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5장-5)사랑의 테마 5가지
요한복음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담넘은 가지
오늘은 주께서 하신 5가지의 테마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5가지 테마 중 그 첫 번 째는 열매맺는 가지입니다. 오늘은 성경 이야기 속에서 열매와 관련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에는 야곱이 자기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요셉에게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고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모두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담을 넘은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보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이것은 먼저 열매의 풍성함을 자기 집안에 가득 채워 집안의 사람들로 모두 그 풍요로움을 느끼게 하고 그 가지가 담을 넘어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미치는 풍요로움이 어떠한 것인가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말씀입니다.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은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를 알게 하고, 또 어떻게 하여 그런 축복을 받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담 밖의 사람들이 어떠한 경우에 처해 있든지 간에 우리를 통하여 흐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감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갈망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가지인 우리는 우리와 접촉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택하신 목적
오늘의 중심 본문으로 삼은 16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선택한 것만이 아니라 그 열매가 항상 있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열매가 항상 있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 22장을 보면 달마다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하나님의 강가에 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켈서 47장에서도 이와 동일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만 이 강의 특징은 그 생명수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자랑합니다만 그것은 흥미로운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흥미로운 일은 아닙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고난을 간증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입었는가를 자랑합니다만 나는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삶이 열매를 맺고 있는가 또한 그에게 열매가 항상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열매란 숫자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서 열매란 성도의 숫자나 교세에 두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이방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을 택하였을 뿐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다 택하면 될 것을 오직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로 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를 얻고 그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나의 인생 속에서 열매맺기를 원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바울은 "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사랑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한 사랑이 흘러 넘칠 때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 영광을 받게 되시는 것입니다.
주의 명령
이제 주께서 강조하신 두 번 째 테마 나의 계명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13장으로 돌아 가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계명에 관하여 처음 말씀하셨습니다. 14장 15절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하셨고 다시 21절에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하셨고 다시 23절에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나의 말을 지키리라"하셨습니다. 15정10절에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12절로 연결되어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는 이것이다"하시고 17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자기 희생의 사랑으로서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에서도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사랑은 주는 사랑 즉 자기를 희생하여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희생적 사랑입니다.
어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였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서 무엇이 가장 큽니까?" 이에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명심보감 "쉐마"(들으라/신6:4 )를 가르치셨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주이시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막12:28) 말씀하시며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하셨습니다. 마태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40)고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성경을 간단하게 요악하면 첫째로 오직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사랑하라는 것이요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테마의 핵심
따라서 이 두 가지 말씀 속의 핵심은 "사랑"으로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근본이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자기 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자기 희생적 사랑 즉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의 말을 언뜻 들으면 참으로 위대한 사랑이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살펴보면 결과적으로 자기와 자기 교회의 목적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봉사도 결국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또 자기교회의 성장을 목적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은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도 그만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본연의 임무에 해당하는 주의 명령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자기 중심적이 되어서 모든 것을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으로 주께서는 친구라는 개념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친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가 생각할 때 요즘 같은 각박한 세월 속에서는 친구라는 단어 자체가 무색하여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구한 살생성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위대한 영웅을 보는 것처럼 흐믓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랑의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단히 우리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 주께서 왜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셨겠습니까? 그래서 주께서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 즉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할 수 있냐?
주께서 하신 사랑의 계명에 대하여 설명하신 요한복음 13장부터 15장까지를 거슬러 가면서 우리가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보혜사 성령에 관한 것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14:16)하셨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또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장 26절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하셨습니다.
또 15장 26절을 보면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다"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6정 7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헤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주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기 위하여 또 그 사랑을 이루실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떠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13절에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고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사역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심과 우리가 그의 명령을 늘 생각나도록 가르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의 사랑을 증언해 주시며, 세상의 죄와 그리고 우리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의(義)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중명하십니다. 또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앞으로 일어 날 일들을 알려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계신 그 증거의 열매는 우리의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는 열매로서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강조하신 3번째 테마 기도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내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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