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13장-1)하나님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이요나 2007. 2. 21. 10:50

(창세기 13장-1)하나님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13:1)

 

바울은 이에 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였다. 본문 속의 아브람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삶 속에 발생한 문제는 자신의 머리로 해결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빠져 나오게 되었다.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마누라까지 팔 계획까지 하게 되는데 죽음의 두려움 앞에선 사래도 아무런 불평 없이 따른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자라난 생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된 삶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살던 메소포타미아의 생활이 얼마나 타락하였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처럼 부부도 온전한 삶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아브람은 58살까지 셈 할아버지와 살면서 그가 들려준 에덴 동산의 창조 이야기 속에서 아담에게 주신 아내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지만 온전치 않은 믿음 없는 이론적 지식은 절대로 현실을 뛰어 넘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전지 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아브람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고향과 부모, 형제, 친척을 두고 떠날 수 있었던 믿음과 용기는 다 어디다 팽개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믿을 때에 우리의 결단은 부모 형제의 만류와 환경의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겸손해지기는커녕 자기가 지혜자라도 된 것처럼 왕자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현실 속에 어떠한 문제가 닥치면 자기의 인생이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망각한 채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게 된다. 이쯤 되면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목에 걸어둔 액세서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벧엘로 올라가는 믿음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13:3)

 

구사일생으로 하나님께서 손을 써 주셔서 아브람과 사래는 무사히 애굽을 나오게 된다. 아니 목숨의 보존뿐이 아니라 많은 재물과 노비까지 얻어서 나왔다. 하나님의 사람이 택함받지 못한 애굽 사람들을 통하여 배우게 되다니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가운데서 망신을 당한 꼴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가 택한 사람 편에 서 계신다. 그리고 모든 일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이에 정신을 차린 아브람은 다시 하나님께서 처음 자기에게 나타났던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이 우리에게 아브람을 바라보게 하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잘못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이 없으시다. 다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통하여 스스로 깨닫고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하기를 바라신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아브람이 처음 하나님을 만난 곳이며, 후 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야곱이 하란 에서 얻은 자녀들을 이끌고 귀향 중 문제에 봉착되었을 때 다시 올라간 곳으로서 이후 벧엘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믿음의 산실이 되었다.(참조:왕하 2장) 이 벧엘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이 잘못되었을 때 처음 내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르쳐 준다.

 

최근 젊은이들로부터 상담 E-Mail 속에서 이성간의 교제에 문제가 생기면 교회를 떠나고 싶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서 예배도 드리기 싫다는 등의 푸념들을 듣게 되는데 이들이 평소에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 왔다면 생활 속에서 문제를 만날 때마다 성경의 말씀 속에서 환란을 극복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 고통을 빠져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잘못된 두 신앙노선의 생성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13:5-7)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의 실수는 믿음의 조상으로써 두 가지 커다란 잘못된 신앙 노선을 초래하고 말았는데, 그 첫째가 애굽에서 얻어 나온 하갈로 인하여 생성된 변질된 신앙 노선이고, 또 하나는 롯과 같이 물질 만능주의에 빠지는 신앙 노선이다. 우리는 아브람이 얼마나 애굽에서 상주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애굽의 생활 속에서 묻어 나온 문제는 아브람 일생을 통하여 겪어야 하는 두통거리가 되고 말았다.

 

먼저 물질주의 속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 되어서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브람의 공동체는 결국 목자들의 다툼으로 조카인 롯과 헤어지게 된다. 또한, 이것은 고향과 부모, 형제, 친척을 떠나라는 처음 받은 하나님의 명령을 마무리짓는 시간인 것이다.

 

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의 행로 속에서 진로의 선택 중 쓰디쓴 경험을 한 아브람은 인생의 복이 인간의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양보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롯은 눈에 나타난 현실의 시각적 선택에 기준을 둔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도 같다"라는 말씀은 세상 속의 풍요로움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인간의 속성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너나 나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8-10)

 

성경 기자는 여기서 소돔의 악독함을 미리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미칠 인간의 패역함이 어떠하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미리 경고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계시고 우리는 그 계획하신 세계를 그가 설정해 놓은 시간표에 의하여 걸어가게 되어 있는데 오직 우리가 바로 가는 길은 하나님의 미리 하신 성경 말씀 속에서 지혜를 얻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은 자신의 안목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기를 좋아한다.

 

사도 요한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피하라"(요일 2:16)고 경고하였듯이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감각적인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보이시고 가장 아름다운 양질의 삶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의 갈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