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9장-5)맹목적 너의 믿음, 함일 수밖에

이요나 2007. 2. 21. 11:45

(창세기9장-5)맹목적 너의 믿음, 함일 수밖에

 

(창세기9:24-29)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종들의 종에 대하여"

노아가 함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그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은 "노예들의 노예"라는 의미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이 말은 "왕 중 왕"의 문법적 구조와 같이 최상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예상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예들의 노예"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함의 후손들인 수메르인, 애굽인, 구스인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한국 등의 나라들은 셈족인 이스라엘 민족이나 야벳 후손인 유럽 및 미국의 노예가 아니다. 이 땅의 모든 민족은 독자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약소민족들이 있지만 민족적 자체 주권을 가지고 속속 독립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라는 말은 함의 아들 가나안이 셈의 종이며 야벳의 종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말은 이들 세 사람이 모든 종족의 조상이 된다고 할 때 함의 후손은 어느 한 민족에게만 속한 종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종들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선포된 이래 함의 족속들이 전 세계적으로 셈이나 야벳 민족들에게 부속된 일은 없었다. (단, 셈과 야벳 족속이 가나안 족속을 지배한 일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종"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종이라는 단어는 노예라는 의미보다 집안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하는 청지기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글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듯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 앞에 모두 종이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있어 후계자로 거론 될만한 위치로서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의 아내를 맞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슬기로운 종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실 "종"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처음 언급되고 있는데 온 세상 사람의 종들의 종이 되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할 수 있다(빌2:6-8/갈3:10,13)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예언에 대하여 가장 합리적인 해석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경의 전체 문맥의 흐름을 따라 "종"이라는 말이 "청지기"라는 의미로 생각할 때 더욱 분명해 진다. 즉 이 예언은 전 인류를 향한 물질적 봉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아담의 창조시부터 인간은 모든 생물들뿐 아니라 물질세계의 전체를 관리하는 관리자 즉 청지기였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은 저주 아래 처해졌고 인간은 하나님의 판결에 의하여 자신들의 생계를 위하여 "얼굴에 땀을 흘리며" 물질 자원들을 개발하며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이 땅의 관리와 지배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시6:8-9)

 

이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속에서 통제되고 지배되는 관점이 아니라 그 지배영역에 대한 이해관계를 통하여 획득하고 개발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 그러기 위하여는 지적인 노력 즉 연구와 탐구, 분석을 통하여 점령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다.

 

그러기 위하여는 그 물질세계의 구조와 조직을 알기 위한 과학적 지식과 예술적 가치 그리고 그 물질을 창조하고 관리하는 청조자의 신성을 알기 위한 종교적 철학적 지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책임 중 가장 큰 것은 이 땅을 육체적인 번성을 통한 지배뿐 아니라(창9:1) "여호와를 아는 지식"(사11:9/합2:14)으로 충만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속자가 오실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을 가르치며(창4:26) 하나님의 약속을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인류 생존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관리하는 "종" 즉 "청지기"로서 기본적인 의무를 가져야만 했다. 먼저 "영적 의무"라고 하겠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받고 보존하고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다.

 

또한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하고 알기 위하여는 "지적 의무"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인간은 육체의 한계를 갖고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물질적인 필요와 공급의 의무 즉 "물질적 의무"가 필요했다.

 

이 의무는 인간의 삼중적인 속성 영과 혼과 육에 부응하는 것으로서 홍수 후의 이 땅의 지배적 역사가 자신의 아들들로 이끌어져 나갈 것을 직시한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인간의 삼중적인 요소를 각각 갖게 하셨음을 발견하고 그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에서도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라"하셨듯이 이 삼 형제가 한 몸이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이다.

 

 

"육체의 삶을 위한 토대"

이렇게 하여 셈 민족은 유대인, 아랍인, 수리아인, 앗수르인, 바벨론인, 바사인의 조상이 되었고 야벳은 지금의 유럽민족의 조상 즉 인도인의 조상이었으며 그 나머지는 함족의 후손에 해당되는데 함족은 과학, 철학, 신학 등에는 관심이 없었고 물질적인 방면 즉, 전 세계를 탐험을 시도하여 해운과 항만과 교통산업을 일으켰고 정착지를 개척하여 농경문화를 일으켰으며, 각종 농업. 임업, 수산 기술을 개발하며 직물을 만들고 종이와 잉크와 인쇄를 발명하였고 광산을 개발하여 돈과 은행 등을 일으켜 경제활동을 재개하여 인류의 삶의 토대를 만든 것이다.

 

그러면 인류의 삶의 토대를 위하여 애쓴 위대한 사역을 저주라고 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출애굽 당시 모세를 통하여 12부족 중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권세를 주셨고 그 지파 중 특별히 아론의 자손에게는 제사장의 직분을 주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늘 장막을 이동하는 문제로 인하여 일부 레위지파 사람 속에서 아론지파 즉 제사장의 반열에 대한 시기와 불평이 쏟아져 나왔는데 왜 너희만 하나님 앞에서 노른자 자리를 취하고 우리는 밤낮 짐꾼 노릇(제사장 직분 외의 레위 사람들은 장막을 이동시 짐꾼이었다)만 하느냐고 불평하였다, 그래서 발생된 것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것을 하나님의 언약궤 속에 넣어 보관하게 하셨던 것이다.

 

"어느 것을 원하슈!"  이 교훈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셈과 야벳과 함에게 나누어줄 세 가지 은사에 대하여 선택하라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은 물론 셈의 직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이 세 아들은 모두 자신들의 의지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여 인류의 멸망 속에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아는 하나님의 은사를 각 사람들의 성품에 따라서 이루어 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아마 함의 이 사건은 평상시 함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추측하건대 함은 즉흥적이며 전투적이며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는 아무 일이든 서슴지 않는 대신 경솔하고 실수가 많았을 것이다.

 

그에 비하여 야벳은 궁리가 많은 사람으로서 늘 생각하고 연구에 몰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셈의 마음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찬송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만 오늘의 노아의 술 취한 사건은 오랜 세월 세 아들을 키우며 그들의 성품을 관철해 온 노아의 결론적 판결로서 함에게 있어서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배 밭에 가서는 갓 끈도 매지 말라는 속담도 듣지 못했는감?? 아이구 조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인데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나 이것은 우리 안에 모두 있는 부분으로서 즉 영과 혼과 육적인 것을 나타나는 신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아이구 내 팔이야! 드디어 9장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