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15장-2)영(靈)의 세계로의 의식확대

이요나 2007. 2. 21. 10:33

(창세기 15장-2)영(靈)의 세계로의 의식확대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15:1-2)

 

하늘에 계신 분과 땅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늘에 계신 분들도 우리와 같이 눈 코 입이 있는가? 볼 수 있으며 냄새를 맡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모세도 이 땅에서의 사역을 끝내고 육신을 벗어나기 직전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제발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십시요!"라고 애걸을 했으니 말이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도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 하나님을 좀 보여 달라"고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궁금증은 더해 가는 가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고 살 자가 없다고 대답한다.

 

또한 주께서는 제자 빌립에게 "네가 이처럼 나와 함께 오래 살았는데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느냐"(요 14:19)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일하심을 의미하신 것이다. 인간은 한계 속에서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그 범위를 넘지 못한다. 고작 그 범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뿐인데 이 상상의 범위라는 것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본문에는 아브람이 이상(환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다고 기록하였다. 이상(vision) 중에 말씀과 랑데부했다는 의미가 쉽게 이해는 가지 않지만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이상에 대하여 살펴보자. 여기서 이상(환상) 중이라는 표현은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이상의 세계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소위 말하는 초월의 세계로 돌입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새로운 의식"(New Consciousness)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철학에서는 "의식확대"(Consciousness expansion)요법을 통하여 이상의 세계로 전입하는 초월 명상이라는 "뉴 에이지"(New Age Movement)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영혼의 자유로서 "신성"(神聖/Godhood)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1960년대의 미국의 히피문화의 초석이 되었다. 이들은 무소유 삶을 전제로 고행을 통하여 진리의 도(道)를 깨우침으로 선(禪)의 세계로 돌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운동이 아직까지도 선진국 속에서 신비의 종교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그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LSD나 대마초와 같은 마약의 힘을 빌려서 인간의 생체 리듬을 마비시킴으로서 또 하나의 영적 세계로의 토킹을 시도하고 있다.

 

*영과 혼과 육의 카테고리

이러한 욕구는 크리스천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신의 세계를 체험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종교를 향한 인간들의 욕구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인간의 육적 한계를 벗어난 상태에 이르는 최상의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지식과 깨달음 그리고 믿음의 범주에 따라 영과 혼과 육이라는 카테고리에 머물게 되는데 육적 상태에 머문 믿음을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로 성경은 종말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족되기를 권면한다. 이러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풍만한 지식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케 된다.

 

이상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대면하고 있는 아브라함은 영 안이 열려져 있는 상태로 이미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지식 속에서 대화를 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영적 상태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던 삶의 시간과 공간 속의 현실들이 둥근 원형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 순간에 열어놓은 범위의 세계는 몽땅 다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너의 방패요 상급이라"는 총체적인 의미를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믿음의 삶 속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말씀으로서 그 상급은 장차 육신으로 오실 자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람은 "내게 무엇으로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때까지 아브람은 자식을 낳지 못했고 그에게는 충실한 종 다메섹 엘리에셀이 있었을 뿐이었다.

 

*엘리에셀과 성령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15:2)

 

여러분은 다메섹에서 영의 사도이며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부르신 사건을 기억하실 것이다. 아브람이 말한 그의 종 엘리에셀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로서 보혜사 성령을 지칭하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 사역의 예표인 엘리에셀이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상속자가 아님을 말씀하신 부분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땅 가나안 일대를 기업으로 물려받을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서 천년왕국이 완성될 때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민족은 역시 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차차 거론하여 나아가기로 하고 오늘은 성령의 예표인 엘리에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엘리에셀은 오늘 이후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신부 리브가를 데리러 갈 때 다시 거론된다. 또한 십자가의 구속사의 예표인 모리아 산의 제물이 되었던 이삭의 이름도 엘리에셀이 신부를 데리고 올 때까지 성경 상에 나타나지 않다가 엘리에셀이 신부를 데리고 왔을 때 그를 맞으러 나오는데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완성된 교회를 맞이하러 오실 주님의 재림을 예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 속에 기록된 아브람의 이상 중에 나누는 하나님과의 말씀은 장차 이루어질 이 땅의 일들 특히 그의 후손과 성령과 독생자의 신부 교회에 대한 일로서 미리 보는 성경 역사인 것이다.

 

이 충실한 종 엘리에셀은 이삭의 신부감 리브가에게 신부의 증표로서 귀한 보물들을 건네 주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 속에 나타난 신학적인 토대를 살펴볼 때 현대 교회 속에서 행하여지는 성령운동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오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성령에 대하여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성령의 성품을 말씀하신 것으로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만나 그에게 선물을 주고 주께 이끌어 가는 동안 일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엘리에셀도 이삭의 신부 리브가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주인이 그의 모든 것을 그의 독자 이삭에게 주었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정결케 준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가는 것이다. 최근 많은 교회들이 "대 성령강림 부흥회"와 같은 요란한 집회를 많이 개최하는데 이것은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영 안이 열릴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적 현상과 성경 역사 속에서 이를 체험한 인물들의 증언을 들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