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15장-3)눈을 열면 현실 속의 영의 세계가 보인다!

이요나 2007. 2. 21. 10:30

(창세기 15장-3)눈을 열면 현실 속의 영의 세계가 보인다!

 

영의 눈이 열리는 영적 상태를 체험한 성경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자. 먼저 우리로부터 가장 가깝게 살다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보자.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하여 계시록을 집필한 사도 요한은 밧모섬의 옥중에서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장차 그의 교회에 있을 일들과 세상의 심판 그리고 천국에서의 교회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았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의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시작하였다. 또 그는 "이것을 하나님이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자기 종들에게 보이시려고"라는 말씀은 교회 시대 속에 사역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종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요한이 쓴 계시록은 장차 일어날 일들을 자기 종들에게 보이시기 위하여 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성경의 말씀을 잘 살피고 연구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다만 "그의 종들"이냐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나는 과거 교회생활 속에서 요한계시록을 체계적으로 배운 일이 한번도 없다. 신학교에서도 계시록은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수학 교과서 뒷부분을 열어보고 도저히 알 수 없다하여 아예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모든 책은 시작에서 끝까지 순서대로 편집이 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은 어떠한 지식을 수용함에 있어 체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적 원리를 무시하고 성경을 순서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기피하고 어떠한 교회의 목적과 신학적 기준을 중심으로 자기편의식 성경 공부를 고집하며 교회에 충성과 기도를 많이 하면 영의 세계가 열린다는 식의 무지몽매한 믿음을 가르쳐왔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 사람들이 어떠한 능력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 나라에 갈 수 없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만이 갈 수 있다"라고 하셨고, 주의 뜻을 떠나서 예언과 기적과 귀신을 쫓는 일을 일삼는 자들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마 7:23)고 하셨다.

 

*지식을 바탕으로

사도 요한은 계시록 서두에서 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계 1:2)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분석하면 사도 요한이 증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가 본 것으로서 주께서 사도 요한의 영안을 열어 보게 하신 장래의 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 구속 전날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설명하신 후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셨다.(요 16:13)

 

또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롬 10:17)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자기를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보고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셨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주께서는 인내로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 내가 네게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셨다. 사도 요한도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들었다. 사도 바울은 삼층천 세계에 이끌려가서 사람으로 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들었던 당시의 체험에 대해 "내가 몸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후 12:2)라고 진술하였다.

 

베드로도 주께서 그를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이끌어 가실 때에 이상의 눈을 열어 하늘로 내려오는 짐승들이 담긴 보자기를 보게 하였다. 베드로는 이것으로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참조:행 10장,15장) 이들이 이처럼 이상 중에 본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약 시대에서는 어떠하였을까? 우리는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그가 어느 경지에까지 이른 것을 알 수가 있다. 시편은 모두 다윗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미리 받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기록한 계시 문서이다. 그는 열린 영안으로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이 땅에 오셔서 목자가 되심과 십자가의 구속하심 그리고 영원한 통치자로서 다시 오실 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우리가 보지 못한 다시 오실 영원한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보좌에 높이 들린 주를 보았다(사 6장). 예레미야, 에스켈, 다니엘 등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영안의 세계를 통하여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실존하는 영의 세계

이상(vision)이란 영적인 통찰을 뜻하는 것인데 사실 우리 주변은 영적인 존재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면 영의 세계를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을 이상 또는 환상이라고 한다.

 

구약에서 가장 리얼한 환상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은 엘리야와 엘리사일 것이다. 특히 열왕기하에는 엘리사의 영적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아람 군대와의 전쟁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환의 눈을 열어 이스라엘을 지키고 있는 불 말과 불 병거를 보게 하였다.

 

이처럼 영의 세계는 우리 현실 가까이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 세계를 열어 보일 때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엘리사의 이러한 출발도 하나님의 택하심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수종드는 종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가 다른 선지자 생도들과 달리 어떻게 수행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열왕기하 2장에 상세히 기록되었다.(참조:왕상 19장) 주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영적 공간을 보이셨다. 이것은 이제 곧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를 이끌어 갈 그의 종들에게 영적 세계가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하겠다.

 

또 이와 유사한 일은 엘리사에게도 있었는데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기 전 엘리야의 영적 능력을 전수받기를 원하는 엘리사에게 네가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불 말을 타고 나를 취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이룰 것이라고 하였고 엘리사는 그것을 이루었다. 이것은 그가 택하신 준비된 종들에게 그의 사역을 위하여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제한된 영의 세계를 이상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되는데 이 때 나타나는 증상은 지극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의 세계

하늘 군대인 천사들이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사람들은 혼비백산한다. 아담의 범죄로부터 죄의 속성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왜냐하면 죄의 인간은 거룩한 세계에 가까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의 사자들이 인간 앞에 나타날 때 먼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의 범죄 직후 바로 나타났는데 아담은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비록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의 허락없이 그의 앞에 설 수조차 없는 존재다. 모세도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었다. 또한 천사가 삼손의 어미 마노아에게 나타났을 때에도, 다니엘에게 나타났을 때에도(단 10:12)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에게 나타났을 때에도(눅 1:12)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근래에도 하나님의 친히 임재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그 두려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두려움이라고 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의 두려움을 없애주셨다.

 

이처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 육신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영의 세계인 것이다. 또한 사단의 추종자인 귀신들의 경우도 영의 세계의 영향을 받아서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의 영적 실체를 볼 수 있는데 예수께서 공사역하실 때 귀신들린 사람들이 발 밑에 엎드려 애걸한 것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간의 범위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서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세계의 공식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하나님의 방법

그러면 현대생활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계실까 생각해 보자. 무슨 괴기영화나 우주 공상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과의 개인적 현상이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동일한 현상은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에 대하여 성경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 1:1)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그의 날이 가까움에 따라 종말을 사는 그의 성도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이라고 하겠다. 주께서는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으로 기록되었고 제자들은 또 그들의 헌신된 삶 속에서 성령의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이다.

 

그러면 교회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의 종들에게 접근하셨는가를 살펴보자.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성령께서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성령이 어떻게 명령하였겠는가? 아마 그 문맥을 따라 살펴보건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아가보 예언자를 통하여 알리셨을 것이다. 또한 바울이 아시아로 나아가고자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을 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환상 속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힘썼는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들을 부르신 줄 인정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역자의 삶의 현실속에 역사하시어 그들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심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평상의 일들이라도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각을 통하여 꿈이나 현실속에 나타나는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