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누가 대통령의 자식농사를 말할 수 있는가?(4)

이요나 2002. 7. 7. 10:28

누가 대통령의 자식농사를 말할 수 있는가?(4)


(열상2:5)스루아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음부, 지옥)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권세를 두려워 하는 것은 악한 일에 대하여라고 말하여 만약에 네가 악을 행하거든 권세자를 두려워 하라고 말한다. 그에게 칼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심이라 기록되었다(롬13:2-5). 오랜 세월동안 무질서한 정치풍토속에 살아 온 우리국민으로서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좀 난해하지만, 지금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의미한 것이다. 권세자가 하나님의 뜻을 저바리고 악을 일삼으면 그것은 반듯이 자기가 한 피의 값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권세자에게 주권을 허락하셨다면 그의 행하는 모든일을 감찰하실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2장에는 흥미로운 기록되었다. 그당시 이스라엘은 헤롯의 치세에 있었다. 헤롯은 팔레스틴 일대를 관장하고 있었는데 오순절이 후 스테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서는 대박해가 일어났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충동을 받아 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또 베드로까지 죽이려 옥에 감금하였다.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옥에서 풀려나왔지만 우리는 주께서 왜 야고보를 그대로 죽게 하셨는지 알 수 없다. 옥에서 홀연히 베드로가 없어지자 그는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였다. 우리의 생각같아선 하나님이 권세의 주권을 갖으셨다면 이러한 자에게 천벌을 내리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야보고를 죽인일로 또 간수들을 무참히 죽인일로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는 두로와 시돈 지방의 이방인들을 매우 싫어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헤롯의 치세 속에서 양식을 먹어야 함으로 헤롯의 내관을 통하여 헤롯과 화목하기를 힘썼다. 왕의 내관의 설득으로 그는 그 사람들을 모아 놓고 왕복을 잘 차려 입고 단상에 앉아 연설를 하게 되었다. 그의 말에 얼마나 힘이 실렸던지 연설을 듣는 사람들이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라고 응대를 하자 헤롯은 기분이 너무 좋아 으쓱하여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였다. 그 일로 하나님은 벌레가 먹어 죽게 하셨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주관하고 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이 치세 때 있었던 일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고 자식이 많다보면 늘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이스라엘의 천년왕국을 일으킨 다윗에게도 자식의 문제는 예외가 아니었다. 다윗의 아들 중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다. 이때 다윗의 군대장관은 요압으로서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었다. 스루야에게는 여동생인 아비가일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압살롬의 반역에 군대장관으로 임명된 아마사이다. 요압에 의하여 압살롬의 반역은 평정되었으나 요압은 다윗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이고 말았다. 그후 베냐민 지파의 세바의 반역이 일어나 북 이스라엘 사람을 다윗에게서 분열시키려 했다.


다윗은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임명하여 압살롬으로 인한 군의 동요를 수습하였고 세바를 진압하기 위하여 그에게 유다장병들을 3일안에 소집시키라고 명하였으나 아마사는 기일내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할수없이 다윗은 사촌인 요압과 그의 형제 아비새를 보내어 세바를 추적하게 하였다. 이때 요압은 기브온에서 아마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아마사가 다윗을 신임을 입어 군대장관이 된 것을 시기하여 죽여버리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권세의 속성에 빠져 이종사촌을 죽이고 만것이다. 다윗은 이것을 잊지 않고 결국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한 것이다. 결국 요압은 솔로몬의 등극후 다윗의 아들 아도니아와 반란을 획책하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참으로 권세의 속성이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오늘 이러한 일들은 우리 정치사에서 비일비재하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되는 권세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이유는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의 날 까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이끌어 가시는 것이라고 할 때 그 권세의 속성 속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신정권으로부터 지금까지 구성된 정치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권에서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또 여당은 자기의 종적수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소정당의 정치철새들을 끌어 모아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일생을 모두 바쳐서 자기를 추종세력에 의하여 추대되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 추종세력에게 정치적 권력을 분배하여야 한다. 그러나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은 많고 또 자기 가신들 가운데서는 자신의 힘의 균형을 가추기 위하여 치열한 전쟁이 지속된다. 또 그 힘은 권력의 중심세력과 물질의 풍요에서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니 결국 그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권개입과 청탁을 하게 되고 그 권력의 최종선인 대통령과의 접근을 위하여 그의 아들들에게 접촉하게 된다.



어느 대통령이고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게 되면 먼저 자기 가솔들을 단속하게 마련이다. 그러만 문제는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믿을 수 밖에 없다데서 나온다. 수십년 동안 정적들의 압박을 받으며 최고의 통치자가 되기 위해 달려 오는 동안 그 가족들이 받아 온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그 가문의 영광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은 눈물로 다짐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가만히 내어버려 두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자신으 위치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적응의 반경도 바뀌기 마련이다. 야당시절의 대권주자의 아들들은 늘 상대의 비방과 보이지 않는 감시와 지배를 받으며 방귀도 마음대로 꾸지 못하고 살기마련이다. 우리 현정사에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이 그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전에 어떤 정치적 비리에 연루된 일이 있었던가,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권력도 돈도 없고 오직 그 아버지의 대권을 위한 봉사와 희생과 기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대통령이 되고나면 그들의 위치는 하루 아침에 황태자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이것은 직함이 없는 권세의 자리이다. 더우기 이미 그들은 성인으로서 나름대로 인격과 인맥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정치적 세력을 가추게되고 그들의 세력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힘을 구축하는 또다른 권력이 된다. 사실 대통령은 이것을 차단했어야 한다. 그러나 최고의 통수권자가 되면 야당시절 자신과 의기 투합하던 가신들도 정치적 속성에 맞물려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기에 혈안에 되고 대통령은 믿음의 구심점을 잃고 만다. 결국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일생을 고통을 감수하며 아비를 위하여 헌신투혼한 아들들 밖에 누가 있겠는가? 결국 대통령은 자기의 아들들을 통하여 여론을 듣게되고 국내 정세를 수렴하게 되며 그 아들들과 연결된 학연과 신진 진보 세력들을 중심으로 권외 세력을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혈연의 믿음 속에서 대통령은 그 아들들에게 보이지 않는 권력을 쥐어주게 되고 이것은 아들의 정치적 출세를 꿈꾸는 영부인의 베게 송사를 통하여 확고한 위치를 구축한다. 결국 대통령의 아들들의 반란은 권력의 균형을 분배하려는 가신들의 권력 투쟁과 자신의 새로운 정치적 소신을 완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믿음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대통령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가 사무엘하와 열왕기상의 기록을 통하여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 9단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정치적 속성을 깨닫지 못한 이유로 모두 정치 0단으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기억하여야 한다.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대통령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성경의 지식을 가추지 못하고 종교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실질적인 능력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911 테러 사건 이후 부시 대통령은 성경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 대통령은 빌리 그레함과 척 스미스 목사와 미국 대학생 선교 총재의 전화가 오면 5분 내에 받아야하는 통례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각 종교계의 지도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미국의 영적 지도자의 전화인 것이다. 나는 이중에 갈보리채플을 일으킨 척 스미스 목사가 있는 것을 매우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다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의 종들에게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 대통령은 물론 각계 지도자들은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야 할 것이다(내일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