도로 하나님과 아주 가깝게 교통하는 선지자였다. 지금 나의 경우는 가끔 하나님께서 어떤 일들을
보여 주시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놀라며 쇼크를 먹게 되고 흥분한다. 당신의 생활에서도 그러한 일이 몇 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지 않을 때에 놀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보여 주실 때에 놀라지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을 때에 놀라는 것이다.
엘리사가 그의 집에서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을 때에 “흠, 와우! 이런
일을 보았나” 그의 친구들이 “엘리사 선지자여 무슨 일이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왕이 나의 머리를 가져가기 위해서 사자를 여기에
보내고 있다. 너희는 사자가 오는 것을 보거든 문을 잠그고 사람을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뒤에서 나지 아니 하느냐”라고 말했다. 말을
끝내자 문을 뚜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사의 친구들이 그 사람을 문에 붙잡아 두고 있을 때에 왕이 총리대신과 함께 와서 말하기를 “내가 드디어 너를 잡았다! 네가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게 하였구나”라고 말했을 때, 엘리사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내가 아니라 너다. 바알 신을 가져와서 백성으로 경배케
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바로 너다. 너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엘리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말할 때에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럴 때에 엘리사가 말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라고 말했다(2 Kings
7:1-2; 7:19-20).
왜 총리대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가? 그 이유는 그가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 일을 해석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러한 마음가짐이 우리로 하여금 어려운 자리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실 것인지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다 애써 보았고 모든 계교를 다
시도 해보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총리대신과 같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말할 경향이 많다.
엘리사가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하신다. 그러나 당신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에 따르는 복을 당신이 받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어려운 난국에
사마리아 성밖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먹고 겨우 연명하며 살고있는 네 문둥이의 이야기로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문둥이 이기 때문에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치 않고 있다. 그들은 성밖으로 던지는 쓰레기에 의존하고 겨우 연명을 해 왔는데 극심한 기근으로 인하여 성안 자체에서도 식량이 부족하여
이제는 성밖으로 버려질 쓰레기조차 줄어들므로 문둥이 중 하나가 다른 문둥이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열왕기하 7:3).
“성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으니 시리아 군대 진영으로 가보자 그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빵 부스러기라도 줄 것인지 누가 아나 그리하여
우리가 생명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저희들이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죽을 몸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들어가 보자”라고 말하고
네 문둥이들이 빵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한 적은 믿음의 모험을 시작하였다.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교회들이 몇 사람만
남아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이와 같은 자리에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 “자, 우리교회 성도의 숫자가 점점 없어질 때까지 왜 이렇게
앉아 있어야만 하나? 무슨 일을 해보자 아마 일이 잘 될지도 모르고 안될지도 모른다. 우리 교회가 여하튼 점점 쇠퇴하고 있으니 다를 바가
무엇이냐? 한번 모험을 해보자”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나는 보고 놀란다.
나는 역사를 통해서 무슨 종류의 약속 위에서 모든 믿음의
모험을 행하였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으랴? 단지 믿음으로 나가보자. 그리고 찾아보자.
하나님께 기회를 한번 드려보자. 엘리사의 이야기는 큰 소리를 애굽의 전차들의 공격으로 해석하고 결론을 짓게 된다.
시리아 군대들이 생각하기를 사마리아 왕이 애굽의 용병을 불러 자기들을 공격한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이 다급하여 군대진영이 혼돈에 빠져 모두
도망하고 말았다. 이 무렵에 네 문둥이들이 와서 시리아 군대 진영의 첫 번 천막에 들어가 보니 음식이 식탁 위에 놓여져 있고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실컷 배불리 먹고 또 보물들을 탈취하고 다음 막사로 가보니 거기에도 같은 형편이 이였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음식만 가득히
놓여져 있었다.
그들이 들어가 보물들을 탈취하고 땅에 숨기다가 그들 중 하나가 말하기를 “여보게들, 우리가 성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신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여기서 우리만 배불리 먹고 보물을 취하는 일에만 급급 한다면 재앙이 우리들에게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성문까지 와서 성 위에 있는 파수꾼에게 고함을 질렀다.
“시리아 군대진영이 텅텅 비었고 우리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으니 왕께 고하여 성중의 백성들이 오늘밤 주린 배로 자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외쳤다. 이 소식을 왕께 보고했더니 왕이 말하기를 “함정이다 저 교활한 시리아 군인들이 우리가 얼마나 배가 고픈 것을 알고 우리가
꼬임에 빠져 성문 밖으로 나올 때에 저희들이 우리를 급습하여 죽이려고 하는 계략이다 아무도 성밖으로 내어 보내지 말라 성문을 굳게 잠그라”라고
명했다.
나는 불신의 비극과 그의 대가를 생각 해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에 참여하는 축복을 잃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맞나 보는데 그들은 항상 말하기를 “이것은 함정이다. 그러한 일은 불가능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험하기를 두려워한다.
성경의 한 구절이 수년을 통해서 나에게 아주 의미 심장한 교훈을 주고
있다. 역대하 14장에서 유다나라 아사왕이 통치하는 이야기이다. 그가 25세 때 왕위에 즉위했고 그가 즉위하여 통치를 시작할 무렵에 에티오피아의
군대가 인근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백만의 대군과 수많은 마차들과 연합군을 이루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왔다.
아사가 대 군대가 침입을 하고있다는 소식을 받은 다음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부르짖기를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역대하 14:11).
지금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 내가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에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내가 모든 프로그램을
세워 놓았는데 주님 이 프로그램을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하지 않은 점이다.
“하나님이여 내편에 오셔서 도와 주십시요”가 아니었다. 그대신 “하나님 내가 하나님 편에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치려고
나아갑니다.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그러한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들이 나를 이길 수는 있으나 주님을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점이다.
이것은 요나단이 말한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대군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단 한사람이라도 하실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이 로마서 8:31에서도 언급하였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께서 에티오피아를 패배시키고 아사왕에게 승리를 주셨다. 아사왕이 승리를
거두고 승승장구하며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를 맞으면서 그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찌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역대하15:2).
아사왕이 유다를 통치할 때에 아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말씀을 받았다. 그 말씀은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찌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란 말씀이다.
아사왕이 통치하는 기간동안 왕국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축복을 받아 안일하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의 후반기에 그가 부하고 성공적으로
번영하고 있을 때에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남쪽의 유다나라를 침공하기로 결정하고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 성들을 재건하여 견고케 하며 남쪽
유다를 침공하기 전에 그 성을 점령하고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사왕이 그들이 성을 견고케 하며 침공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저들이 침략계획을 알고 성전 보물 고에서 돈을 취하여 시리아 나라의 왕인 벤하닷에게 주어 용병을 사서 북쪽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요청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리아 군대가 골란 하이트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북쪽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왕은 남쪽의 성을 재건하기 위해서
보낸 군대들을 북쪽으로 이동시켜 시리아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배치했던 것이다. 이럴 때에 유다사람들이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
이 결과를 본다면 전략이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 같이 보인다. 아사왕은 두말할 것 없이 자기의 눈부신 전략이 들어맞아
그의 승리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축하연을 열고 즐거워하고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돈이 과연 좋구나 돈만 많이 있으면 되지 않는 일이
없겠군 이라고 아마 생각하면서 돈의 위력에 영광을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시리아 군대를 채용할 수 있다. 그들은 용병이며 돈만 주면 우리를
보호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얼마나 성공적인 전략이냐!”라고 축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할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말하기를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역대하 16:7-8).
당신이 적고 힘이 없을 때 에티오피아의 침공을 직면하지 않았느냐 그때에 당신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하셨다. 당신의
의지가 하나님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은 힘이 자라고 강하게 되니 당신의 힘을 의지하게 되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 이것이 열쇠이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해 능력을 베푸시는 일을 하여 그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강하심을 보이시기를
원하신다.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 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리하여
그들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사 하나님 자신이 강하심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열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길은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어 디뎌 보는 것이라는 것을 찾아내었다.
시험하여 보라. 아마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아마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려보자. 그러나 다시금
우리가 항상 취해야할 태도는 “만일 성사가 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억지로 밀고 나가서는 않된다.” 그 계획을 그만두는 유연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음이 분명할 때는 그것을 억지로 밀어 부쳐 일이 되도록 애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에스더의 이야기에서도 같은 개념을 볼 수 있다. 모르드게가 왕에게 가서 그를 배알하라고 할 때에 그녀는 말하기를 “왕에게
무턱대고 들어가서 왕을 배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불러야만 들어 갈 수 있고 왕이 부르지 않는데 들어간다면 당신의 생명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럴 때에 모르드게가 대답하기를 “만일 이 칙령이 통과된다면 네가 네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하여 너를 이렇게 세우신 것이 아니겠느냐 만일 네가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구원이 다른 방법으로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을 반드시 성취하고 마신다. 이스라엘나라가 완전히 없어질
수 가없다. 왜냐하면 그 나라를 통하여 메시야가 오셔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이루시고 만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비록
네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구원이 다른 방법으로써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을 성취하시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일이 이러한 경우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내가 참여 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신이 대담하다면 그 일에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에스더에게는 왕이 부르지 않는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담한 일이다. 만일 에스더가 들어갔을 때에 왕이 그가 가진 홀을 들지 않으면 그녀는
즉시로 사형에 처해 지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복음 풍선”이라 불리 우는 책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것은 교회 출석을 늘이기
위해서 사람이 고안한 전형적인 교회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이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 수단, 방법을 채택한 사실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큰 고무 풍선을 교회 위에 높이 매달아 그 풍선 위에 교회 초청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풍선 위에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기록도 했던 것이다.
고무풍선을 계속 높이 달아 두는데는
문제가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사람이 고안한 방법인 것이다. 드디어 폭풍이 불어 사람들이 나가서 그 풍선이 날아가지 않도록 계속 붙들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이 귀찮은 일로 인하여 그들 가운데 큰 싸움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교회가 둘로 나뉘어 지게 되었다. 교회 성도의 반은 다른 남은
교인들에 대해서 화가 나서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사람의 힘으로 하는 일에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람의 방법으로는 교인들을 불러오기보다는 오히려 손실을 가져오게 되었다. 초창기에 이러한 노력이 효과가 없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말하기를 “오 우리가 1500불이라는 돈을 풍선 구입하는데 사용하였는데 이 풍선을 계속 메달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가
실수했다. 모두 잊어버리고 바람에 날려 가겠으면 날아가게 두고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그것을 치우려고 하시는데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무엇이냐 라고
말을 했어야 좋을 뻔하였다.
몇 년 전에 내가 텍사스의 루박이라는 곳에 남침례교회에 강사로 초청 받아 갔었는데 그 교회의 목사가
말하기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프로그램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결정했다. 그들은 죽어 가는 프로그램이나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것이 교회가 자주 행하는 실수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수한 프로그램을
사용하시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가 지나간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 해보려고 애쓰는 것이 전통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회생하여 계속하려고 시도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러한 죽어 가는 프로그램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속해 보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것이 자연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배워야한다.
하나님께서 “오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찾자”라고 말하는 대신에 과거에 하신
일만 돌아보고 있는 것은 항상 퇴보하는 증세이다.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을 듣고만 있기 보다 우리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자신들을 위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고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경험하는 일에 관하여는 성공하는 각 세대가 첫번 세대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의 일이 계속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념관을 짓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어떻게 쓰신 것을 보라 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얼마나 축복하신 것을 보라!”라고 말하기 시작 할 때는 조심하라.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관을 지을 때 그때가 항상 비극적인 날이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새롭고도 생기 찬 하나님의 일을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토요일 저녁에 갈보리 채플에서 영광스런 방법으로 콘서트를 하신 때가 있었다. 토요저녁 콘서트는 우리가
가졌던 복음전도의 도구로써 가장 크게 효과를 나타냈다. 토요일 밤 콘서트 때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장소가 비좁았다. 우리는 토요 밤마다
많은 음악 벤드를 불러와서 연주를 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려고 앞으로 나왔다. 만일 남가주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원을
얻는 곳이 어딘가 여론조사를 해본다면 갈보리채플 토요일 밤 콘서트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토요일 밤 콘서트를 한때 사용 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가 지나갔다. 약 2년 전에 어떤 자가 토요일 밤 콘서트를 다시
시작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할 때에 나는 말하기를 “한번 해 보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가 지나갔다. 그것을 계속해 보려고 시도를 했으나 마치
하나님께서 “아니야 그때는 지나갔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것은 앞으로 그러한 일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집회가
점점 약해가며 생동을 잃고 있으니 중단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 안 되는 일 억지로 살려 보려고 애 쓸 필요가 없고 그대로 가게하고 그대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발걸음을 내어 디뎌라 만일 일이 잘되면 즐거워하고 만일 일이 잘 안되면 다른 것을 찾아
보라. 나는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는 것을 강하게 믿는다. 만일 일이 잘되면 영광이요! 일이 잘 안되면 그 일에 깊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다”라고 말하면서 그 일을 부담 없이 그만 둘 수가 있다. 그 일에 너무 깊이 관련하여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얽어 메여 묶어놓지 말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을 따르는 일에 두려워 말라. 영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완성을 보려고
노력하지 말라.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본다. 심지어는 시작 때부터 함께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회를 축복
하셨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너무나도 조직을 잘하여 지금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 속에서 생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신적으로 완성을 보려고 하지 말라. 이것이 항상 있는 실수이다.
나는 이러한 단순한 믿음의 모험의 비전을
가진 많은 목사들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그들이 믿음의 모험을 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우리가 감히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 일에 도구로 사용하심을 허용함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내려 주셨는가를 생각 할 때에 전율을
느낄 뿐이다. 열쇠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항상 준비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알 수 있겠느냐.
여호와의 눈은 아직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그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시어 하나님 자신이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 발견했으면 헌신하라.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맞추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일과 어떻게 축복하심에 대해서 놀라며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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