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2:4-5)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더냐?!

이요나 2002. 10. 31. 16:07
(고전2:4-5)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더냐?!


우리는 앞에서 4번에 걸쳐 고린도교회의 특성과 문제점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또 천한 신분의 사람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세상의 지혜자들과 변증가들을 능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1:5-7)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복음전도를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경쟁 심리가 작용된 것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계보를 따라 공동체를 이루다보면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처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같은 원리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이러한 과도한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된 원인 중에는 그당시 사람들의 이념체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전1:22)증언하였습니다.


그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의 이념체제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은 신적 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천년 동안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삶속에서 그들 앞에 세우신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난 신적 체험들을 보아왔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 속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신적 능력이 표출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로인하여 주께서는 그들 앞에 더이상 표적을 보이지 않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 이미 엄청난 신적역사가 나타났는데도 그때는 귀신의 왕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헬라사람들은 지혜를 요구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수많은 철학자들이 나타났고 왕들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모두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라를 일으킨 알렉산더 대왕도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우리 교계는 두가지 중심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성령의 은사를 중심으로 한 표적이며 또 다른 한편은 서구 신학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한 지식적 세력입니다, 그러하여 어느 한편에서는 지도자에게 나타나는 은사를 자랑하고 있고 어떤 교회는 지도자의 학문적 바탕을 중요시 합니다. 이들을 향하여 바울은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말하였으며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2:14)하였습니다.


바울은 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을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말하며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그들을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르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목사들의 설교를 보면 성경 본문과 전혀 관계가 없는 윤리적인 것, 도덕적인 것 등을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한 두구절을 인용하여 결국 자신의 생각하는 바와 목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지요, 그들은 미사려구를 사용하며 재치있고 능변있는 말로 듣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적 언변에 현혹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조차 알지 못한 체 은혜받았다고 아멘 아멘을 외치며 감격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은 목사에게 질들여지고 결국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머물게 됩니다(5절 참조)


바울은 전도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여서는 않되며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나타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니 앞에서 제가 사탕을 가지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끈 것은 절대로 전도가 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식과 사람의 지혜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구태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밖히심은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드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입니다. 그런데 누가 성령의 나타나심이 아닌 인간의 방법과 설득으로 예수를 믿었다면 그는 예수를 진정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새로운 학설을 받아 드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온전한 지혜는 세상의 지혜나 학문적 지식을 가진 지도자들(우리 성경은 관원이라 기록)가 아니라 오직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졌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증언하였습니다.(고전2:7, 엡1:3,4) 만약 혈육과 세상적인 지혜를 터득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한 지혜를 알았다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나타나심에 대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2:9)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그의 미리 아심 속에 예정하신 비밀한 일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을 말한 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요지를 잘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는 지금 누가 전도할 것인가를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당시 교세가 확장되면서 세상의 지식인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자신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유세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교회에서 대단히 미묘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것을 세상의 지혜로 볼 것인지,, 어떤 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구분할 것인지,,이것은 세상적인 잣대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 외국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가 있다고 하십시다. 물론 그는 전도학 설교학 교회 성장학, 윤리학과 신구약 개론은 물론 원어를 통괄하여 배운 지식인이라고 합시다. 또한 그는 열정적인 웅변가라고 할 때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설교에 감탄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실로 하나님으로부터 택함과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할 때 사실 그가 말한 모든 것은 자신이 배운 세상적인 지혜일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당시 예수를 믿는 수많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있어 교회 속에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말하며 택한자들의 사역에 대하여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하였습니다.

주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으며 요한은 "너희안에 기름부음이 있으면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성령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구별할 수 있느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과 육체를 따라 나타난 사람들을 분변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말하며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앞에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다고 할 때 그가 전정한 그리스도의 보내신 자인가를 분변하는 것은 그가 성경에 기록된 진리만을 온전히 가르치며 그 가르침대로 행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성령으로 거듭나 있는가는 더욱 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