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15장-6)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통로!

이요나 2001. 1. 15. 13:53
(요한복음15장-6)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통로!


요한복음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앞에서 주께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5가지 테마 즉 열매맺음, 계명, 사랑, 보혜사 성령 그리고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주께서 강조하신 5가지 테마는 모두 연결고리를 가진 말씀으로서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쉐마라는 것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쉐마는 주께서도 증명하신 율법의 최고 강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계명보다 큰 계명은 없다고 하시며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태어남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민(聖民)으로서 이스라엘 여인들은 임신을 하면 태 중의 아이에게 쉐마(이스라엘아 들으라/신6:4)를 가르칩니다. 쉐마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첫째 계명을 어겼으며 또 자신들의 형제인 유다 지파의 혈통 예수를 죽임으로 두 번째 계명도 어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태어남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13장 34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이 사랑은 세상의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 사랑으로 받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 같이 귀한 사랑은 없다고 하시며 자신의 사랑은 그러한 희생적 사랑으로 주는 사랑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이시며 자신들의 형제인 예수를 죽였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이 에덴 동산을 잃으면서 상실된 사랑으로서 인간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성령만이 실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실상은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주께서 떠나신 후 주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열매맺는 법칙
    바울은 성령의 열매는 오직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헌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함과 그의 계명을 가지고 사랑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설명하셨습니다. 또 주께서는 이 단지 열매를 맺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항시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 말씀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우리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다하더라도 죄성의 육체는 아직 온전한 성결을 이루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을 쫒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우리의 죄성을 씻어서 우리에게 더욱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15장 1절로 3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이루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이 계시다 해도 그것은 그의 존재적 임재이지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은 내 의지와 관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는 인격체로 만드셨고 그 인격을 존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의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반영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우리의 의지를 온전케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앞 둔 고통의 심경을 토로하며 그러나 이것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달라고 기도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처음 자신의 의지를 솔직히 서술하였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떠나기를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그로 하여 자신 의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소망하도록 이끌어 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기도를 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로 우리의 의지를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한 기도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바울은 성령도 한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말하시리라 하시며,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믿는 자 속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의로 하시지 않고 듣는 것을 말하신다 하셨으니 우리의 기도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도우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를 발휘할 수 없는 초급한 상태의 일입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공회에 서거든 무슨 말을 할까 준비하지 말라 하시며 성령이 너희에게 할말을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오늘 나는 이 문제를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먼저 주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 된 자들에게는 더없이 커다란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고 찾는 자마다 다 이루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의 말씀이 그리스도임을 알 때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He may give it to you
    또 주께서는 다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을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하셨습니다. 여기서 주께서는 택함의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한 서기관이 예수께 나아와 내가 당신을 따르겠다 하였습니다. 그때 주께서는 나는 내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불러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 때 그가 나로 하여 나의 부친을 장사한 후에 주를 따르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주께서는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주의 주권적 선택입니다. 이 말씀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부흥사들이나 또는 부모들의 의지에 의하여 목사의 길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 교회의 세습사건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이 과연 주께서 선택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주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성경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한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다 받게 함" 즉, He shall이 아니고 He may라고 된 부분을 음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중요성
    기도란 한마디로 말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름받는 자의 자의적 동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의 목적은 자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을 알기 위해 그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나의 소망인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기도란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그의 소망을 따라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자신의 법을 심어 두셨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그것이 우리 마음에 와 닿아서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토할 때 그 문이 열려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고자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로 알게 하시고 그것을 깨달은 우리는 다시 그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동의를 올림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하심"(He may give it to you)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문을 여는 통로로서 우리가 드린 기도 중에 이루어진 것은 그의 뜻 가운데 그 분이 성취하고자 한 일들인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한나가 첩 브닌나의 충동으로 하여 원통하여 눈물로 간구하였기 때문에 들어 주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 엘리제사장이 그의 자식들로 인하여 심히 부패하여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폐하고 다른 지도자를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제사장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때 한나가 하나님 앞에 드릴 한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물론 한나는 수십 년 동안 자식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할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원통함을 풀 아들을 달라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나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칠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아픔의 환경과 그로 인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통로입니다.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였습니다. 또 그는 너희가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너희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