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오늘은 고린도전서 두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앞장에서 고린도 교회의 지역적 특색과 환경적 배경을 살펴 보았습니다. 고린도
도시는 우주의 신비와 인간을 접목시키려는 헬라 철학의 정신적 바탕과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하는 항구도시의 지역적 특성과 그리고 우상숭배의 환경적
배경 속에서 전세계를 통합하고자 하는 로마의 정치적 야망 가운데 새롭게 탄생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착한 후 에베소로 건너가
3년동안 교회를 개척하던 중 이 편지를 썼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한 이유에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거룩하여 지지 못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은 '거룩'(하기오스)라는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오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 성도나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거룩함을 입은 우리는 모든
생각과 언행 즉 삶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편지 서두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거룩성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게 된 원인은 11절에 기록된바와 같이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성도의 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분쟁은 날이 갈 수록 더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켰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취한 하나님의 은혜를 그르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울은 18절에서 십자가의 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본문 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은혜란 헬라어 동사 '카리스'로서
'기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은혜에 관한 용어의 이해는 누가복음 1장30절과 사도행전 7장10절에 잘 타나나 있으며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약된 구속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이 은혜(grace)는 죄악 속의 인간에게 값없이 베푸신 긍휼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성취를 고대하는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즉 '성령의 은사'(카리스마)가 여기서 파생되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장 26절로 29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툭수한 계보를 따라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택하신 성민들 속에 국한 된 것이며, 조상으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직무를 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방인들 또한 혈통을 따라 나타나는 신의 축복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까지 내려와 우리 교회 속에도 모태신앙이라는 자위적
자랑을 하기도하며 최근에는 교회 담임직의 세습에까지 이르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혈통과 지혜를 따라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아심과 택하심과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 가운데 나타난 신적작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1장에서도 살펴 보았지만 바울 서신은 독특한 논리적 문장의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따라서 바울 서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그러한 말을 하게 된 동기를 분석해야 하며, 그것은 오직 문맥을 따라 귀납적인 세심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바울의
신학적 사상을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그가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강론한 신학적 사상을 깊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교회 사도로서 이방교회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4가지 신학적인 사상을 피력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서술하며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말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전 성경은 70% 이상이 이스라엘 역사에 해당됩니다. 구약은 창조사역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들의 시조의 탄생과 그들의 믿음의 시작, 그리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성공담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사람들의 결과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중단되고 다시 오실 그날에 다시 섭리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것이 로마서 11장 25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도
"형제들이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 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말하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신학 사상 중 두가지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것이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신학 사상 중 다른 두가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배워나갈 성령의 은사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함을 원치하노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것"이란 원래
원어에는 없는 것으로 번역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추가된 것으로 문맥을 따라 해석할 때 "하나님의 선물" "성령의 은사" 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강조한 4가지 신학적 사상 중 네번째에 해당되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교회의 휴거에 관한 일입니다. 바울은
종말을 고대하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살전4:13)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앞에서 언급한 3가지와 달리 "우리"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개인적인 지식과 체험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확신하고 고대하는 성도들 모두를 지칭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시간에 고린도 교회의 특성과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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