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3장-5)Homer Odyssey의 요부(妖婦)

이요나 2007. 2. 21. 14:59

(창세기3장-5)Homer Odyssey의 요부(妖婦)

(창세기3:5-6)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 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육체의 용감성

호머의 "오딧세이"에는 참으로 우리 젊은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해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키르케의 잔을 지배하는 요부는 술과의 전쟁에서 개심한 젊은이를 유혹하는 싸움을 벌인다. 그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죄의 실제적 경험은 개심한 주정뱅이가 알콜을 한번 맛보는 것과 같고 어린 사자가 피를 처음 맛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은밀한 가운데 숨어 있는 마귀를 불러내는 것이며 앞을 향한 우리 마음에 새로운 본질을 창조하는 이정표가 된다. 그 단 한번의 기회는 우리가 오랜 투쟁으로 쌓아 온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믿음과 자존심까지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리고 만다.

이러한 시험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심령은 말할 수 없는 눌림과 고통을 받으며 결국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오직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을 기다리게 된다. 오늘은 사단의 유혹에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의 참예된 거룩한 삶을 송두리째 던져버리는 인간의 과감함을 살펴보자

우리는 본문 속에서 뱀과 하와에서의 대화에서 뱀이 하와만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 "너희" 속에는 분명 아담과 하와를 지칭하는 것으로 우리는 뱀 그 자신이 자신의 위치를 떠나 어떠한 권세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에 예속되어 있음과 창조 후 아담에게 이끌어 왔다는 의미는 그들이 아담에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뱀은 지금 자기의 지배자 인간의 생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또 다른 신학적 의혹을 내걸고 딴지를 걸고 있다. 인간을 유혹하기 위한 사단의 방법은 항상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도전이요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요 세 번째가 성령의 역사에 대한 도전이다.

*사단의 도전
지금 사단은 자기의 권위자 즉 인간이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바로 알고 있는가? 하고 도전을 해 온 것이다. 이러한 교만은 어디에서 태동하는가? 성경은 이에 대하여 "네가 아름다움으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움으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그들에게 준 지혜와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으로 교만한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천사장 루시퍼의 아름다움이 그러했고 들짐승 중에 가장 지혜로웠던 뱀이 그러하였다. 그러면 하와의 경우는 무엇이 잘 못 되었는가? 여기서도 역시 권위와 질서에 관한 문제가 엉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하와와 사단과의 대화는 분명히 하와가 거론할 성질이 아니다. 지금 이들이 거론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권위로서 피조물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모든 지혜와 지식에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덴의 통치자 아담의 권위를 위하여 아담에게 주신 말씀으로서 그 말씀에 대해 증명하여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뱀이야 사단의 사주를 받아서 자신의 입지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렇다 하더라도 하와의 경우는 무엇인가 사고가 부족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지식의 부족
우선 하와는 뱀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의를 거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가를 살펴보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도 이 말씀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의 지배 하에 있는 뱀이 하나님께서 에덴의 관리자 아담에게 주신 말씀을 가지고 거론하려 했을 때 하와로서는 어린 이삭을 희롱하던 이스마엘을 호통쳐서 내어 쫓아내던 사라의 입장을 취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아마 하와의 아름다움에 아담이 홀딱 빠져서 위아래조차 잊어 버렸는가 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위치를 망각할 때가 있다. 이로서 가정은 물론 교회 안에서도 많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조직 속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하와의 첫 번째 실수는 자신이 인간을 대표하여 사단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잘못은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사단과 같이 콩이다 팥이다 거론하는 것이요 세 번째 과오는 인간의 사활문제를 자신의 사고와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며 결정적인 범죄는 에덴 동산의 통수권자이며 자신의 생명의 모체인 아담에게 상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기록했다.

*육체의 속성
또한 진리에 대한 지식의 부족은 진리를 거부하고 비 진리를 받아들이기에 용감해 진다.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너희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증거하면 받아 드릴 것이다" 하셨다. 결국 사단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기한 하와는 그 말씀의 의미를 자신의 지각과 육적인 감각을 의존하여 깨달아 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교만한 마음의 충동을 받은 육체는 이유 없이 그 교만한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용감해 진다.

이것은 육체의 속성이기도 하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 당신은 지금 그 나무 밑을 거닐고 있지는 않은가? 이 망설임에서 당신을 지켜 줄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다. 오직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당신 앞에 서 계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