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3: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 없이 되었더라
오늘은 매우 의미 심장한 부분을 살펴보게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늘 비유로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이나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여러가지 천국에 대한 여러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비유란 헬라어로 "파라블로"로서 배가 항구에 도달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그대로 설명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 비유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고 애를 씨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유는 절대로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를 부르신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13장에서는 우리가 이해하기 난해할 정도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우기 흥미로운 것은 13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니라"(1, 3, 6, 8)는 기록이 여러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주께서 어떻게 예레미야와 말씀을
나누셨을까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예레미야가 알아 듣기 쉽도록 정확하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주일학교 때부터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들어왔습니다. 그가 눈물을 훌리는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장차 자기 민족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백성들에게 눈물로 호소한 것이며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 자기 민족을 위한 눈물의
중보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이처럼 눈물의 선지자가 된데에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다가 올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그 상황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우리가 어머니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따나고 나면 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글썽이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라
해도 서로 충분한 대화나 교제가 없었다면 그 슬픔이 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생전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들이
떠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곤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오히려 민망하기 까지 합니다. 이와 같이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가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가까운 곳에서 말씀을 나누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정황을 모르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통으로 짠 옷을 걸치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날씨가 더운 중동지방에서 통풍이
잘되기 위한 가장 편한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 통자로 짠 옷은 무릅아래까지 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려면 불편하여 허리띠를
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허리띠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띠의 중요성을 충분히 경험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하실 때 여호와의 유월절을 제정하시고 "너희는 이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출12:11)하셨습니다. 또 이들은 애굽에서 빠져 나올 때 허리를 동여 매고 달려 나왔을 것이며 홍해를 건널때도 허리를 바짝
잡아 매었을 것입니다.
오늘 주께서 너는 가서 베띠를 사라는 말씀 속에서 그당시 유대인들의 정체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유해지고
살이쪄서 일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허리띠의 중요성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마 종교 의식상 호화스런 보석과
장식을 하여 남들에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서 띠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의 허리띠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부족 중 레위족을 선별하시고, 특별히 아론의 자손들로 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옷에는 12 보석으로 박은 후 띠를 띠도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띠를 사라고 하신 말씅은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어쩌면 제사장들의 존재가
무의미한 존재가 된 것을 비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요한 계시록 4장을 보면 주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하시며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4:17)
꾸짖으신 후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계4:18) 하셨습니다. 이처럼 물질적 부요함은 우리의 눈을 멀게합니다.
3절에는 띠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마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허리띠를 매고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 때에는 침대 옆에 풀어 놓아 하시라도 맬 수 있는 자라에 놓아 두었을 것입니다. 어딘가 급한
일로 달려 갈 때에는 뛰기 좋게 옷자락을 위로 올리고 허리띠를 바싹 묶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허리띠의 유용함을 실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께서 "사서 허리 띠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하셨습니다.
유브라데는 팔레스틴 북쪽에 위치한 바벨론 제국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곧 다가 올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모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여러날 지난후 하나님은 감추었던 것을 파고 띠를 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브라데로 가서 띠를 파내 보니 띠가 썩어서 쓸데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예레미야는 그 때까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말씀 하시며 "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집과 유다 온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11절)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띠는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띠처럼 여겼던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하여 자신들의 영광스런 존재가 얼마나 비참하게 될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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