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대법관의 성전환 판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요나 2006. 7. 8. 15:08

 

(시72: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이 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시입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다윗이 간음으로 얻은 우리아의 처 밧세바가 낳은 아들입니다. 다윗은 많은 처를 두었지만 그 여인들은 진정한 마음의 사랑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정략적인 결혼으로 얻은 아내들입니다.

 

솔로몬이 왕위를 물려 받기까지에는 그보다 먼저 낳은 아들들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겪어야 했고 그후 아도니야가 제사장 아비아달과 요압장관의 지지를 업고 왕권에 도전하여 반역을 일으켰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왕위는 선지자 나단의 지혜로 솔로몬에게 돌아 왔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께 수와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영화는 아버지 다윗의 믿음과 언약을 따라 전수된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 시는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하기 직전에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 솔로몬은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사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왕은 메시야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나 솔로몬 앞에 아버지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지혜와 능력을 받은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먼저 판단력을 요구한 것은 그가 지도자로서 국가의 통치에 대한 그 모든 것을 결정을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왕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으로 인간의 지혜로 나라를 통치할 수 없고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여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의 마음과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물었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부와 수도 겸하여 주었습니다.

 

지혜란 지식과 분별력을 겸해야 합니다. 지식과 분별력이 없는 지혜는 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아버지 좋은 스승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 모든 지혜가 빛들의 아버지를 통해서 내려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의 판단력을 왕 곧 통치자에게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거룩함과 공의가 겸비된 지혜만이 세상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달라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왕과 스승과 지도자를 만나 하늘의 지혜를 얻었다 하드라도 내가 주의 의를 얻지 못하면 그 지혜와 판단력은 모두 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에는 악한 지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생명을 죽이는 핵을 만들고 살상을 위한 생화학들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사용될 많은 문명의 기기들이 사람을 해하고 사람들을 무용하게 하는 악한 일에 사용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의와 판단의 지혜를 주시는 것은 주의 백성 곧 가난한 자들을 공의로 판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새롭게 제정되고 있는 법들을 보면 이 나라에 의가 살아 있는 것인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법의 공정성 불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과 같은 역사 되돌리가 거듭되고 분배란 명분으로 우리 사회는 익숙하지 않은 좌파식 정책에 이유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국가 통치자의 사고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과연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권세가 어디로부터 출발한 것인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통치자들의 가장 큰 잘못은 권세의 근원에 대한 무의식이란 것입니다. 그 권세가 출발한 곳을 알 수 있다면 그는 그 권세의 근원을 향하여 자신이 행하여야 할 지혜를 구할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에게 있어 창조의 지혜란 죽은 부처에게 절하듯 하는 무지에 관한 것이겠지만 이들이 만약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 줄 짐작한다면 지금이라고 자신들의 출발선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김정일이 미사일을 발포한 것과 같은 무법한 행위에 대해서 온 세계가 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 통치자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침묵의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말할 형편이 아닙니다.

 

이런 커다란 통치권에 관한 것은 그렇다고 치고 얼마전 우리는 대법관이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의  원심을 깨고 사회적이나 의학적으로 여성의 조건을 갗추었다면 소수의 인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여자로서의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판결을 접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성을 남자나 여자로 임의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이 남녀의 성별 기준을 정하는 위치에 선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지난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승인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한 동성애자들이 호적을 바꾸는 일을 합법화 하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지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회주의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선교대국이라 일컫고 교회가 자판기처럼 늘어선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합법화 되고 있는 것이지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 심히 두려워집니다.

 

나는 오랜 세월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의 모습과 생활 방법은 여성화 되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생물학적이든 의학적이든 생활의식에 있어 모두 정상적인 남자들입니다. 그들의 성적 성향이 여성화 되어 남자들을 좋아하게 된 것으로 하여 그들이 비록 여성이 되기를 원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엄연히 남자인 것입니다.

 

그들인 인위적으로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아 근육이 이완되고 가슴이 나오고 피부가 여성화 되어도 그들의 남성적 요소들 (목뼈를 비롯한 뼈대)은 처음부터 남자인 것입니다. 그들의 염색체는 남자이며 목소리도 남성이며 그들의 모든 생물학적 요소가 다 남자인 것입니다.

 

그들이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수술을 통해 남성의 성기를 포기하고 턱을 깎아내고 모근 제거 수술과 유방확대 수술을 했다 해도 그들은 분명 남자인 것입니다. 만약 이들을 여성으로 호적을 바꾸어 준다면 이들은 합법적으로 남성과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만약 대법관이 이들을 정당하게 여자로 판결할 수 있다면 하리수를 자기의 며느리로 받아 드릴 수 있었야 하고 자기들의 아들들이 성전환 요구를 하면 받아드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법이란  소수의 인권도 존중되어여 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은 창조자의 섭리와 질서를 초월할 수 없으며 인류의 도덕과 윤리를 초월해서는 않된다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이 성전환 한 것을 모르고 그들과 성적 관계를 갖었던가 더 나아가 결혼을 하였다면 후일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성들의 정신적 고통과 그 가족들이 받아야 할 심적 영향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지 참으로 이해가 않되는 판결입니다. 나는 이러한 판결을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합당하신 판단이 그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3절에서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산들이란 세상을 다스리는 크고 작은 지도자들을 말한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사람들 곧 주의 제자들과 성도를 지칭한 것이기도 합니다.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과 정직함과 세상을 밝히는 모든 진리의 빛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평과 공의를 따라 임하는 하나님의 판결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입박하는 자들을 꺽의로다(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 땅에 의의 지도자를 세우신 것은 이 땅에서 고통받은 주의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5)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의의 나라를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의가 가득한 날을 바라봅니다. 불의가 충만하고 죄가 흉융한 세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는 주께서 세우신 의의 사자들로 하여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충만케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저희가 생존하여 땅끝에서부터 예물을 드리며 저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라 축복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의 날에 있을 영광을 송축한 것입니다.  이 모든 영광이 오직 그의 이름을 좇아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17)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흥망의 세월 속에서 많은 고통과 신음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아픔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날로 악하고 곧 멸망받을 것 같지만 주의 날이 임하기까지 그 누구도 세상을 멸망치 못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멘 아멘으로 종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기도이며 솔로몬의 소망이며 또 이 땅에 거한 모든 성도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홀로 능하신 우리 주께서 그 말씀을 따라 그의 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