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1장-2)너는 삶 속에서 로고스를 체험하고 있는가?

이요나 2000. 8. 25. 14:45
(요한복음1장)너는 삶 속에서 로고스를 체험하고 있는가?

 

우리는 원자(原子)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형체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원자는 양전기를 띠고 공전하는 양자인 핵(核)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양자의 주변 궤도를 음전기를 띤 전자(電子)가 돌고 있습니다. 좀더 복잡한 원자들은 중심부에 함께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양자(陽子) 혹은 원자핵(原子核)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러나 콜롬부스의 전기 법칙(Coulomb's Law of Electricity)에 의하면 같은 전극끼리는 서로 밀고 반대의 전극간에는 서로 당기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반대 극(極)은 서로 당기고 같은 극(極)은 서로 미는 것이지요. 이래서 양전기(陽電氣)는 서로 미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두개의 자석으로 쉽게 실험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석의 양극(陽極)을 함께 붙드는데는 압력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석을 취하여 음극(陰極)에 갖다 대면 서로 끌어당기고 튀어 오르게 되지요.

 

이처럼 반대극 끼리는 당기기 때문에 서로 끌지만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밉니다. 그래서 자석의 양극(陽極)을 함께 붙드는 데는 힘을 가해야만 합니다. 이런 전기 법칙에 의해 양전기로 축전된 원자의 중심에서는 실지로 서로 저항하고, 서로 밀어 제치지만, 그러나 보다 더 큰 힘이 그것들을 함께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원자를 함께 붙들고 있는지는 자연과학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원자와 양전하(陽電荷) 윈리!
   우리가 아는 대로 이 원자와 양전하(陽電荷)의 원리를 진전시켜서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어졌는데, 그 개념은 원자를 분리시켜 양전자를 방출하여 서로 미는 특성에 따라 서로 반응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중성자를 취하여 원자의 핵, 즉 원자의 중심에 있는 양자들을 때리면 그것들이 분자의 균형을 파괴시켜 원자가 서로 분열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원자가 분리될 때 굉장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압니다. 원자가 분열될 때 방출되는 그 에너지는 원자를 서로 붙들고 있는 힘만큼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자들이 분리될 때 방출되는 것보다는 더 큰 힘이 있어야 그것들을 함께 붙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원한 우주의 신비는 누가 그것을 붙들고 있는가? 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성경은 그것은 바로 "로고스"이며,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가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 자신을 위하여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그분께서 그것을 모두 함께 붙들고 계시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생각할 때 온 땅의 해변의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인 작은 한 인간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을 보면 바위를 부수고자 내동댕이치는 겨란을 연상케 합니다. 참으로 이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해지며 우스운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 친구들아, 하나님이 쥐고 계시는 것을 조금만 늦추시면, 너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져 버릴거야! 양자(陽子)들을 그냥 두기만 하면 너희들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다니엘은 술이 취하여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바벨론의 벨사살 왕에게 "벨사살왕이여, 당신은 금과 은과 나무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고 있으나 왕의 호홉은 당신이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소"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하여 그러한 경고를 수 천년 동안 들어오면서 아직도 그러한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샹각할 때 인간이란 것이 참으로 한심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로고스이신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는 하나님이셨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나의 생명도 또한 당신의 귀여운 자녀들의 생명도 그에게 창조되었고 그의 생각 즉 그의 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살아 있는 목적은 나의 생명을 창조하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입니다. 그러한데도 세상에는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자이신 주 즉 로고스께서는 이제 곧 다시 오셔서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벌하시고 만유를 통치하실 것입니다. 오직 존귀와 영광과 감사와 찬송에 그에게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빛!!
   요한은 계속해서 로고스(말씀)에 대하여 우리에게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전체 속에는 예수님 자신이 "생명과 빛"이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아는 바와 같이 사단의 거짓말 중 대표적인 것은 주님께서는 당신에게서 좋은 것을 빼앗으려하고 당신의 삶을 재미없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거짓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상상도 할 수도 없는 그것을 실제의 삶 속에서 체험할 때까지 삶의 차원을 더해주시기 원하십니다. 영원한 삶의 깊이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지 아니하는 도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는 기다리다 지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제 복역이 끝났다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아직 만물이 그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말하였으며 다시 "모든 피조물들도 썩어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말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나의 의지보다는 어떠한 실체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삶의 본질을 잃고 끌려 다닙니다. 한 예로 의약파동이 일어 납니다. 그러면 그 업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들에 부합된 먹고 사는 문제에 목이 매여서 이끌려 다니게 됩니다. 이것은 끊어 낼 수 없는 세상의 힘, 즉 삶의 생명의 줄입니다. 이럴 때 이것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그러한 형편이 되어 버립니다. 오직 나의 유익과 가족의 생존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살아가는 모든 질서가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쪽이 이기면 결국 나는 망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세상이 공평의 균형을 잃었음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자유의지가 없는 하나님의 창조물은 처음부터 정해진 그 질서와 균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탱하는 힘이 하나님께 순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고스의 힘으로 만물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지배자로 선정된 인간들만 질서와 균형을 잃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배권을 상실하고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의 힘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요. 즉 살아가는 힘을 로고스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하여 생명의 본체인 로고스와의 관계가 불확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 마다 돋우워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40:1-5)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뛰어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아직 형벌을 받고 있습니까? 아직 감옥살이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예수는 어떠한 존재냐 이말이지요. 이제 당신은 생명의 본체 로고스를 만날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입니다. (내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