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겔3:9)내 이마는 다이야 몬드

이요나 2003. 3. 31. 10:24
(겔3:9)내 이마는 다이야몬드!

(겔3:9)"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게 하신 것은 이미 성경에 기록하신 그의 말씀속에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배우겠지만 에스겔의 예언은 이미 그의 앞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말씀들입니다. 또 우리가 어떤 지식을 알고자 할 때 그 기본적인 지식들을 터득하여야만 그 다음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적인 품성이 있어서 그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하여는 그 지식의 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학문과 역사와 문화와 수리의 기본적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 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서로 말이 다르다면 내게 있는 지식이 무익합니다. 그러나 말이 통한다면 또 그들이 나의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지식적 레벨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 없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 왔습니다, 그들이 보는 두루마리 성경이나 에스겔이 받아 먹은 두루마리 성경은 모두 한 하나님이 쓰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자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팍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이함이니라"(3:7) 말씀하였습니다. 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말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이 강팍하여 말씀을 듣지 않고자 돌아선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악어 입을 벌리는 것 보다 힘이 듭니다.



저는 가끔씩 그러한 사람들을 봅니다. 언젠가 부터 불신에 사로잡혀 나를 원수보듯 대하는 사람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굳어질대로 굳어져 내입에서 나오는 말은 콩으로 쑤어도 듣지 않기로 작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 받아드린 사람도 드물 정도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나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였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언젠가부터 나에 대한 불신이 싹터 나의 모든 것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말씀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을 때 뿌리가 없어 넘어지는 자들이라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대하는 에스겔의 이마를 화석보다도 더 강한 금강석 같이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뻔뻔한 자보다 더 뻔뻔하게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의 굳어진 마음은 화석과도 같아서 그 어떤 것으로도 화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내 속 마음과는 달리 더욱 민감하고 강열해지는 것입니다. 흡사 두개의 커다란 기압이 충돌하는 것과도 합니다. 밤이면 그 아품을 안고 기도를 하지만, 번번히 그들의 받아드리지 못하고 폭발하는 내 모습은 정말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흡사 일생일대의 자존심을 건 싸움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그들에게 고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3:10)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입에서 달다고 먹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입에 달면 먹고 쓰면 뱉아 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공감을 한다는 것이며 귀로 듣는다는 것은 관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신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무너지면 그 두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 없습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무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결별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을 때 내가 누구와의 관계를 갖고 있느냐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만약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자신의 믿음의 기준을 삼는다면 언젠가 두사람 사이에 불신이 생길 때 곧 넘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입에서만 달다고 먹을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공감을 갖고 하나님과 신뢰의 관계를 갖고 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으로부터 시작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하였습니다. 요한은 태초의 말씀에 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마가는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삼가 주의하라고 경계하였습니다.



오늘 에스겔이 하나님으로 부터 말씀을 받아 전달할 백성들은 다름 아닌 사로 잡힌자들이였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사로잡힌 자들을 풀어 주기 위하여 입니다. 이사야는 갇힌자를 풀어주며라고 말하였습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은 군대귀신에게 사로잡힌 자의 사슬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어지고 강팍해진 마음의 영적상태를 역학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언젠가 부터 세상에게 빼앗겨 이마가 굳은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할 정도로 강팍해져 버린 것입니다. 때로는 굳은 이마를 한 자들 앞을 물러나지 말고 그들보다 더 강한 금강석의 이마를 갖고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하지 않았다면 그러지 마십시요. 이것은 오직 주께서 행하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오직 내 삶과 하나되신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실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