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1:2)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요나 2002. 10. 11. 14:47
(고전1:2)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고전1:2-3)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목요 저녁 성경 여행은 로마교회 탐방을 끝내고 이제 고린도 교회로 발을 옮겼다. 2000년 9월 첫주부터 마가복음 여행으로 시작한 우리의 성경공부가 고린도서에 이르게 되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 그동안 목요예배를 참여한 젊은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의 신념은 오직 성경의 기록을 깨달은 마음을 살펴보며 이 시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있다.



주일 오전 예배의 예레미야 성경강해와 오후의 복음서 연구 그리고 화요일 성경적 카운슬링 과정의 강의 준비로 시간에 쫒기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의 일과 속에서 성경을 달려 가는 시간보다 더 귀한 시간은 있을 수 없다. 홈페이지를 통하여 칼럼으로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함계하시기를 기도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고린도전서 1장은 고린도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고린도서를 이해하는 열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바울서신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의 발견은 바울이 각 교회에 편지를 쓴 이유를 찾아 내는데 있다. 따라서 로마서 1장에서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쓰게된 동기를 먼저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고린도의 지역적 상황을 먼저 살펴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다. 이 편지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 에베소에 가서 3년을 머무르며 글로에로부터 전달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쓰게 된다,



고린도는 는 펠로포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좁은 해협 남쪽의 2km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서쪽에 고린도만(灣)과 동쪽에 샤론만이 자리잡고 있어 고대로부터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이곳은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동쪽으로는 이집트와 동방의 상인들이 들어 오는 통로가 되었으며, 그당시 네로 황제는 지협을 뚫는 운하공사를 착공하였으나 근대(1983년)에 와서 완공되였다.



고린도는 펠레포네소스 전쟁(B.C.431-404)이후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주도했던 헬라 동맹의 중심지가 되었고 B.C.14년 로마 루시우스 뭄미우스 장군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후 많은 반로마 운동이 일어 났으나 B.C.44년 율리우스 시이저에 의해 로마 정부의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어 로마 시민들을 정착시키므로 그 당시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네네를 능가하는 대도시로 발전하였으며 로마와 그리스도, 유대와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후 고린도는 귀족사회의 악인 노예제도가 만연하여 인구 250.000에 1.3배에 가까운 노예들이 있어 60만의 대도시가 되었으며, 전세계의 문물이 교류하는 천혜의 지역적 천혜를 누리면서도 인류에 혜택을 주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악의 축이 되고 말았다. 고린도가 부도덕하고 악한 도시로 전락한 가장 큰 원인 은 고린도의 가장 높은 지역에 세워진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프로디테"신전의 종교적 영향과 귀부인들의 의 사치로운 행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적 타락한 사람들의 생활은 고린도 교회에까지 미처 바울으리 편지속에서 강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고린도는 헬라어로 "코린디아조마이"(부도덕의 산실)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그 당시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수천명의 창기들이 여사제로 헌신하고 있어서 밤이면 밤거리로 나와 몸을 팔아 그 얻어진 돈으로 성전을 꾸려 나갔다. 그 당시 평범한 고린도 여인들은 그 창녀들과 구분을 하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두르게 되었는데, 바울은 이러한 풍습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하여 여자들은 교회에서 머리를 쓰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교회에 적용된 것이 아니라 고린도지역의 툭수성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여신도들에게 외부로 부터 오해와 공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려진 조치였다.



또한 신전에 제물로 바쳤던 짐승들의 고기가 시장에 유입되어 고린도 사람들은 제물을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이 문제도 교회 성도들 간에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었다. 그러므로 노예의 범람과 창녀들 그리고 이교도의 종교적 행위와 성적인 문란으로 들끓는 고린도는 인간의 심령 속에서 죄로부터의 진정한 자유가 요구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피조물의 절규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 바울의 환상 가운데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미게도냐 일대에 전해지게 된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때는 A.D.52-56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린도전서 1장 서두에서 바울은 먼저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테네"라고 기록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 시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부터 그를 지켜 준 회당장 소스테네가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행18:17). 이것으로 우리는 소스테네가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바울은 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거론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정의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한 세상과 다른 위치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라는 말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고린도에는 다른 방법으로 거룩하여지려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방신을 예배하는 방법과 그 당시 만연하고 있던 그리스 철학 그노시스에 참여하려는 풍조였다. 바울은 거룩 즉 헬라어로 "하기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바울은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 기록하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평등하여지는 성도의 권리를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이 편지를 쓰게된 주 분쟁의 원인이 된 사도와 교부들로부터 발생한 계파간의 알력을 경계하려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바울은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그 이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 서신의 서두를 장식하는 바울 특유의 인사법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다. 평강은 히브리어로 "살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평안으로 메시야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은혜는 헬라어 "카리스"로서 신적인 매력을 동경하는 헬라인들의 성격을 대변한다. 그 당시 고린도 지역 사람들은 만연된 헬라 철학 사상과 로마인의 마음을 매료시킨 신적 세계로부터 오는 지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도행전에는 그 당시 아덴과 고린도 일대 사람들의 정신적 사상에 대하여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라"(행17:21) 말하였으며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17:22)고 말하였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 신적 세계를 향한 열정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된 원인이 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다음 시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 원인을 구채적으로 살펴보면서 고린도교회의 특성과 문제점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점을 파헤쳐 나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