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1:21) 나 따라 오면 사탕줄께?!

이요나 2002. 10. 19. 17:46
(고전1:21) 나 따라 오면 사탕줄께?!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원인을 살펴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 우리가 배우게 되겠지만 고린도 교회처럼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은 교회도 없다. 그러한 축복을 가리켜 바울은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1:9)말하였다. 사실 그들에게 나타난 능력은 그들 삶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쁨과 자부심은 오직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이며 능력이였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들이 마치 자기들의 것으로 착각하고 그 전도의 지혜가 마치 자신들에게서 나온 것인냥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상 속에서 그들의 분쟁은 인맥을 따라 나타났다, 바울은 12절에서 "나는 바울에게서 나는 아볼로에게서 나는 게바로부터 나는 예수로부터 속한 자라" 기록하여 분열의 발생이 자기와 아볼로의 제자들에게서 시작되었음을 언급하였다. 바울은 3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요"(고전3:4)말하였다. 이처럼 그들 가운데 경쟁의 조짐은 매우 심각했던 것이다.



아볼로는 사도행전 18장24절에서 처음 소개되는 전도자로서 에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성경학자였다. 누가는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행18:24) 소개하였다. 에베소에서 전도하던 아볼로는 바울의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가를 만나 복음을 전수 받은 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아가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는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었다. 누가는 "성경으로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행18:28)고 기록하였다. 그후 아볼로는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의 담임이 되었다. 바울은 아볼로의 수고에 대하여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따라서 아볼로를 통하여 타나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어떠하였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얼마전까지 갈보리채플에는 정말 해박한 말씀의 지식을 가진 위대한 성경학자 둘이 있었다. 바로 코스타 메사 갈보리채플 부목사를 지낸 강해설교의 명인 데이빗 학킹 목사와 25년간 갈보리채플 성경대학 학장을 역임한 래리 테일러 목사이다. 이들은 원래 척스미스 목사의 제자가 아니라 타교간 목사로서 갈보리채플에 전향하여 척 스미스 목사를 도와 갈보리채플 사역에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몇년전 이 두분은 모두 갈보리채플 사역 일선에서 물러났다. 여러 가지 소문들이 분분하지만 나는 이 두분의 문제도 오늘 바울이 거론한 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 갈보리채플은 1960년도 척스미스 목사의 예수운동으로 출발하였다. 성경의 온전한 가르침과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수천명의 제자들이 양성되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척 스미스 목사님과 함께 동역한 사역자들의 헌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부터 갈보리채플 안에 데이빗 학킹, 레리 테일러의 인맥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성장한 인맥들을 중요시 하게 된다



바울은 17절에서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말하므로 이들 가운데 나타난 복음 전도의 지혜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것은 단면적으로 이들을 통하여 나타난 지혜가 전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복음전도를 위하여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셨다는 말이 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말의 지혜에 있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 이라고 강력히 강조하므로 그들의 전도에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으로 교회의 사명이다. 주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으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전1:8) 하셨다. 따라서 주께서 부르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전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의 전도가 목적만 성취되면 되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떠한 방법으로던지 복음만 잔하면 된다고 한다면 구태어 복음전도를 위한 성령의 은사들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나름대로 그 살아 가는 지혜와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실 권세를 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하게 하고 그들 각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 주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엡4:11-13 참조) 그런데 날이 갈 수록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고 사람들은 전도라는 사명에만 불타 그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다.



물론 전도는 어쨋던지 그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 아무리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다고 해도 사람들 가운데나타나는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민망할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사람들은 그 나타날 열매를 위하여 방법을 선택하게 되며, 서로 경쟁의식이 생기게 되어 앞뒤 분간하지 않고 달려나가게 된다. 가령 바울에게서 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씸히 전도를 해도 개척교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볼로의 제자들은 수백명의 전도를 하게 되었다면 바울의 제자들로서는 얼굴이 뜨거워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바울이 여행에서 돌아 오면 그들은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내가 순복음 교회 다닐 때 그 당시 몇년 동안 전도왕으로 뽑힌 여집사가 있었다. 그녀의 간증에 의하여 자신의 전도 대상은 어린이들로서 매일 방과 후면 북을 걸머지고 사탕 바구니를 들고 학교문 앞으로 갔다고 한다. 아이들이 교문으로 나오면 북을 치며 사탕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는데...처음에는 10발자욱 걸으면 사탕 하나,., 수무 발자욱을 걸으면 껌하나,,100발작을 따라오면 연필한 자루 이렇게 하여 교회 문턱까지 줄줄이 데리고 와서 교적카드에 이름을 등록하게 하여 매년 전도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만약 이렇게 하여 영혼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린이에게는 사탕봉지, 초등학생에게는 학용품, 중학생에게는 스타킹과 연예인들의 스티가,, 하긴 요즘에는 각 교회마다 우산, 티셔츠에 생활용품까지 등장하고 있고 기도원 집회에는 자동차까지 경품에 올라와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와 기도원 입구에는 성령 대방 전도 집회라는 팻말을 걸어 놓는다. 어디 이것이 전도라고 하겠는가? 이것은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짐승을 다루는 조련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고 기록하였으며 다윗의 시를 인용하여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19절) 기록하였다. 이것은 복음전도는 세상의 지혜가 절대로 매개체가 될 수 없음을 단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의 영광은 사람에게 있고 세상의 지혜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전파를 위해 미리 아신자들을 부르시고 예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나타나실 것을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21절) 기록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도가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 이름을 전하면 그것이 전도하고 말한다면 가가호호 누비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하여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들도 하나님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가끔 올림픽 운동장 같은 곳에서 대형 전도집회를 하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저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도의 방법일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것은 전도가 아니라 믿는 자들을 모아 놓고 무엇인가 자기들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2장4절에서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