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가복음강해

(마가13장) 예수님의 예언

이요나 2007. 2. 23. 17:06

(마가13장) 예수님의 예언

 

(막13: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신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서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의 역사로 생각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종교적 도덕적 서적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그거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속자와 주로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더 이상 논쟁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은 성경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이 말씀은 아직도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릴 때 메시지를 듣기 위한 보조 서적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언하건 데 성경은 종교서적도 윤리강령도 이스라엘의 역사도 아닌 우리의 주 창조자 하나님의 계획을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오랜 세월 수많은 종들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그의 영광을 위해 지으신 하늘과 땅과 바다에 속한 모든 풍요로움을 그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여기서 우리가 은혜의 교회시대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교회는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단어와 은혜라는 메시지만을 찾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창조시로부터 그의 사랑과 은혜 속에 지음 받은 사람들인데도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사랑과 은혜를 되새겨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노무현씨가 맞는가를 확인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살펴 볼 때입니다. 그만큼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일한 백성임에도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달하신 주의 예언의 말씀을 살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을 당하여 멸망을 당해야 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비극이 오늘의 당신에게 임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성경에서 당신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

 

I. 미혹의 시대(1-8)

A.     위대한 헤롯성전(1-2)- ‘물질적인 미혹’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대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냐”(1-2)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솔로몬으로 짓게 하신 다윗 성전과 예루살렘의 멸망 후 칠십년 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여 총독 스룹바벨로 지은 성전이 있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페르샤(바사) 왕의 고도 제한으로 90피트 이상 지을 수 없어 그 규모나 웅장함에 있어 솔로몬 성전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민족들도 할 수 없는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는 성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로생활에서 돌아 온 이스라엘은 강대한 주변 이방국가에게 계속 지배를 당하고 주께서 탄생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어 그들이 허용한 범위 속에서 종교적 활동을 하며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에돔족 출신의 헤롯은 유대교로 개종 후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 성전을 당대 최고의 성전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건축에 특별한 조예가 깊었던 헤롯은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을 18층 높이의 최고의 성전을 최고의 웅대한 성전을 지어 성전을 중심으로 신도시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 계획을 수립하고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예수님 당시 헤롯 성전은 46년간을 지어 오던 터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헤롯의 이러한 무리수에 대하여 비웃으며 결코 그처럼 거대한 궁전은 짓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헤롯은 그 성전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예수님 당시 헤롯성전은  46년 동안이나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산에 오르면 헤롯의 요새라 불리 우는 여리고의 겨울 궁전과 오늘날 이스라엘의 기도의 벽이 된 예루살렘의 서쪽 성벽과 황제 가이사를 위해 지은 원형극장과 방파제의 옛 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유대의 종교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 돌들은 길이 37피트, 높이 12피트, 두께 18피트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림잡아서 돌 하나가 30평 정도의 건물 한 층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이 모든 돌은 백색의 미려한 대리석으로 석공들에게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졌습니다.

 

이미 주님은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안에 지으리라 말씀하신 바 있었던 터라 예수님과 성전을 오르내리던 제자들은 이 헤롯 성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께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합니까? 하고 주님의 의견을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네가 이 큰 돌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폭파를 하던지 하겠지만 46년에 걸쳐 지은 이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허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후 63년에 완성된 헤롯 성전은 70년에 로마의 디토 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처음 디토 장군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호령을 내렸으나 술 취한 병사의 실수로 성전에 불이 붙어 성전 안의 금장식들이 녹아 돌 사이로 흘러 내리자 병사들이 칼과 창 끝으로 성전 돌들을 파헤쳐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스라엘 땅에 성전은 지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메시지는 그 당시 주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주의 말씀에 대하여 회의를 갖었었지만 그 성전은 완성 된 후 7년 만에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우리 눈에 그대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 계시록에서 성전의 길이와 넓이를 재라는 천사의 명령이 기록을 읽게 됩니다. 이 명령은 그 당시 살아있던 주의 사랑하시던 제자 사도 요한이 받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독립 이후 성전재건을 위한 유대인의 염원과 노력에도 아직 우리는 이 성전이 지어진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성전은 이제 곧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어질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B.     예수의 이름으로(3-6) – ‘인격적인 미혹’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5-6)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미려하고 웅장한 헤롯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않고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주께 나아와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4) 물은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하셨습니다. 여기서 미혹이란 홀림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올라 가는 것을 보며 이제 곧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갖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흥은 늘 성전건축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성전건물에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 위에 서서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과연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자인가를 살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화려하고 놀라운 성전에 넋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하와가 사단의 미혹을 받아 생명나무 열매를 보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지라 하나님의 금하신 명령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때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그들이 화려한 성전을 미끼로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문선명이와 같이 자신이 주라고 하면 미혹 당하겠습니까? 성경은 사단도 자기 사람들을 광명한 천사로 위장 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라 기록하였습니다.

 

C.     재난의 시작(7-8)

주님은 두번째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난리’란 전쟁과 같은 재변을 말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난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중동지역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유럽 각국에서 폭동이 치솟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이러한 난리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주님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좌파와 우파의 극단주의로 나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 속에 민족주의적 사고 방식이 팽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신 나치주의자들이 고개를 들고 있으며 러시아, 호주 등에서 이미 백인 우월주의를 외치며 유색민족들을 내몰고자 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조차 민족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386 운동권자들을 중심으로 집권층 세력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좌파 운동에 앞장을 서고 있으며 최근에는 우파 중심의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동남아 해안 국가를 휩쓸고 간 쓰나미와 동남미를 할키고 지나간 허리케인으로 온 지구가 종말적 분위기에 휘말렸습니다. 또 파키스탄을 비롯하여 곳곳에 일어난 지진은 지진의 안전지대에 살고 있다 자부하고 있던 우리에게도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날이 갈수록 홍수와 가믐이 극심해져 이처럼 물자가 풍성한 시대에도 기근은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주님은 ‘재난의 시작’이라 하셨습니다. 이미 재난의 실마리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II. 교회의 환난(9-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사도 곧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할 환난에 대하여도 언급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영역에서는 이 말씀에 대하여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네팔 미안마, 이락과 파키스탄과 같은 곳에 가면 교회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미전도 국가 전도에 대하여 지혜를 가지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이라크 파병이 시작될 쯤 한국인 남녀 선교사 세 명이 이라크에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하며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입국하였다가 정부 당국에 의해 강제로 입국조치를 당했습니다.

 

이들의 생각과 명분은 참으로 위대합니다만 모든 일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먼저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의 질서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공회란 유대교의 최고 공동체로서 모든 예배와 율법이 제정되고 판단되는 최고 행정기관이자 사법기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가장 위험이 되는 기관은 종교적 체제 이념이 다른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도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에 의해 공회에 넘겨져 정치적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관장들과 임금들이란 국자 정치조직을 말합니다. 이로서 우리는 복음이 정치적 조직과도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 체제 자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서나 계시록에서 국가체제 속에 역사하는 사단의 영적 역할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공산국가나 독재 체제에서 복음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배후에 사단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보좌에서 내어 쫓긴 사단이 이 땅의 권세자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회와 방백과 총독과 가이사 황제 앞에 서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자신은 복음을 위하여 제물이 될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복음이 그들에게 증거 되어야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복음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빨리 전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빨리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그리스도께서 빨리 오시게 하기 위해 전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것으로 주님은 그날은 천사도 아들도 모르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14장에서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는 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14:6)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7년 대환난 중반부 곧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 명이 그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하늘에 오른 후의 일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복음이 사람을 통해서만 전달되도록 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은 인간의 지혜 속에 속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알게 하신 것은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셨습니다. 그로므로 인간의 방법과 지혜로 복음을 전하려 하는 것은 무익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주님은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혈육의 정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증거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로하여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성도의 고난에 대하여 일부러 잊으려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복음을 맡은 사역자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나아가 행악간에 판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고후5:10).

 

III. 예루살렘의 환난(14-23)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들을 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4)

 

여기서 우리는 예언의 이중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미예언 된 말씀으로 주님 오시기 전에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에 의해서 이미 일어났던 일입니다(단9:27, 단11:31). 

 

그러나 이 일의 종국은 다니엘이 바라보고 있는 종말의 날에 있을 일들 곧 7년 대환난에 적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한 것입니다.

 

지금 본문단에 언급된 말씀은 이스라엘에 속한 것입니다. 사실 7년 대환난은 은혜의 교회시대를 마감하고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70년 중 마지막 이레에 속한 언약을 성취하는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하셨습니다. 이 일은 주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로마 디토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 말씀을 믿고 산으로 도망을 하여 재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매여 있는 유대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안식일에 침공한 로마 군에게 그대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7년 대환난에 있을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에 다시 한번 일어 날 것입니다. 성경은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계12:15,16)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암반도시 패트라에서 용의 공격을 피하게 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환난의 날에  대하여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하시며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택하신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7년 대환난은 아무도 능히 피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재앙인 것입니다.

 

주님은 그때에 다시 사람들을 미혹할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가 일어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이라도 미혹하려 할 것이라 경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계시록 13장에서 용이 짐승에게 자기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이 짐승 같으뇨 누가 능이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였습니다. 결국 짐승은 이스라엘을 이기고 전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계13:7절).

 

IV. 대환난의 때(24-37)

A. 일월성신의 징조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23,24)

 

이 말씀은 세상 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나타날 일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엘은 이 날을 예언하여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2:20) 하였으며 베드로 사도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서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주에 세우신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천지만물이 창조된 이래 지구 횡성을 비롯한 우주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대로 변함없이 자기의 궤도를 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위해 하나님은 또 새로운 질서를 세우시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은혜에 참예한 성도 곧 교회들은 하늘로 이끌려 보좌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몸은 썩지 않을 것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부활을 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백성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재림에 관한 말씀을 계시록 19장과 20장에서 상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와 천년 동안 그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인지 아니면 적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 유황불 못 게헨나에 들어 갈 것인지 말입니다.

 

B. 무화과 나무의 비유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28-30)

 

그러면 주님은 언제 오실까요? 주님은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나라 하셨습니다. 만약에 이 날을 모두에게 알게 하셨다면 이것 또한 불공평한 일입니다. 나쁜 짓을 하다가 그날에 회개할 수 있을 태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그날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날이 도적과 같이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5)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 날을 우리에게만 알려준다는 것이 아니라 깨어 빛 가운데 있는 자들은 주의 지혜로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언급하신 무화과나무 비유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어떤 지식에 속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칭한 것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안을 누림을 증거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을 받은 후 이 지구상에서 그 나라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그후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 속의 흩어진 디아스포라 곧 이방의 객이 되어 세상으로부터 오는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없어진 국가 이스라엘이 다시 자기의 고토로 돌아와 국가를 재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그들의 땅은 팔레스틴의 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고구려의 옛 땅인 만주 벌판을 찾으려 한다면 중국이 가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의 회복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주제이며 성경의 마지막 예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수세기 동안 이방의 객이 되어 흩어져 떠도는 저주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만 그들은 1948년 5월에 독립하여 전 세계 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성경의 예언을 따라 속속 그들의 영광의 땅으로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직 이스라엘은 오늘날 이스라엘은 영광의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고 그들을 대적하는 팔레스틴과 이슬람 교도들과 끊임없는 분쟁을 하고 있지만 명실공히 오늘날 이스라엘은 전세계가 두려워하는 독립국가로서 그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의 독립의 세대로서 오늘날의 세대를 뜻합니다. 한 세대는 100년으로 1948년부터 한 세대라면 2048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내 나이와 같은 세대라서 내게는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 주께서 나를 불러 올리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한 세대가 차면 오신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다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환난 전에 있을 교회의 휴거는 이보다 훨씬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 자각하여야 합니다. 만약 주를 믿는 당신이 세상에 빠져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당신은 대환난 속에서 준비된 다음의 기차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의 은혜로 베풀어 지는 것이 아니라 환란 속에서 당신 스스로 순교를 선택하여야만 합니다.

 

끝으로 주님은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바울은 우리가 다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으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음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열 처녀와 같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였다면 신랑의 음성을 듣고 깨어나 불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서 주를 맞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평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