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9:8-17)은혜의 문

이요나 2007. 2. 21. 11:58

 

(창세기9:8-1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네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리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사이에 있으리니 내가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서울 하늘은 회색물감"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우리는 몇 가지 핵심단어들을 발췌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9장 전체에서 언급되고 있는 "언약"이란 단어이다. 그리고 "증거" 그리고 "무지개"이다.

 

특히 창세기 6장 18절에 처음 언급된 이 "언약"의 단어는 "증거"와 "무지개"와 연관하여 8번이나 언급되고 있는데(11,12,13,15,16,17절) 이 무조건적 언약은 그 시점부터 시작하여 이 땅에 사는 "영원한 세대들"(영세/perpetual generations)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어려서는 여름철이면 무지개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 이후 몇 십년 동안 서울 하늘에서는 무지개를 본 기억이 없다. (매일 꿀물을 마시는 문숙희씨 집 뜰에서는 가끔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몇 해 전 미국 샌디에고 호라이즌채플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하여 LA 비행장에서 샌디에고 행 경비행기를 탄일이 있었다. 내 생전 자동차 만한 모형비행기(?)를 타 본 것은 처음이다. 모두 20명 내외 탈 수 있는 이 경비행기는 꼭 중형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맑고 깨끗한 하늘을 나르는 동안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어느 강을 넘고 있었는데 맑은 하늘에 강 저편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일곱 색깔 무지개가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도 그 경관이란 짧은 내 혀로는 표현할 길이 없고 앞으로 내가 갈 하늘나라도 이것보다 더 아름답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 Beautiful! 탄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내 입에서는 "오 ~! 하나님! 당신은 위대하십니다"라는 감사가 쏟아졌다.

 

주께서 지으신 아름다움을 접하는 황홀한 시간이었다. 비행사는 우리의 기쁨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곳을 한바퀴 더 선회하여 주었는데 그 때의 감격은 내 생애에서 잊혀지지 않는 살아 숨쉬는 그림 중의 하나이다.(그런데 내가 몇 년째 앉아서 내다보는 한남동 하늘은 코앞 남산타워도 안보이도록 365일 회색 물감을 칠해 놓고 있다.

 

"언약의 의미"

이제 우리는 이 "언약"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나는 가끔 하나님은 참으로 희한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도대체 인간이 무엇이길래 인간사에 대하여 마치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듯이 시시콜콜 간여하시고 고민하시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 같으면 그냥 싹 쓸어서 구정물에 처넣고 항복할 때까지 룰룰랄라 해버릴 터인데 말이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을 대하심에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것이며 또한 창조자로서 자신이 지은 것들에 대한 책임을 갖고 계신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는데 이제 곧 우리가 배울 "아브라함과의 언약"(창12:1-3), "모세와의 언약"(출19:5), "다윗과의 언약"(삼하7:16), "새 언약"(렘31:31, 히8:8)이 있다. 그러나 이 "언약"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노아와의 언약으로써 오늘 우리가 배우는 이 "언약"이 하나님의 첫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에덴에서의 아담과의 언약(창3:15)을 원시복음이란 차원에서 "에덴의 언약"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언약"이라는 히브리어 "베리츠"가 사용되지는 않았다. 또한 노아의 언약은 사람들 뿐 아니라 이 땅에 혼적 생물들(네페쉬) 즉 노아와 함께 한 모든 생물들에게도 적용되었는데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생물들이 하나님의 관심 대상임을 증명한다.(마6:26,10:29, 욘4:11)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

또한 우리는 본문에서 노아와 그 아들들 앞에서 세우는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하시는 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셨음을 볼 수 있다(한글 개역 성경은 모두 "세우심"으로 기록됨)

 

먼저 9절과 11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세우는" 하나님의 언약은 히브리어로 "쿰"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를 표명한다. 즉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선한 품성이라던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임을 밝히신 것이다.

 

그리고 12절에 "세우신" 언약은 "나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타락한 인간을 세운다"는 하나님의 의지와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5절에서는 "자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마음에 새긴다"라는 뜻이다. 즉 이 언약을 하나님 가슴에 영원히 새기시고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맹서하실 때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시므로 자기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시는데 이것은 아무도 이 언약을 폐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불신 속에 사는 인간에게 이러한 언약을 말로만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증거(징표="오쓰")를 주시는데 이것은 인간의 속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14절의 천체(天體)의 목적과 관련한 "징조"(sign)와 하나님 앞을 떠나 살아야할 가인에게 준 "표"와 같은 단어임을 생각할 때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계획을 우리로 예견케 한다.

 

"열린 문 사이에 보좌에 앉으신 이"

이제 무지개에 대하여 살펴보자. 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무지개에 대하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메시야와 연관되어 상징적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라랏산에 머문 노아의 방주가 "골고다 언덕에 선 십자가"를 의미하듯이 이 구름 속의 무지개는 죄성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구속할 전능자가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죄성으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지만 구름 속에 나타난 무지개 즉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으시겠다는 메시야 언약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무지개가 상징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에스켈서 1장 28절에서 비 오는 날 구름 사이에 계신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을 보자. 에스켈 선지자는 환상 속에서 네 생물들 머리 위의 궁창의 보좌의 형상 위에 사람 모양의 형상을 보았는데 그에게서 나는 사면의 광채가 비오는 날의 무지개 같다고 진술하였다.

 

또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하늘의 열린 문 사이로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는데 그의 모양이 벽옥(jasper)와 홍보석(carnelian)과 같고 그를 두른 무지개를 보았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emerald)같다고 진술하였다.(계4:3)

 

곧 이어 그는 다시 하늘에서 내려오는 힘센 천사를 보았는데 그의 모습에 대하여 "그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의 얼굴은 해와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라고 증거하였으며 또한 사도 요한은 주의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보았고 바다와 땅을 밟고 사자처럼 외치는 주님으로부터 작은 책을 받아먹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할 명령을 받는다.

 

우리는 아직 사도 요한이 받아먹은 그 작은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들에게 있을 하나님의 계획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