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1장-1)1+1+1=3이지만, 1x1x1=1이란 말이지!

이요나 2000. 8. 24. 10:38
(요한복음1장)1+1+1=3이지만, 1x1x1=1이란 말이지!

 

우주를 지배하는 초월자 "로고스"의 철학적 사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요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형체의 배후에는 초월자의 "생각"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모든 생각의 배후에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헬라철학은 초월자의 힘 즉 "생각"(로고스)는 인정하면서도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그 초월자 즉, 그들이 주장하는 "로고스"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은 물질적 존재임으로 그 육체는, 초월자의 생각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고 그 물질 즉 육체는 더러운 것으로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자기들과 같이 철학적 학문과 광대한 우주의 광대한 터득한 고도로 훈련된 자기들만이 그 로고스의 생각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스토아 철학이 만연될 즈음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통하여 "태초에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의 배후에는 생각하는 존재(사람)이 있어야 하며 따라서 그 "생각" 즉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로고스는 바로 하나님이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은 그 시대를 지배하던 문명, 즉 당시 석학들이 접근해 낸 헬라 철학사상 속의 "로고스"를 적용하여, "태초에 로고스가 계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의 착안점!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요한이 외친 이 말씀은 성경의 첫 부분과 일치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가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이미 배운 바와 같이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은 "엘로힘"(Elohim)라는 단어로 복수형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엘(El)"은 단수로 하나님이란 뜻이며, 이 '엘'은 성경에 있는 많은 이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엘'은 단수 하나님이시나 '엘로힘'은 하나님의 복수형입니다. 유대인 선생(랍비)들은 왜 하나님의 이름이 복수형으로 쓰여졌는지를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태초에 "엘로힘", 신들(Gods)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그들은 복수형이 강조형으로 쓰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단어가 복수로 되어있을 때 강조형으로 쓰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복수로 되어 있는 단어는 흔히 복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방인들의 여러 신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 땅의 신들이라고 말할 때 엘로힘이란 단어를 사용된 것을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내 개인의 의견으로는 창세기 말씀에 태초에 하나님을 복수형 엘로힘을 사용한 것은 태초에 하나님의 본성이 삼위일체이심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요한복음의 대상은?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세 인격 즉, 아버지, 아들과 성령의 세분으로 존재하신 것을 창세기의 창조 기록에서 복수 대명사가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과연 누구에게 말씀하신 것인가? 제한 속의 피조물인 인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은 왜 이러한 헬라 철학적 사상을 복음에 적용한 것일까요?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이 천지 우주 만물과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임과 그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전재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쓴 복음서의 대상이 헬라인들이었음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는 먼저 헬라사람의 지식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따라서 그 당시 그들의 가르침과 사상을 믿고 따르던 헬라인의 문화와 입장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 복음서 속에서 저자 요한이 히브리 단어를 헬라말로 번역해 놓은 것으로 분명해 집니다.

 

   우주의 배후는 누구냐!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따라 예수를 따라가며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말한 것을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님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또 1장 뒷부분에서 나다나엘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라고 부르짖었는데 요한은 헬라어로 크리스토스(Christos) 즉 그리스도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이 히브리말을 헬라어로 해설한 것은 그가 기록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그들이 이해하도록 주의를 기우린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인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 즉 "로고스"라는 개념은 우주의 배후에 있는 질서이며,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말해 주는 초월자의 힘,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에 요한은 "태초에 로고스가 계시니라. 이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문자 그대로는 하나님은 곧 말씀이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모순
   요한은 로고스에 대해 우리에게 두 번 째로 전해 주는 메시지는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 천사와 같은 계급으로 창조되었으며 아마도 천사장인 미가엘 일 것이라는 주장을 고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던 제자 사도 요한은 그의 글에서 분명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는 내가 말한 것 같이 좀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은 말씀이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당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성경을 별도로 만들어서 요한이 기록한 성경말씀에 관사 'a(하나)'를 삽입하므로 그들의 성경에는 "말씀은 한 하나님이시라"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헬라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는 관사 'a(하나)'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억지 이론을 일치시키려고 관사를 삽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전체적인 목적은 하나님은 단지 한 분뿐이라는 주장을 유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해석에 따라 만일 예수가 참되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또 다른 한 신(神)이라면, 결국 그들은 두 신들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를 수학적인 문제로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말할 때 그들은 1+1+1=3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볼 때 그들의 주장은 맞습니다. 그러나 수학공식에는 덧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곱셈도 있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1x1x1=1도 되시는 세 인격체로서 한 하나님으로 복합을 이루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한은 다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이 말은 헬라인들이 생각하는 로고스는 근본적으로 창조주이시고 그는 창조 배후에 있는 생각이시며 그것은 형체로 존재하기 전에 그의 마음에 존재하셨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은 처음 시작에서 이 말씀으로 이미 삼위일체하신 2위이신 하나님 즉, 예수님은 로고스로서 창조주가 되심을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예수께서는 창조주이심을 확증하였습니다. 그는 예수에 관하여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문자 그대로 풀면 함께 붙들려 있느니라)"(골1:15-17)라고 말하므로서 예수는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만물을 함께 붙들고 계신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신 자' 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내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