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장) 바람과 같이 사라질 존재라면
(창36:9-12) 세일 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성경에서 사라지는 존재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통계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결혼할 때쯤이면 남녀의 성비가 맞지 않아서 결혼의 밸런스가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조짐은 초등학교에만 가 보아도 금방 나타나는 현상이다. 벌써부터 여자아이들이 부족해서 남자아이들끼리 짝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남아 선호사상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남아 선호 현상은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이왕이면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인간의 생각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본능적 소망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나의 분신이 이 땅에 살아 있다는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숨을 거둘 때 이 땅에 나의 씨가 남아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존재가 이 땅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할 때 당신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나는 자식을 낳아 보지 않아서 아들 낳은 기쁨이 어떠하고 딸만 낳은 서운함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이제 나이 오십이 넘고 보니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잘난 아들을 하나 갖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성주의자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성경은 남자 중심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감에도 역시 단연 거룩한 남자의 이름들이 많다. 성경은“각처에서 거룩한 남자들이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기록하였고, 다시“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전 11:3)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에 기록된 에서는 믿음의 조상 이삭의 장남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성경에서 끊어짐은 물론 이 땅에서도 그 종족의 이름이 없어지고 만다. 나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 땅에서 내 믿음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비록 작고 부족하나 성경에 기록된“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말씀과“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다”라고 하신 주의 말씀대로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끊임없이 흐르게 되기를 기도한다.
무엇이 중요한가?
본 장은 에서의 후손의 족보이다. 이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가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곱과 한 배속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의 후손들의 기록임으로 한번 정도 훑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에서는‘털이 많다’라는 뜻이고,‘에돔’은‘붉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기록과 같이 에서는 태어남으로부터 털이 많고 몸이 붉었었다. 에서에 대하여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볼 때 이 말은 우리에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미리 아심을 전제로 사람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겠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신 것은 그가 한낱 음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생명의 태어남으로 주신 장자의 명분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에서는 인위적으로 태어남의 시간을 조정하기도 하지만 출생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인 것이다. 사람은 모태로부터 태어나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앞날의 무궁한 비밀을 갖고 하나님으로부터 정해진 삶의 공간을 만들어 가야할 의무를 가진 생명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끌어 가심에 있어서 일반 짐승들과 같이 자연 환경의 지배에 맡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터 위에 인간의 자유 의지로 자신의 삶을 경영하도록 하셨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결정으로 삶을 만들어 가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중히 여길 것은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주신 생명의 고귀함과 그 뜻을 깨닫는 일이라고 하겠다.
육신으로만 만족해야 하는가?
에서는 타고난 천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세상 말로 호걸인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야곱의 꾀에 말려들어 자기가 모태로부터 태어난 장자의 권위를 팔았었고 자기의 욕정을 참지 못하여 부모가 원하지 않는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므로 음행하는 자라는 판결을 받았다.(히 12:16)
성경은 이러한 에서의 장래를 가리켜 기록하기를“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고 예언하였다.
여기서‘땅의 기름짐에서 뜨다’는 말은 이 땅에서 삶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고,‘하늘 이슬에서 뜨다’라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축복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결국 에서와 그의 후손은 그 예언대로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마는데 성경에서 에서의 마지막 후손으로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 대왕으로 헤롯이후에 그의 종족은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헤롯 대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그 당시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인 장본인이다. 이처럼 에서의 후손들은 그 족속의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여러 민족들과 행음한 결과 결국 다른 민족들에게 흡수되어 지금은 그의 후손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존재!
본문에 나오는 에서의 족보는 에서가 기록한 것을 이삭의 장례를 위하여 만난 동생 야곱에게 전달하여 후일 야곱, 즉 이스라엘에 의하여 정리하였을 것이다. 그 족보들을 우리가 다 살펴볼 필요는 없겠고 성경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추론하여 생각해 볼 이름들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족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름은 10절에 기록된 에서의 첫 아들‘엘리바스’와 엘리바스의 아들‘데만’이다.
우리가 앞으로 배워 나갈‘욥기서’를 읽으면 욥의 재난 중에 욥을 방문하여 위로한답시고 약발을 실컷 올리고 있던 친구들을 보게 되는데 그 중에 데만 사람‘엘리바스’가 등장한다. 아마 이들은 본문에 나오는 에서의 아들로서 후일 데만 사람의 족장이 된 엘리바스일 확률이 높다.
또 본문 33절에‘요밥’이라는 왕의 호칭이 붙은 이름은 우리가 추론하건대‘요밥’이란 인물은 욥기서를 쓴 욥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욥기서의 무대는 이 창세기 36장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정확한 역사적 근거는 찾을 수 없지만 성경의 기록된 사실을 추론할 때 이러한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모세 오경이 후일 모세에 의하여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 정리하여 기록되었다고 볼 때 성경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글은 욥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욥기서는 야곱이 죽은 후인 창세기 36장이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야곱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열두 방백의 시대를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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