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4장-1) 영적 선택의 혼란

이요나 2007. 2. 21. 14:43

(창세기4장-1) 영적 선택의 혼란

 

(창세기4:1-7) 아담이 그 아내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짓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가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불안에 떠는 사람들

최근 11년 간을 숨어살던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 근안 형사가 자수하여 화재가 되고 있다. 그가 진정으로 회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죄한 동료형사의 형량이 약해진 것을 보고 자수할 결심이 생겼다는 그의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용서의 여지가 없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은둔 생활의 술회는 사람이 죄를 짓고는 살 수 없음을 깨우쳐 준다. 그의 11년 동안 은둔생활 속에서의 심적 부담과 가족들의 고통은 차라리 형을 받는 것만 못하였을 것이다. 아마 그는 앞으로의 형량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어느 조직 깡패의 살인사건은 우리로 지옥의 현장을 목격하게 한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인지 그 패역함에 가슴을 치게 한다.

 

배신한 자신의 동료를 토막 살인하여 암매장시키며 그것도 부족하여 자신들의 무용과 의리의 결단을 위하여 살인한 자의 장기를 나누어 먹었다는 보도는 차마 듣기조차 민망하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사람이 어찌 이러한 지경까지 되어 버렸는지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내어버린다는 의미

성경은 이에 대하여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말씀하였고 다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기록하였다. 아담의 범죄로 시작된 인간의 죄가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어가는지 살펴보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잉태의 고통과 수고를 통하여 자식을 낳게 되었는데 하와는 첫 아들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었다"라고 외쳤다. 아마 하와는 해산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유혹한 사단을 향한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자기가 낳은 아들이 사단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는 소망 속에서 아들의 이름을 "가인"(두들기는 자=대장쟁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하나님은 가인 외에 또 다른 아들 아벨을 예비하였던 것이다.

 

아마 아담과 하와는 첫 아들 가인에게 소망을 갖고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일들 즉, 뱀의 유혹의 사건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판결과 옷을 지어 입히신 일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대하여 그의 두 아들에게 자세히 가르쳤을 것이다.

 

따라서 가인은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판결의 말씀을 따라 땀 흘리며 밭을 갈며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힘썼고 아벨은 아담의 이야기 속에서 양을 잡아 옷을 지어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양을 치기 시작했다. 아벨은 밤이면 늑대나 이리로부터 양들을 지키며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았으며 또한 새끼를 낳고 거두며 우유를 짜고 양털을 깎아 생활에 유용하는 즐거움 속에서 삶의 낙을 터득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심령들

"세월이 지난 후에" 라는 말은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 우리로서는 측정할 수가 없다. 이때에는 인간의 수명이 최소한 오륙백 년을 살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 외에도 다른 자녀들을 많이 낳았을 것이고 가인과 아벨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인과 아벨의 하나님께 향한 예배에 대하여 아담의 간섭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 터전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았다는 내용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아담으로부터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인류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판결과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가죽옷을 해 입히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전해들은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어느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에 가인은 "하나님의 판결대로"를 택하였고 아벨은 "하나님의 마음"을 선택하였다.

 

*스스로 조심하라

주님께서 마가복음 4장에서 천국 비밀을 가르치시며 "너희가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스스로 삼가라"고 명하신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결정과 행동이 바뀌게 된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문자대로 살기를 선택하고 자신이 땀흘려 농사지은 것을 가지고 심판의 하나님께 나아갔고 아벨은 양을 치면서 발견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따라 생명의 하나님께 나아갔다. 후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르쳐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심을 본다.

 

우리는 또 본문 속에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이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심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는 하나님을 향해 나타난 분노였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우리의 태도에 따른 하나님의 반응에 대하여 분노를 갖고 있다.

 

우리가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누구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반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가 일어난다. 아마 이들의 제사는 아담으로부터 분가한 한 가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생활에 대한 시험과도 같았을 것이다.

 

분노하는 가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옳지 못함을 지적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게 되었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범죄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잣대는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 선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모든 일은 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속성

과연 인간은 선을 따라 살아 갈 수 있을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라는 말씀은 매우 의미가 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죄를 향한 인간의 심성은 마음 속의 소원처럼 도사리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악을 따라 주장하는 분노와 질투와 시기와 악독의 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마음 속에서 역사하는 "죄의 소원"을 다스릴 수 있는가? 이것은 밀가루 속에 있는 "누룩의 번짐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도 같다. 인간은 스스로 그 죄를 벗어버릴 능력이 없다. 다만 그 죄성을 따라 죄를 덜 짓는냐 많이 짓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죄가 우리 속에 잉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 죄를 없애는 오직 한 길은 사단을 멸하고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게 하시기에 능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 만이 있을 뿐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