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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99. 2011. 04.15. (금)
“영원하신 하나님 팔” (신 32:40)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산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에 제시 된 어떤 경향을 주시하고 계획한다. 1980년대 말 에이즈가 창궐하자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만일 에이즈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5년간 계속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전염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미국 정부가 왜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료였다.
만약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1994년 경에 이미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렸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 에이즈는 것잡을 수 없는 속도로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에이즈와 같은 질병, 지진, 쓰나미, 기근과 전염병 때문에 두려움을 떤다.
이처럼 사람들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자료들로 인해 장래를 두려워하면서도, 시간과 공간과 그 안의 모든 우주만물과 그리고 세상을 다스릴 인간의 모든 삶의 예정들을 머리털같이 세신바 되는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지 이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장래에 임할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몇 가지의 진리가 있다.
성경운 우리에게 "영원하신 하나님" 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흥미롭게도 성경의 영원이란 히브리 단어는 동쪽 곧 시작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문자적으로 시작점을 되돌아본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에게 영원하다는 의미는 그 어떤 시점에서도 미래에 속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영토록’이란 히브리어는 소멸점을 가리키고 또한 소멸점 이전 혹은 앞을 뜻한다.
한 예로 당신의 생각을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데까지 과거로 돌아가게 해보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의 역사는 태어난 시점부터 현재까지에 해당되므로 그 범위를 넘지 못한다. 당신은 절대로 별이나 달 우주가 있기 이전 그 시작을 알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 어떤 과학적 추정치일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지혜가 발견한 그 범주 안에 속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그 이전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곳에 계셨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간의 모든 전체적인 영광스러운 행렬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음이시며, 태초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내일을 걱정한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 계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당신이 당신의 미래 곧 앞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역사는 한 열로 지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열의 시간은 한정되고 고정된 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이미 우리 앞에 지나갔고 또 우리가 볼 수 없는 앞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들이 과거에 있던 곳에 내가 내일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그들을 보기 위해서는 과거가 아니라 앞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소멸점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설명하기 쉽지 않은 형이상학의 전체적인 행렬에 이르는 곳이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 곧 태초의 하나님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 이전에 계셨고 모든 행렬의 맨 앞에 계시며,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나를 앞서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이기는 첫번째 무기는 영원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영원의 시점 곧 소멸의 시점에 서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히라라”(요14:2-3) 하셨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아직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물었다. 그들은 소멸점이 시작점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멸점에 이르신 예수님은 분명 영원에 이르셨고 이제 우리를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내일이 어떠할 것인지를 모두 아신다.
잠언기자는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으리라”(잠18:19) 하였다. 이와 같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처소로 삼는 사람은 얼마나 안전할 것인가? 그러므로 삶의 고통, 장래에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두번째 무기는 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시는 성경적 개념을 갖는 것이다. 이에 주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하셨다.
우리는 때때로 최악의 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의 영원하신 팔에 있는 이상은 결코 우리의 상태는 최악이 되지 않는다. 이사야는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너를 싫어 버리지 않았다 증언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팔 안에 있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은 나에게 큰 관심거리이다. 여기서 영원하다는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소멸점을 말한다. 그러나 그 소멸점은 바로 시작점이며 그 시작과 끝에 하나님의 팔이 있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우리를 돕는다. 그러나 우리의 유한한 지혜는 그의 무한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리고 뼘으로 하늘을 재시는 분이라고 소개하였고 다윗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8:3) 이라고 노래하였다. 그가 당신의 하나님이심을 생각할 때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죽으나 사나 그의 영원하신 팔에 있음을 기억하라. (jo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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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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