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3장-6)무화과나무 잎이 필요한 이유!

이요나 2007. 2. 21. 14:56

(창세기3장-6)무화과나무 잎이 필요한 이유!

 

(창세기3:7-9)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있느냐?

 

*완성된 사람으로 출발

인간이 어려서부터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은 부끄러워하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과 핑계되는 것이다. 어느 부모가 천사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자녀들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겠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거짓말을 하고 남에게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누구를 막론하고 이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간이라는 칭호를 갖지 않아도 된다.

 

석가든 공자든 마호멧이든 아랫도리를 다 내어놓고 방긋방긋 웃고 울던 아기의 시절을 밟지 않고 성인으로 출발한 사람들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한 성인으로 출발한 아담, 다시 말하여 모태로 태어남으로 출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로부터 출발한 아담에게 이러한 모습이 태동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2장 끝에서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부끄러움이라는 그 자체는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할때 부끄러움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요한계시록 3장 끝 부분에는 교회의 완성 과정 속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게 되는데 주께서 그들을 향하여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는 말씀이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로부터 한마디의 칭찬도 받지 못한 교회로서 자신들의 부요함에 취하여 있던 교회였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부로 축적 된 교회들을 보게 되는데 과연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열매 속의 특수 DNA인자

본문에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 선악과를 먹는 순간 그 나무 열매 속에 있던 특수한 DNA인자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한 하셨던 부분이 열렸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것은 정말로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최초의 인간 아담은 씨 있는 채소와 씨 있는 실과를 식물로 주신 것으로 보아 처음 창조된 인간은 신체적 성장발육이 필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발육을 위한 영양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생의 삶 속에서 기쁨과 희락과 평안과 아름다움과 미덕과 지식을 더해 가는 그러한 삶을 위한 양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어디에서 그러한 아이디어를 발견하였는지는 장생불로 하는 약초를 구하려다 구하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버렸지만 인간의 조상 아담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한 것인지는 지금의 우리의 노고와 고통을 생각할 때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진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왜 하와로부터 받아먹었는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담이 비록 죄의 화살을 당기긴 하였지만 이 일만큼은 아주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 둘은 원래가 하나였기 때문이다. 둘로서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 원칙 하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이미 먹었기 때문에 아담이 먹던 안 먹던 그것은 의미가 없다. 또 하나의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창조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었음을 생각해야한다. 그들은 지혜와 지식이 충족되었고 아름다움과 지성과 도덕의 미덕과 깊은 사고력을 갖은 에덴의 통치자였다, 그들에게는 오직 단 한 분의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실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혜에 부족했던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과 교통을 하며 만물들을 다스리는 관리자였던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준 모든 열매 속에는 그들의 모든 삶에 필요한 영양소들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에덴의 관리자로 삼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 무엇이든지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을 주셨다.

 

이 자결권은 가장 큰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로 인간에게도 그것을 인간에게도 주신 것이다, 이 자결권을 없었다면 그러한 언약을 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아담은 완전한 에덴의 지배자였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아담은 완전한 자였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포기한 것

또한 세상에는 악이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구분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선과 악을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을 동안에는 그러한 것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제한 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선과 악의 세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떨어져 나갈 때 태동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심히 좋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에는 그것을 열어주는 어떠한 인자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담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모든 실과는 네 임의로 먹되..."라는 의미에서 그 하나님께서 그에게 금하신 것은 결국 아담을 위한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을 알려 주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불공평이라고 해야 한다. 또한 이 땅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어서 계속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법칙 즉 열역학이 있어서 말씀에서 떨어져 나간 아담은 결국 다음단계로 계속 미끄러져 나감을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먼저 하는 것은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 일들을 합리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죄로 떨어져 나간 아담과 하와는 이제 그 들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무화과나무로 자신들의 하체를 가리고 끝내는 동산 나무숲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죄에 대한 자아라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해결점의 자각을 상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늘 같은 입장이다,

 

늘 잘못을 해 놓고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 별별 짓 다 하다가 끝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나아오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의 길을 열어 놓으심으로 하여 이 문제의 해결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간의 원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교회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 너희는 지금 무화과나무 잎으로 아래를 감추고는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