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9장-3)술은 처음부터 사고뭉치였다!

이요나 2007. 2. 21. 11:50

(창세기9장-3) 술은 처음부터 사고뭉치였다!

 

(창세기9:18-23)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 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술이라는 것!"

성경에 오늘 술이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다. 얏호~!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인생의 기쁨 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포도주를 정종 잔으로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체질이라서 불행히도 이 술에 대한 매력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했지만 소싯적에 십여 년 간 클럽을 운영하면서 술이란 것과 친구를 해와서 이 술이란 것에 대하여는 조금 알고 있는 편이다.

 

특히 이 술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은 박사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술의 기원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노아 아저씨가 이것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는 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 술이 없었다면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때부터 이 술이라는 것은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어 왔는데 그런 면에서 이것은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의 한 평생 겪어야 하는 희노애락 속에 한잔씩 나누는 술잔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그 얼마나 삭막했을까? 물론 술이 없다고 우리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러나 잔치석상에 술이 없고 쥬스와 물만 있다면 얼마나 민숭민숭할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한다는데 있다.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경고가 여러 번 나온다.(잠31:4,5 이5:11, 엡5:18) 과거 나는 술에 취하여 병원까지 가서 조치를 받았던 일이 있었는데 이 술은 사람의 마음을 흥겹게 하여 생각을 진취적이고 긍정적으로 갖게 하고, 아픔과 고통을 잊게 하며 그리고 일에 대한 용기와 자신을 갖게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술은 풍요로운 삶을 위한 필수품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술과의 전쟁"

최근 어떤 형제로부터 "술을 먹지 말라고 성경에 기록하면서 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술까지 만드셨나요?"라는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술을 먹지 말라는 강요가 아니라 술에 취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포도주를 마셨다. 그의 제자들도 함께 마셨을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의 삶 속에 있었던 생활풍습이었다.

 

십자가의 구속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에서도 술은 역시 최고의 교제를 이루는 절정적 매개체였다. 이스라엘을 위시하여 유럽과 미국의 식생활에는 술은 식탁의 기본 메뉴이다. 우리나라도 반주(飯酒)는 힘겨운 남정네들의 하루를 위안하는 낭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술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신적 존재 바카스로 군림하면서 인간의 쾌락의 도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며칠 있으면 세기말 마지막 크리스마스 아니 "술취마스"가 온다. 온 세상은 온통 술에 취하여 온 몸을 서로 비비며 바벨론 종교의 시조 니므롯의 아들 타므즈의 생일(크리스마스의 전래의 시초)을 축배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홍수 전에 없었던 술의 탄생이다. 이것은 대홍수 이후 하늘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물이 쏟아지면서 우주로부터 오는 광선과 기후의 변동으로 자연적으로 발생된 발효 현상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물론 홍수 전 세상에서는 이러한 발효식품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홍수 이후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인간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것이 인간들의 욕망을 불태우며 향락하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성경은 우리에게 술 취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여 왔다.

 

특히 헬레니즘 속에 빠져 일월성신 숭배자들은 술을 종교적 의식의 전제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초대 이방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있어 술은 그들의 생활 속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생활에서 돌아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고함으로서 "술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새로 시작되는 인류의 기원"

우리는 도 오늘의 본문 속에서 노아의 세 아들로 시작되는 인종의 분류를 발견한다. 대홍수 전에는 가인의 종족과 아벨의 종족으로 나뉘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떠나 인본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두 종족으로 분류되었으나 홍수의 심판으로 이 땅의 인류 역사는 오직 노아의 그 세 아들로 시작된다. 인종문제는 날이 갈수록 현대 국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각 국가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주의 대 국제주의의 쟁점은 날로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대립체제의 기원이 노아의 세 아들들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인종의 분쟁은 창세기를 바르게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통계로 살펴볼 때 세계의 인종을 인류 분류체제를 크게 여섯 정도로 나눌 수 있고, 국가 규모로는 150개 국가와 3000여 종이 넘는 부족어와 방언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인종이 함께 육체적 관계와 이성적 교류와 그리고 영적 교제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류학자들은 인류와 국가의 기원을 인종과 인간의 문화의 진화라는 테두리 속에서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인종의 기원과 분류 이동관계 역사와 형성이 창세기 9장에서 11장 사이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노아와 이 세 아들을 통하여 "백성이 온 땅에 펴졌다"고 가르친다.(창10:32, 행17:26) 여러 민족의 다양한 신체적 특징들이 모두 방주를 타고 살아 남은 세 아들과 그의 아내들 즉 여섯 사람들의 유전체제 속에서 일정한 유전자 유기체제와 변이 그리고 재결합을 통하여 번식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었다"

오늘 본문 속에는 함이 가나안의 아비로 특별하게 언급되어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가나안은 함의 막내아들이다.(창10:6) 이것을 모세오경 필자 모세가 강조한 것은 창조 사역에서부터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하신 약속의 땅 즉 안식의 땅이 바로 가나안의 후손들이 살던 땅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노아가 홍수 후 자식들과 300년을 더 살았지만 다른 아들들을 낳지 않았다는 것과 노아에게 딸들이 없었다는 것도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노아의 세 아들들은 노아의 나이 500세 이후 575세 이전에 태어났다.(창5:32) 그리고 그들은 노아 나이 600세 (홍수가 시작되던 해)전에 이미 결혼을 했었으나 아직 아무도 자식을 갖지 않았었다.

 

이러한 것을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그들은 새 인류의 조상의 선상에 있지만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모두 아담의 본성(本性) 즉 죄성이 유전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타기 직전까지 살아온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사단의 유혹에 빠져 영적, 도덕적, 육체적으로 타락한 환경 속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홍수의 철저한 심판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며 사단은 여전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 하는 영"임을 증거 한다 (엡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