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할 수 없는 은사“
(고후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보편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라고 할 때 구원의 은혜, 영적축복, 평안과 기쁨, 성령의 은사들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성도에게 주신 은혜'라고 말하며 또한 이러한 은사를 가리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사’라고 말하였다. 더구나 여기서 언급한 연보는 자기들 교회를 위한 헌금이 아니라 핍박과 기근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이기 때문이다.
물질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그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매스컴을 보면 돈 있는 곳에 재앙이 있는 것 같다. 은행들이 난리이고 돈 때문에 재벌들이 목숨을 끊고 정치인들이 옥에 들어가고, 노사가 분규하고 요즘 눈만 뜨면 억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처럼 재물은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고 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하였다. 이 말은 어쩌면 궤변처럼 느껴진다. 환난과 시련과 가난이 풍성한 헌금을 할 수 있게 하였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어느날 연보궤 앞에서 부자들이 헌금하는 것과 어느 한 과부가 두렙돈을 넣는 것을 보며 제자들에게 이 여인이 가장 많은 연보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부자들이 더 많이 하였을 것이다. 또한 주님은 재산이 많음으로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가는 청년을 보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 하셨다. 이 젊은이에게 재물은 인생의 올무였다.
우리가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사람에게 있어서 물질의 위치이다. 과부에게 있어서 물질은 삶의 도구일 뿐이고, 부자에게 있어서 물질은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는 권세였다.
작년 말 우리는 논현동으로 이전하면서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의 손으로는 전혀 할 수 없는 일들을 주께서 이루셨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 우리는 새로운 일을 성취해야할 시점에 있다. 그것은 지금 수리중에 있는 재능기부 자선카페이다.
사실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내게 비전을 주신이래 실제로는 할 수 있는 아무 조건도 갖추지 못하였다. 교회를 이전한지 불과 몇 달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일을 향한 열정은 마치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열정이 사그러지지 않았다. 이곳을 통하여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 소망을 가진 날로부터 나는 주님께 기도하여 이 일을 내게 맡기신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였고,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기도한 만큼의 헌금이 모아졌다. 임대보증금을 말했을 때에도, 6개월간의 운영비를 말했을 때에도, 777만원의 액수를 요청하였을 때에도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 사역을 위해 헌금하신 분들은 우리 성도도 아니요 그렇다고 나와 사역적 관계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다. 동성애 사역과 관련하여 우연히 만났던가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된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바다 건너 미국에서, 베트남에서, 하물며 아직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작은 사업가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들을 통하여 은혜와 감사가 넘치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남은 일을 성취해야 할 시간이다. 주님은 이제 우리에게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 8:11,12)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주께서 계획하신 일들을 성취케 하실 것을 믿는다. 주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즈신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이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