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누가 대통령의 자식 농사를 말할 수 있는가?(1)

이요나 2002. 7. 7. 17:50


누가 대통령의 자식 농사를 말할 수 있는가?




지금부터 25년 전, 산사에 있었을 때 일입니다. 어느날 삼청동에 사는 어느 부인의 소개로 한 여인이 찾아 왔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존경하며 섬기는 분의 생사를 물어 왔습니다. 그때 나는 그 여인에게 아무도 그를 죽일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며, 방문을 나서는 그녀에게 후일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인해 큰 아품을 겪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워집니다.(어느분의 회고록에서)

먼저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 예찬론자가 아님을 밝힙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정책들을 책망하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스콤과 군중들의 흐름에 이끌려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못한 것을 분변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정치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습니다만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심을 생각할 때 정치와 복음은 불가불 깊은 관계를 갖고 있음을 생각하여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요즘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세상을 떠 돌고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자식 농사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남의 말하듯이 간단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처럼 자신있게 자식 농사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인생 말년에 자기의 자식들로 자신의 삶의 온전함을 증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래 참으로 수치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대통령을 우리가 정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의던 타의던 우리가 선출한 우리의 대통령을 모두 우리가 찍어 내리고 망명을 보내고 죽이고 간금 시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만약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농사에 성공을 하였다면 그는 어쩌면 다른 부분에서 못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자식 농사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로 하야를 당하였어도 그는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함께 대한민국을 건국한 우리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우리는 그를 하야 시키기 전에 우리의 초대 대통령을 독재자로 만들어낸 우리의 잘못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올라선 박정희 전대통령 그는 비롯 다시 독재자의 위치에 서서 자신이 휘둘렀던 총칼로 멸망을 받았지만 우리 민족 번영에 열과 성을 다한 대통령입니다. 우리 국민 중에는 아직도 박정희 전대통령의 영혼을 사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을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젊음을 이 나라의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하여 열정을 다바쳤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유신독재에 항거했던 일들은 우리 모두 잊을 수 없는 기억들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평법한 백성들처럼 자식 농사에 신경을 쓸 수 있었다면 아마 그들의 자식들은 이 땅의 정치적 모든 기반을 물려 받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가 살펴 봅시다. 우리는 유대인의 최고의 지도자 모세도 자신의 후계자로 여호수아가 선정되었음을 봅니다. 그의 아들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왜 하나님의 유업을 잇지 못하였을까요? 어떤이들은 모세의 처가 이방여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장인 이드로는 이스라엘에 귀화하여 위대한 모세의 동역자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스승이었던 엘리 제사장의 패망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식들의 책임을 물어 그의 가문은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비참하게도 엘리는 말년에 두 아들이 함께 죽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의 아들들을 다스리지 못한 엘리의 밑에서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이 성장하였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 사무엘을 키운 엘리는 왜 자기의 자식들을 온전히 교육하지 못하고 명망하게 하였을까? 이것은 그의 문제이기도 하고 오늘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이 문제는 다음에 이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내일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