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31장-2) 세상을 이기는 그 힘은 무엇인가?

이요나 2007. 2. 15. 13:28

(창세기 31장-2) 세상을 이기는 그 힘은 무엇인가?

 

(창31:41-42)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합리적인 사람

야곱은 참으로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아내들을 설득시킴에 있어 이러한 지혜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할 정도로 합리적인 처신을 하였다. 먼저 야곱은 자기의 아내들을 양떼가 있는 들로 불러냈다. 인간은 물질적인 영향 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넉넉한 자기 소유를 바라볼 때 마음이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양떼들이 자기 남편이 6년 간 땀흘려 일한 열매라고 할 때 사랑하는 남편 야곱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 살찐 양떼들 속에서 야곱은 먼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설명하였다. 야곱의 재산의 증식과 비례하여 날이 갈수록 변해 가는 그녀들의 아버지와 오빠들의 얼굴을 상기시켰다. 또한 장인 라반의 옳지 못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하셨음과 그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였음을 상기시켰다.

 

우리가 가족이라도 어떠한 중대사를 결정할 때 합리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야곱의 언행은 참으로 귀감이 되는 장면이다. 대개의 경우 남자들은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해 놓고 부인에게 순종이라는 굴레를 씌우기 일쑤이다.

 

그러나 야곱은 먼 여행길을 결행하여야 하는 시점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지시라해도 자기 자신으로 결행하지 않고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들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과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날의 일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 아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낸다. 이러한 것은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국가 경영에서도 본 받아야 할 귀감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의 훈련장 세상

오랜 세월 동안 사대주의 사상과 가부장적 지도 체제에 물들어 온 우리나라는 기업과 국가 경영에 있어서도 최고 통수권자의 의지대로 변경하고 결정하므로 사회와 국가에 지대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두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 야곱이고 다른 하나는 전형적인 세상 사람인 라반이다. 야곱은 비록 태어남으로부터 무리하고 비합리적인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서 자기의 주어진 환경의 조건에 인내로 순응하며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건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 섭리하신 20년의 삶 속에서 목적 성취에 급급하였던 자신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주어진 삶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하여 현실을 직시하고 관찰하며 연구하여 적응하는 합리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축복하심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전혀 그 사람 속에 동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는 라반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비록 육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형제지간이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투던 라헬과 레아가 야곱의 합리적인 설명과 제안을 듣고 마음을 모아 야곱의 뜻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로써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 스스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타협할수 없는 세상

아내들의 동의를 얻어낸 야곱은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밧단아람에서 네 명의 처들과 열 두 명의 자녀를 낙타에 태우고 많은 가축들을 이끌고 브엘세바까지 가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야곱은 오직 자기를 부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길을 떠난다.

 

또한 야곱은 자기들의 거취에 대한 문제를 라반과 의논 없이 길을 떠난다. 그 일에 대하여 라반과 의논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심에 있어 한 곳에 정착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땅에 편만하여 그 땅에 번성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창 9:7)

 

오래 전부터 한 형제가 내게 자신의 교회를 떠나는 문제를 상담해왔다. 그에게 진행되어 온 모든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때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하여 늘 그곳의 담임 목사와 의논하고 있었다. 즉 내가 떠날까요 하고 말이다. 그의 의중에는 떠날 맘보다는 그 목사와 타협하여 그곳에서 인정받는 편안한 신앙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3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갈급한 심령 속에서 영혼의 안식을 못한 채 살고 있다. 이처럼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종교 활동과의 타협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묵살시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기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게 하자”

 

뒤쫓아오는 세상

야곱이 길 떠난 지 3일 만에 그 사실을 안 라반은 그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를 갈며 야곱을 잡기 위하여 7일 길을 쫓아 왔다. 그리고 야곱에게 이르러“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으며 나로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느냐 네 소위가 실로 어리석도다”라고 질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셨음을 알 수 있다.

 

시편 105편에는“나의 기름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해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받은 자에게는 그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미리 앞서서 준비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위엄에 눌린 라반의 분노는 야곱의 죄를 찾아 트집을 잡는다. 야곱의 죄를 찾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을 고발할 일들을 찾기에 분분하다. 그들에게는 드라빔이라는 조상신을 섬기는 신표(信標)가 있었다. 사실 라헬이 집을 나서면서 이것을 훔쳐 가지고 나온 것이다.

 

라반은 야곱에게“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라고 야단치고 있다. 세상에 도둑을 맞는 신(神)이 있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최근 단군 신상이라고 하는 동상이 곳곳에서 훼손을 당하고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도매금으로 비방을 받는다.

 

몇 해 전에는 절간의 500불상의 머리를 훼손당해서 비상이 걸렸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그도 문제이지만 그 불상과 신상 앞에 절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 싶다. 신적 존재란 인간을 축복하고 지배하는 위엄과 위상을 가진 영적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사람의 손에 의하여 수난을 당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신(神)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 물고 늘어지는 죄

그러나 이것은 야곱에게 있어서 커다란 문제이다. 이들의 법에는 신을 훼손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이 라반에게“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라고 말한 것이다. 야곱의 식솔 중 누구든지 드라빔을 훔친 자는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라반은 야곱의 장막을 샅샅이 뒤져서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딸 라헬이 말 안장 밑에 깔고 앉아서 지금 생리 중이라서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버티었으니 말이다. 이 드라빔을 찾아야 야곱을 꼼짝달싹 못하게 할 터인데 결국 그것을 찾지 못한 라반은 오히려 조카 야곱에게 호통을 당하고 만다.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두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이쯤 되니 라반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야곱은 지금까지 있었던 가슴에 품었던 모든 말을 라반 앞에 쏟아 놓는다.“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 양들이나 암 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승리의 이름 아브라함의 하나님

사실 그동안 야곱은 목자가 물어내지 않아도 될 밤에 도둑맞은 것들이나 동물들에게 물려 찢긴 양들까지도 변상을 해왔다. 어디 그뿐이랴.“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이 말과 같이 라반은 20년 동안 서로 약정한 품삯을 열 번이나 임의로 변역하였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신의는 약속을 지키는데서 돈독해진다. 서로 정해진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한다. 약속을 자신의 입장에 따라 바꾸는 것은 후일 결국 자신도 그러한 일에 휘말리게 되고 만다. 할 말을 잃어버린 라반은 이제 주객이 전도되어 야곱의 충고를 듣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승리의 기선을 잡은 야곱은“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모든 영광을 20년 간 자신을 지키신 하나님 앞으로 돌렸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의 최종적 삶의 열매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입술의 찬미이다. 이제 라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자기 수중에서 떠나 하나님의 계획으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딸들과 자식들 앞에서 자기의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딸들은 내 딸들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아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 수 있으랴”고 억지를 부린다. 그는 이 딸들을 미끼로 자기의 실속을 차렸고 양떼 또한 야곱이 땀흘린 정당한 대가였던 것이다. 세상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 붙어서 진을 빼려고 달라붙는 근성이 있는 것이다.

 

미스바의 교훈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세상이 우리에게 불이익을 행한다고 하여 우리 믿는 사람의 삶이 그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야곱이 라반의 부당한 방법에 맞서서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취하였다면 결국 뒤쫓아온 라반에게 덜미를 잡혀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를 속이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이때는 아직 율법이 주어지지 않은 세상이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가운데 주신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시대였다.

 

최근 세상 가운데 불이익을 당하는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맞서서 대항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오늘의 말씀 속에서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온 야곱의 순종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야곱은 자기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으며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두 사람은 증거의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언약을 한다.

 

라반은 그 증거의 돌무더기를 바벨론어로‘여갈사하두다’라 하였고, 야곱은 히브리어로‘길르앗’혹은‘미스바’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오늘날 크리스천의 집회 가운데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크리스천 집회에서 헤어질 때 사용하는 의미는‘헤어져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감찰하여 돌보아 주소서’하는 축복의 의미이지만“미스바”의 원래의 의미는 자기의 자녀를 데리고 떠나는 야곱이 자기와의 원한과 감정 때문에 딸들에게 학대를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감시해 줄 것을 서원하는 언약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믿는 자의 삶은 지난 것에 대한 감정과 원한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믿는 자들의 정당한 삶의 열매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 앞에 굴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후 라반은 후회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학대 속에서도 야곱을 지켜온 하나님께서는 그를 따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간 자기의 딸들을 영원히 지킬 것을 믿었을 것이다.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이 부르시고 택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어 세상에서 오랜 인내를 감당케 하여 정당한 삶을 갖게 하시며 불의한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이기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