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책임"
(사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경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존재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말하는 타고난 팔자의 피해자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의식이다. 그와 달리 성경은 인간을 책임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고해바다와 같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것은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이슈(issue)이다. 따라서 인간의 문제는 죄인이냐 의인이냐에 따라서 그 뉴앙스가 달라진다.
이는 결국 삶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느냐 아니면 자신에게 두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쾌락을 사랑하느냐에 있다. 여기에 대한 성경적 답변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형(paradigm)이 된다. 이는 주님께서는 자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기꺼이 십자가까지 지셨다. 흥미로운 것은 십자가의 고난은 주님의 능동적 헌신이셨다. 그는 오직 인류를 구원할 목적을 위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시면서 자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희생(피해)의 행위가 아니고 자진하신 헌신이다.
십자가의 주된 의미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이사야 53장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 그러므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커다란 이슈를 던지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냐?”이다. 과연 내가 누구이길래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가 자진해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았느냐이다. 만약 사람이 이 의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에 대한 성경의 답변은 아주 간단하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의 문제의 고통에 대하여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요구한다. 이는 내가 죄인된 너를 위해 죽었으므로 너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의인된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의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의로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당신이 만약 주께서 원하시는 의로운 삶을 알 수 없다면 그 반대되는 개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사회에서 우리가 행하는 불의들이다. 성경은 불의를 말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 1:29-31)라 기록하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것이 불의인지는 몰랐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32) 기록되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값으로 의인된 자들은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자랑하는 자라도 그는 결국 자기의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성경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고전 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 기록하였다. 이 말씀을 받는 당신은 부디 여기에 해당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설혹 아직 불의한 일에 해당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성경은 당신에게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그의 생명의 값을 당신의 의로운 삶으로서 보상받기를 원하신다.(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