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자기를 찾아 온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7-19) 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은 "빛이 세상에 왔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생명은 바로 사람들의 빛"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요한은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뜻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헬라어에서 사용된 개념은 "어두움이 빛을 끄지 못했다",( 소멸할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여 "빛이 어두움에 비추었으나 어두움이 빛을 소멸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어두움이 빛을 물리치려 한 것은 사실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어느 날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을 소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빛으로 인해 자기들의 더러움이 들어나는 것이 몹시 화가 났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빛을 소멸하려고 애를 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이틀 간 그들은 자신들의 모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삼일되던 날 그들은 참 빛을 소멸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빛은 이전보다 더 밝게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나 어둠이 빛을 없애지 못했고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빛을 없애려는
세력들!
오늘날도 이 빛을 물리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거하려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하려고 하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떠한 개념과 인식들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빛을 물리치려하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말씀으로
기록하시기를"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외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1:10)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시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아네모네와 울긋불긋한 꽃으로 아름답게 덮인 들판을 지나 갈릴리 흙 길을 걸으시며 들판을 보실 때 그가 그것들을 설계하셨고 지으셨으므로 그것들의 화학구조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드신 사물들을 가리키며 제자들의 주의를 불러일으키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이 못하였느니라. 그것을 내가 설계한 것이다"(마6:28-29) 공중에 나는 새를 보실 때 그는 기체역학의 법칙에 관해 다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그는 새를 창조하실 때 이미 그 법칙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는 열역학 법칙은 물론 우주와 이 땅의 모든 원리와 법칙을 친히 창설하신 분으로서 모두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와 모든 것을 다 아시므로 처음부터 그러한 설계를 하신 것입니다.
새를
바라보라!
요즘 인체 설계도 즉 게놈프로젝트에 대한 발견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생명체 공학은 더욱 발전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창조로부터 만들어 놓는 것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사람들이
오늘날에서야 발견한 것이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생명체들을 새로 창조해 낼 수는 없습니다. 아니 생명체 뿐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라도 창조라는 영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의 창조 속에서 발견되고 그의 정해진 범위 한계 속에서 발견되고 터득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그가 창조하신 새들을 가르치시며 새들의 날개가 어떻게 돌며 어떻게 펴서 올라가게 되는가를 환기시킨 것입니다. "새를 바라보라. 새들의 나는 모습에서 그들이 나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그 형체도 이미 로고스 즉 말씀 안에 존재했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참으로 슬픈 비극은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그는 여기서 그가 창조하신 만물 중에 거닐고 계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고 알게 되었으며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육신으로
오심!
그러므로 요한은 후일 그의 첫 번 째 편지에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들이 후에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자신들 속에서
오셔서 함께 이 땅을 걸으신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의 마음 속은 어떠하였을까 매우 궁굼해집니다. 자신들이 못박아 죽인 그는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사람이었으며 그들을 가르치던 분이셨으며 그들의 병을 치료하시고 그들 속의 더러운 귀신을 쫓아 주었던 나사렛 목수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들이 만질 수도 있었고 말할 수도 있었고 함께 먹으며 함께 걸으며 함께 울고 웃던 이웃이었으며 친구였으며 그들의 형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그들을 모두 보듬어 안으려고 했을 때 그를 배척하였고 그의 참빛이 그들 속에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하셨을 때 그들은 그 빛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라"하였고 다시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들어 날까 함이라"(요3:19-20)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700여년 전에 그들에게 일러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버린 바 되었다"(사53:3)고 경고하였습니다.
자녀의
권세!
그러나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기쁜 소식을 전하여 줍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권능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권세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의 생명, 권능의 생명, 이에 대하여 요한은 "주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며, 이 능력 있는 생명은 그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라고 증거하였고 다시 요한일서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요일3:1-2)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을 믿는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하나님의
비밀!
요한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들을 알 수 있으리오? 바울은 그의 재자 데모데에게 하나님의 무궁하신 신비에
대하여,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3:16). 그는 우주에게 명령하시는 분이시며, 인생의 삶의
목적을 부여하시는 분이시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하여 당신의 마음 속에 결정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우주에 있는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셨던
분, 로고스이신 그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서 오셔서 함게 사신 것입니다.
요한은 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서술하였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처음 14절까지 말하는 근본적인 의도는 예수는 육신으로 오셔서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과 죄 속에서 멸망하는 인생에게 빛을 가져오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는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된다는 위대한 증거요 선포인 것입니다.
생명의
연결고리!
요한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러한 사람들의 복에 대하여 "그들은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나서 아름다운 새 생명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를 찾으려고 시행착오를 범하고 있다. 동물세계와 인류사이의
잃어버린 연결의 자료가 될 뼈들을 찾기 위해 전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발굴하는 지식인들을 보면 맥이 풀려 버립니다.
아직도 그들은 하나님과의 접촉을 상실한 상태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진 채, 어두움과 혼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고리이며 생명의 본체이시며 우리의 빛이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요한의 지적" 영접하는 자"라는 말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고민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를 두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당신이 선택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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