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교회의
모델
서울 갈보리채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갈보리채플 교회에서는 교회의 모델을 사도행전에서 찾고 있다. 교회역사를 바라볼 때에 대부분이 슬픈 사실과 실패의 사건으로 가득차 있다. 교회의 깃발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끔찍한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
내가 대학을 갔을 때 교수들이 내가 크리스챤인 것을 알고 난 후 나에게 아주 큰 어려움을 주었다. 그들은 내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교회사의 비리를 들춰내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반응하기를 “여보시요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표본들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지 말고 기독교를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판단해 보라 그가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한번 살펴봅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에 문제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적인 가르침에는 회의론자들도 아무 문제를 삼지 않는다.” 문제는 크리스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요 그들이 예수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문제인 것이다.
계시록을 보면 예수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 쓰신 편지가 있다. 심지어는 초대 교회들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셨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거짓 교리가 몰래 침투하여 교회 내에서 썩어진 씨가 뿌려져 점차로 자라고 있으며 교회를 잠식하고 있는 흠들을 지적 하셨다. 교회가 시작한지 일세기 말엽에 교회의 대부분이 실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노스틱주의와 아리안주의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직의 발전과 교회조직의 설립이 교회역사의 초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쓴 편지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일들을 나열하시고 책망 하셨다.
이때가 교회가 처음으로 설립 된지 육십 년도 되지 않았을 때이다. 교회가 부패하여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상태에서 주님께서 구역질나서 토해 내시겠다는 상태에 이르는 일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교회사를 볼 때에 교회의 부패상이 나를 부끄럽게 하며 현재에도 그 부패상이 수정된 것도 아니다. 교회가 더욱 부패하고 있는 상태를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초대 교회들에게 책망하신 상태들을 현대 교회들에게도 똑같은 책망을 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를 보고 교회의 모델을 발견할 수가 없다. 마치 인류의 역사를 보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적인 크신 뜻을 사람에게서 발견 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진리가 교회에도 적용되는데 교회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사도행전에 잘 나와 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다이나믹(능력 있는 교회이다) 하다. 이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힘입은 교회였다. 참으로 복음을 세상에 전해주는 교회였다. 바울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은 후 30년경에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로새서 1:5-6). 초대교회의 처음 믿은 성도들은 복음을 세상에 전해주는데 아주 효과적인 교회를 경험하였다.
사도행전을 잘 살펴보면 나는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시는 교회의 양상을 잘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모범적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요 또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요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교회이다. 성령이 교회가 할 일을 직접 지시하시고 성령께서 목회를 하시는 교회임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얼마나 성령께 의존되고 있나 함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선교사를 보내는 일도 볼 수 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사도행전 13:2-3). 바울이 사용한 구절을 보면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사도행전 15:28), 그리고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사도행전 16:7).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요 성령의 지시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요 성령의 지도를 찾는 자들이다.
사도행전 4정에 보면 그들이 극심한 핍박을 직면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고 하나님의 지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며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초대교회에 네 가지 기본적인 기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사도행전 2:42). 이 네 가지 기본적인 기능은 믿는 자들이 모여 개척교회를 시작 할 때에 준수해야할 규칙으로 삼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속적으로 거하면서 사도의 교리를 가르치며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사귐을 가지며 성찬의 떡을 떼는 일과 기도에 전혀 힘쓰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채워 주심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교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7). 교회에 성도들이 늘어나게 하는 것은 목사의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하실 일이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은 양떼를 먹이고 양떼를 치며 양떼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양떼들을 잘 돌보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양 때의 수가 적을 때에 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할 때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 25:21).
하나님은 당신이 적은 수에 충성을 하지 못 할 때에 많은 수를 맡겨 주지 않으신다. 교인이 천명만 되었으면 좋겠다 혹은 오천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8명 혹은 10명의 교인들을 잘 목회하라. 그들을 목회함에 있어서 충성을 다하여 하라. 그들을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날마다 구원 얻을 자들을 더해 주실 것이다. 교회의 크기가 당신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아니되고 또한 거기에 관심을 두어서는 결코 않된다.
현재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그들의 주된 목적이 어떻게 하면 교인의 수를 증가시키나 하는 것이다. 교회들의 세미나 혹은 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 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교회를 어떻게 성장시키나 하는 것을 배우려고 $175씩 낼 필요가 없다.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을 상고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또한 성도의 교제를 하게 하며 또 성찬의 떡을 뗄 때에 주님께서 구원 얻을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해 주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어느 교단에 속해서 목회 할 때에 내가 행한 가장 현명하게 행한 일 가운데 하나가 교인들의 수를 계수하지 않은 것이다. 교회들은 항상 교인 출석 도표를 벽에 붙여 놓고 이번 주일 출석수가 몇 명이며 지난주가 얼마였고 일년전이 몇 명이었다 라는 도표를 성도들로 하여금 항상 보게 하여 숫자에 계속적인 강조를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숫자의 통계를 항상 기억나게 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교인수가 어떠했으며”, “작년에 교인 수가 얼마였고”,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왜 교인수가 이렇게 줄어들었나?” 사람들은 항상 교인 수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사람의 머리 수를 헤아리고 있다는 것은 무서운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수를 계수 하는 것을 중지하라. 다만 오늘 교회에 참석한 자들을 바라보고 이 사람들을 주님께서 보내 주셔서 그들을 위해서 목회하라는 뜻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라 그들을 목회 할 때에 마음 깊이에서부터 진실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 부지런히 주께서 보내주신 적은 수의 사람들을 목양하며 신실한 청지기로써 자신을 증명 할 때 주님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보라고 보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지도를 받도록 보내주신 사람들에게 충성을 다하라.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 교회에서 구제에 관해서 약간의 문제가 야기된 것을 볼 수 있다. 헬라파 과부들이 유대파 과부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이 사도들에게 와서 자기들의 못마땅함을 호소했던 것이다. 그때에 사도들이 말하기를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사도행전 6:2-4).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초대 교회에서 기도하는 일과 함께 가장 우선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과 교제(Koinonia)하는 일과 떡 떼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7). 교회가 하나님이 원래 작정하신 교회로 이뤄지고 또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하실 것이다. 그러할 때에 주님께서 구원 얻을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실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의 일꾼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영광을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사람을 쓰신다.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친 후 무리들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을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사도행전 3:12-13) 라고 말했다. 심지어 베드로도 놀라운 기적을 행한 후 그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 행한 이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초대 교회의 목적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사람을 쓰신다. 오늘날 사람들이 성공하려고 애쓰며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려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자들을 볼 때에 나의 마음이 무거워 진다. 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조명이 밝은 무대 중심부에 두고 카메라의 중심 인물로 촬영 되여 자신을 나타내려고 애 쓰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시기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그리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살아라.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도록 하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쓰실 것이다. 이것은 나의 기도요 나의 끊임없는 기도인데 그것은 주님께서 계속해서 나를 사용해 주실 것을 바라는 것이다. 바울도 같은 소원을 가졌다. 그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편지 할 때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전서 9:27).
성공은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올렸을 때에 당신은 저 외각 지역 존재 없는 곳에서 열 명의 신자들과 교회 생활하며 겨우 연명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태 보다 훨씬 위험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위치가 아주 쉽다. 그곳에는 자신을 높일 그러한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의 성공이 오기 시작 할 때에 그때가 아주 목회에서 위험한 자리인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우러러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에 그것을 받아 드리기가 아주 쉽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종료시키는 지름길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편 75:6-7). 승진이 오늘날에 사람들이 모두 바라는 것같이 보인다. 많은 목사들이 자기 교회를 승진시키는데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며 아니면 자신들을 승진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참된 승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사도행전은 우리들에게 모범된 표본 교회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요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요 그리하여 하나가 되는 교회다 -이것은 성도의 교제요 또한 코이노니아이다. 떡을 떼는 교회요 함께 기도하는 교회이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일이며 그는 반드시 약속대로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자들은 날마다 더하실 것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갈보리채플 교회에서는 교회의 모델을 사도행전에서 찾고 있다. 교회역사를 바라볼 때에 대부분이 슬픈 사실과 실패의 사건으로 가득차 있다. 교회의 깃발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끔찍한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
내가 대학을 갔을 때 교수들이 내가 크리스챤인 것을 알고 난 후 나에게 아주 큰 어려움을 주었다. 그들은 내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교회사의 비리를 들춰내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반응하기를 “여보시요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표본들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지 말고 기독교를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판단해 보라 그가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한번 살펴봅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에 문제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적인 가르침에는 회의론자들도 아무 문제를 삼지 않는다.” 문제는 크리스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제요 그들이 예수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문제인 것이다.
계시록을 보면 예수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 쓰신 편지가 있다. 심지어는 초대 교회들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셨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거짓 교리가 몰래 침투하여 교회 내에서 썩어진 씨가 뿌려져 점차로 자라고 있으며 교회를 잠식하고 있는 흠들을 지적 하셨다. 교회가 시작한지 일세기 말엽에 교회의 대부분이 실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노스틱주의와 아리안주의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직의 발전과 교회조직의 설립이 교회역사의 초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쓴 편지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일들을 나열하시고 책망 하셨다.
이때가 교회가 처음으로 설립 된지 육십 년도 되지 않았을 때이다. 교회가 부패하여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상태에서 주님께서 구역질나서 토해 내시겠다는 상태에 이르는 일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교회사를 볼 때에 교회의 부패상이 나를 부끄럽게 하며 현재에도 그 부패상이 수정된 것도 아니다. 교회가 더욱 부패하고 있는 상태를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초대 교회들에게 책망하신 상태들을 현대 교회들에게도 똑같은 책망을 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를 보고 교회의 모델을 발견할 수가 없다. 마치 인류의 역사를 보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적인 크신 뜻을 사람에게서 발견 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진리가 교회에도 적용되는데 교회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사도행전에 잘 나와 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다이나믹(능력 있는 교회이다) 하다. 이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힘입은 교회였다. 참으로 복음을 세상에 전해주는 교회였다. 바울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은 후 30년경에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로새서 1:5-6). 초대교회의 처음 믿은 성도들은 복음을 세상에 전해주는데 아주 효과적인 교회를 경험하였다.
사도행전을 잘 살펴보면 나는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시는 교회의 양상을 잘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모범적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요 또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요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교회이다. 성령이 교회가 할 일을 직접 지시하시고 성령께서 목회를 하시는 교회임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얼마나 성령께 의존되고 있나 함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선교사를 보내는 일도 볼 수 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사도행전 13:2-3). 바울이 사용한 구절을 보면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사도행전 15:28), 그리고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사도행전 16:7).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요 성령의 지시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요 성령의 지도를 찾는 자들이다.
사도행전 4정에 보면 그들이 극심한 핍박을 직면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고 하나님의 지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며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초대교회에 네 가지 기본적인 기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사도행전 2:42). 이 네 가지 기본적인 기능은 믿는 자들이 모여 개척교회를 시작 할 때에 준수해야할 규칙으로 삼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속적으로 거하면서 사도의 교리를 가르치며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사귐을 가지며 성찬의 떡을 떼는 일과 기도에 전혀 힘쓰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채워 주심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교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7). 교회에 성도들이 늘어나게 하는 것은 목사의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의 하실 일이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은 양떼를 먹이고 양떼를 치며 양떼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양떼들을 잘 돌보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양 때의 수가 적을 때에 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할 때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 25:21).
하나님은 당신이 적은 수에 충성을 하지 못 할 때에 많은 수를 맡겨 주지 않으신다. 교인이 천명만 되었으면 좋겠다 혹은 오천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8명 혹은 10명의 교인들을 잘 목회하라. 그들을 목회함에 있어서 충성을 다하여 하라. 그들을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날마다 구원 얻을 자들을 더해 주실 것이다. 교회의 크기가 당신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아니되고 또한 거기에 관심을 두어서는 결코 않된다.
현재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그들의 주된 목적이 어떻게 하면 교인의 수를 증가시키나 하는 것이다. 교회들의 세미나 혹은 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 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교회를 어떻게 성장시키나 하는 것을 배우려고 $175씩 낼 필요가 없다.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을 상고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또한 성도의 교제를 하게 하며 또 성찬의 떡을 뗄 때에 주님께서 구원 얻을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해 주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어느 교단에 속해서 목회 할 때에 내가 행한 가장 현명하게 행한 일 가운데 하나가 교인들의 수를 계수하지 않은 것이다. 교회들은 항상 교인 출석 도표를 벽에 붙여 놓고 이번 주일 출석수가 몇 명이며 지난주가 얼마였고 일년전이 몇 명이었다 라는 도표를 성도들로 하여금 항상 보게 하여 숫자에 계속적인 강조를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숫자의 통계를 항상 기억나게 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교인수가 어떠했으며”, “작년에 교인 수가 얼마였고”,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 갔나?”, “왜 교인수가 이렇게 줄어들었나?” 사람들은 항상 교인 수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사람의 머리 수를 헤아리고 있다는 것은 무서운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수를 계수 하는 것을 중지하라. 다만 오늘 교회에 참석한 자들을 바라보고 이 사람들을 주님께서 보내 주셔서 그들을 위해서 목회하라는 뜻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라 그들을 목회 할 때에 마음 깊이에서부터 진실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 부지런히 주께서 보내주신 적은 수의 사람들을 목양하며 신실한 청지기로써 자신을 증명 할 때 주님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보라고 보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지도를 받도록 보내주신 사람들에게 충성을 다하라.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 교회에서 구제에 관해서 약간의 문제가 야기된 것을 볼 수 있다. 헬라파 과부들이 유대파 과부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이 사도들에게 와서 자기들의 못마땅함을 호소했던 것이다. 그때에 사도들이 말하기를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사도행전 6:2-4).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초대 교회에서 기도하는 일과 함께 가장 우선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과 교제(Koinonia)하는 일과 떡 떼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7). 교회가 하나님이 원래 작정하신 교회로 이뤄지고 또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하실 것이다. 그러할 때에 주님께서 구원 얻을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실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의 일꾼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영광을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사람을 쓰신다.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친 후 무리들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을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사도행전 3:12-13) 라고 말했다. 심지어 베드로도 놀라운 기적을 행한 후 그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 행한 이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초대 교회의 목적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사람을 쓰신다. 오늘날 사람들이 성공하려고 애쓰며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려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자들을 볼 때에 나의 마음이 무거워 진다. 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조명이 밝은 무대 중심부에 두고 카메라의 중심 인물로 촬영 되여 자신을 나타내려고 애 쓰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시기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그리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살아라. 모든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도록 하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쓰실 것이다. 이것은 나의 기도요 나의 끊임없는 기도인데 그것은 주님께서 계속해서 나를 사용해 주실 것을 바라는 것이다. 바울도 같은 소원을 가졌다. 그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편지 할 때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전서 9:27).
성공은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올렸을 때에 당신은 저 외각 지역 존재 없는 곳에서 열 명의 신자들과 교회 생활하며 겨우 연명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태 보다 훨씬 위험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위치가 아주 쉽다. 그곳에는 자신을 높일 그러한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의 성공이 오기 시작 할 때에 그때가 아주 목회에서 위험한 자리인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우러러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에 그것을 받아 드리기가 아주 쉽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종료시키는 지름길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편 75:6-7). 승진이 오늘날에 사람들이 모두 바라는 것같이 보인다. 많은 목사들이 자기 교회를 승진시키는데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며 아니면 자신들을 승진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참된 승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사도행전은 우리들에게 모범된 표본 교회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요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요 그리하여 하나가 되는 교회다 -이것은 성도의 교제요 또한 코이노니아이다. 떡을 떼는 교회요 함께 기도하는 교회이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일이며 그는 반드시 약속대로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자들은 날마다 더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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