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계시록 강해

(계시록22장) 거룩한 성으로의 초대

이요나 2007. 2. 24. 11:00

(계시록22) 거룩한 성으로의 초대

(22:21)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제 우리는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게 된다. 계시록 22장은 사도 요한을 통해 전달하는 그리스도 왕국의 도래에 관한 메시지의 완결편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권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는 공상 설화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데 성경은 처음부터 미래지형적 사실들을 메시지로 전달한 계시 문서로서 천국시민의 자격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편지이다.

 

따라서 오늘 계시록 22장을 읽는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우리의 잘못된 믿음생활의 관행들을 정리하고 거룩한 성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어린양의 신부의 성결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계시록22장을 공부할 때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하고 살펴 본 내용들 곧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의 기록과 전혀 반대의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창세기와 계시록은 그 위치에서 처음과 마지막의 위치에 있다. 이것은 복음의 시작과 끝의 의미가 있으며 계획과 완성의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계시록 끝에서 창세기와 아주 대조적인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데 창세기 1장1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기록되었으나 계시록 21장 1절에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기록되었다. 또 창세기 1장 10절에는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기록되었으나 계시록에는"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기록되었다.

 

또한 창세기 1장 5절에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기록되었으나 계시록에는 "거기는 밤이 없으리라" 기록되었고, 또 창세기 1장16절에서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기록되었으나 계시록 21장 23절에는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라 기록되었다.

 

또한 창세기 2장 17절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으나 계시록에는 "다시 사망이 없다"(계 21:4) 하셨고, 범죄한 아담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창 3:16) 하셨으나 이제는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 21:4) 하셨다.

 

또한 세상을 사는 인간들에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창3:17)라 하셨으나 이제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계22:3)라 하셨고 처음 세상은 사단의 미혹을 받았지만 미혹의 영 사단은 영원히 멸망을 받는다(계20:10).

 

또한 처음 세상의 범죄한 인간은 생명나무 곁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되었으나(창 3:22-24), 이제는 누구나 생명나무를 취할 수 있으며(계 22:2), 거기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지만 (창 3:24) 여기서 그들은 그의 얼굴을 볼 것이라 약속 되었다(계 22:4).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처음 살았던 곳은 강가였듯이(창 2:10) 우리가 살 영원한 집은 하나님의 강가에 있다(계 22:1).

 

I. 교회의 모습(1-2)

A. 생명수의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가운데로 흐르더라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실과를 맺히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오늘 우리가 글을 읽을 주의할 것은 내용들은 우리가 상상할 없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에 펼쳐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갈 새로운 터전 하늘과 땅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기록을 구태여 영적으로 해석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부분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요한이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그가 본대로 수정과 같은 맑은 강일 것이다.

 

인류는 시작으로부터 에덴의 중앙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고 살아 왔다. 아담의 이후로도 인류는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였고 강은 땅의 모든 인류의 젖줄이 되어 왔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에도 인간은 물을 떠나서 살아 없으며 인간의 생명을 유지 시키는 물은 오직 강을 통하여 얻게 된다.

 

흥미롭게도 질서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사는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도성 가운데로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입을 통하여 전달되는 영적 메시지라고 호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곳에 들어 오지 못할 것이다. 이미 속된 것이나 가증한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단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21:27)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물이 없으면 살아 없는 인간에게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물이 보좌로부터 흐른다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런 일인가? 이것 또한 하나도 이상할 없다. 더구나 주께서 창조하신 생명수가 그가 계신 보좌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주님은 유대인의 명절 마지막 날에 성전에 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하셨으며, 세상의 삶에 지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하셨다. 물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갈급한 영혼들을 향한 것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도성에서는 영과 혼과 육이 모두 그의 보좌에서 샘솟아 흐르는 생명수를 통해서 공급될 것이다.  

 

성경은 주께서 재림하실 예루살렘이 둘러 갈라질 것을 예언하여 주의 발이 예루살렘동편 감람산에 서실 때에 감람산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골짜기가 생길 것이라’(14:4) 기록하였으며, 시편기자는 시내가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46:4) 하였다.

 

말씀은 주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성령으로 보이신 것과 동일하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의 강을 소개하여 좌우에 나무가 심히 많았고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었으며 좌우에 나무가 달마다 실과를 맺으며 잎사귀는 재료가 되리라기록하였다(47:9-12).

 

흥미로운 것은 생명나무 열매이다. 요한은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실과를 맺히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기록하였다. 생명나무는 처음 세상에서 아담이 보았던 에덴 동산 중앙에 있었던 생명나무인 것일 것이다.

 

오늘날도 같은 종의 나무를 접목하여 나무에서 종류의 열매가 나게 것은 있지만 나무에서 열두 가지의 과실이 맺는 다는 것은 정말 신비롭기만 하다. 더욱이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도 계절의 개념은 지속될 같다.

 

우리가 생명나무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3장에서 처음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사람을 위해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두시고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2:9).

 

또한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보라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하시며 그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

 

 이를 보건 아담에게 허락하신 에덴 동산의 많은 나무 열매들은 인간의 육체적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뜻을 알아가며 삶의 풍요로움을 주는 지혜와 지식을 주는 열매일 것이다.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말씀은 매우 흥미롭다. 여기서 소성한다 말은 회복을 의미한 것으로 에스겔서 47 12절의 잎사귀는 재료가 되리라 기록과 동일하다. 최근 웰빙 바람이 불면서 자연식품과 약초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각종 나무 열매와 식물의 잎에 우리 몸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소와 치료의 성분을 두신 것은 매우 합리적이 아닐 없다.

 

B. 성도들의 축복(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3,4)

 

이제 요한은 천국의 특성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저주 없다 하였다. 저주라는 단어는 창세기 3장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이것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인간에게 처음 내려진 하나님의 판결이다. 이로서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 바울은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8:22) 하였다. 그러나 천국에는 다시 저주가 없다.

 

성도들의 두번째 축복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는 것이다. 여기서 종이란 노예가 아니라 그의 가장 중요한 측근이라는 뜻이다. 주님은 그의 종들이 받는 축복에 대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10:41) 하셨으며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전3:23) 하였고 다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8:18) 기록하였다.

 

4절에서 요한은 그의 얼굴을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기록하였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이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름받은 모세도 받지 못했던 축복이다. 여기서 이마에 그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인격화 된다는 의미이다. 요한은 일찍이 우리를 향하여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가 계신 그대로 것을 인함이라’(요일3:2) 증거하였다.

 

또한 요한은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추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5) 기록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빛일 것이다. 빛이 없으면 어떤 것도 자신을 나타낼 없기 때문이다.

 

지구는 태양을 통해서 빛을 받고 있다. 빛이 없다면 지구는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며 아무것도 자신을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은 스스로 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빛이 있으라’(1:3) 하시매 빛이 있었고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지구를 위하여 태양을 설계한 것이다(1: 14). 이에 대하여 요한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 증거하였으며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없는 축복은 우리에게 우주만물 그에 속한 모든 것의 통치권을 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왕노릇이란 왕과 동등한 통치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양의 신부된 권세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딤후2:12) 다시  자녀이면 또한 후사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8:17) 하였고 증거한 것이다.

 

II. 그리스도의 약속(22 : 7, 12, 20) – 보라 속히 오리

A. 메시지의 진실성

그가 내게 말하기를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6-7)

 

오늘 성경의 마지막 요한 계시록 22장은 시재를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국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는 하늘 땅의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확인하게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은 사도 요한에게 메시지를 받을 그리스도의 교회 그의 성도들을 향한 것이다.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메시지의 진실성을 언급하여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하셨다. 이것은 지금까지 요한을 통해 증거한 모든 메시지의 진실성을 우리로 다시 확인케 하신 것이다. 계시록에서 이러한 표현은 소개되고 있는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신부를 소개할 (19:9) 하늘에서 내려 오는 예루살렘을 소개하며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하늘과 그리고 성도의 도성 예루살렘에 관한 예언의 말씀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후일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하신 주의 말씀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것이다.

 

B. 메시지의 목적

요한은 메시지의 목적을 말하여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기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의 선지자들에게 기록하게 하신 것임을 다시 확인할 있다.

 

또한 계시록의 메시지의 특성은 천사들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물론 요한은 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도 있다. 그러나 요한은 하늘의 일들과 장차 땅에서 일어날 하나님의 계획들은 모두 천사를 통하여 전달 되었다. 요한은 이미 계시록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듯이 속히 일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한 것이라”(1:1) 기록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종말의 때에 그의 천사들의 역할이 다시 한번 크게 역사할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계속하여 요한은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기록하였다. 이것은 계시의 말씀의 목적이기도 하다. 사실 아무리 유익하고 좋은 말씀이라 해도 우리가 말씀을 믿고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하셨다. 이것은 주의 오심으로부터 계시된 약속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형벌과 심판의 말씀인 것이다.

 

C. 요한의 반응(8,9)

여기서 요한은 한번의 실수(?) 하고 만다. 어쩌면 중복된 요한의 실수는 우리에게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왕국의 생명의 강과 생명나무를 보고 그곳에서 그의 성도가 받을 축복의 메시지를 들은 요한은 자기를 인도하던 천사에게 절을 하려 하였다. 천사는 1910절에서와 같이 나는 너와 형제 선지자들과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하였다.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의 거룩한 성에 참예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화스런 위치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절을 하려 것은 그가 받은 메시지에 대한 감복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누구에게 정말 감당할 없는 은혜의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앞에 무릎을 꿇게 것이다. 이와 같이 사도 요한은 천사를 통해 보고 받은 메시지에 감당할 없어 그에게 다시 무릎을 꿇고 경배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그의 천사들에 대하여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니라”(1:7) 기록하였고 다시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1:14) 증거하였다.

 

III. 책의 중요성(10-15)

A. 하나님의 계획의 클라이막스(10-11)

내게 말하기를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여기서 우리는 정말로 때가 임박한 것을 확인 있다. 책의 예언을 인봉하지 말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기록은 요한의 때로부터 2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 까지 봉하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다니엘서에서 천사는 이미 말한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후의 일임이니라’(8:26) 하셨고 다시 대저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이니라’(12:9) 하였다. 당시 가장 지혜로운 다니엘도 그가 이상을 깨달을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위해 봉하여 두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날이 앞에 이른 우리 세대를 향하여는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말라 하였다. 그로서 말씀을 읽고 들어 지킨 그의 종들은 날에 관한 모든 말씀을 깨닫고 하늘 보좌에 이르렀을 것이다. 또한 우리도 끝까지 그의 말씀을 지켜 그들과 함께 주를 섬기게 것이다.

 

B. 예수 그리스도 판단(12)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말씀은 심히 두려운 말씀이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의 의지에게 선택권을 허락하셨다. 이는 에덴 동산의 아담에게 하신 말씀과도 같다.

 

나는 그렇다고 말씀이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믿지 않음으로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의란 하나님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는 자들로 하나님의 진노에 속한 자들을 의미한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예언을 하는 일삼는 자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는 불의한 일과 더러운 일들을 많이 본다. 이제 이상 그들을 돌이킬 시간이 없다. 지금은 그들이 받을 형벌과 거룩한 성에 참예할 의인들의 복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상이 내게 있어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하였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또한 내가 행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은 참으로 공평한 판단이다. 이것은 우리가 받을 그리스도의 판단을 말씀하신 것으로 바울은 우리가 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증거하였다. 또한 우리가 아직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것인가의 선택적 의지를 허락하신 것이다.

 

  C. 완전한 사역

주님은 요한에게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13) 하셨다. 말씀은 모두 서로 같은 의미의 어구 같지만 완전성을 나타내는 포괄적 의미가 내포해 있다. 다시 말하여 영원성과 총체적인 권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알파와 오메가란 헬라어의 알파벳 시작과 글자로서 영어의 A Z 해당된다. 당시 헬라어는 가장 지혜의 언어로서 세계 공통어의 위치에 있었다. 오늘날 영어와 같다고 하겠다. 또한 헬라어는 어휘가 풍부하여 신적 어휘에서 문학적 어휘에 이르기까지 표현에  풍족하여  학문과 철학의 기준이 되는 언어였다. 따라서 알파와 오메가란 모든 지혜와 지식의 범주 학문과 철학과 사상과 예술 모든 부분을 망라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처음과 나중이란 ‘First and Last’로서 서열적 질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권위적 질서라고 하겠다. 모든 권위가 그에게 있음을 뜻한다. 시작과 끝은 'Beginning' and 'End' 창조적 사역을 포괄한 예정과 계획의 질서로서 영원성을 의미한다.

 

D. 복음의 결과(14-15)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7절에서 주님은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하셨다. 말씀은 예언의 말씀을 대하는 자들을 향한 권고의 말씀이다. 그러나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 성도로서의 온전함을 요구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제임스 성경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기록되었다.

 

또한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예복을 빨아 주라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있다. 그러므로 말씀은 거룩한 도성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온전한 믿음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자의 영화로움 얻기 위해 문들을 통과하기 위한 투쟁과 노력을 요구하신 것임을 있다.

 

요한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2) 말하였다. 생명나무에 참예하는 영광을 바라보며 아직 씻어 버리지 못한 세상의 때를 말끔히 빨아 버려야 것이다.

 

주님은 개들과 술객들과 햄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15) 하셨다. 여기서 개들이란 먹을 것을 위해 주인을 바꾸는 자들을 말한다. 주님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하셨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세례에 참예한 후에 돌아간 자들을 말씀하신 것이다.

 

행음자란 성적인 도덕성을 상실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날이 갈수록 많은 사역자들이 음행에 빠지고 있다. 바울은 음행을 행하는 자는 창기와 몸을 합한 자라 하였다. 흥미롭게도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같이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언급하셨다. 이들은 모두 은혜의 대상 속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여기서 거짓말과 지어내는 자들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것이다.

 

오늘날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잘못된 것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위대한 사역자라 생각할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성밖에서 울게 것이다. 여기서 성밖이란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거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도성을 말씀한 것인지 아니면 첫째 부활에 참예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 것인지 이것은 그때 가서 확인해 보아야 같다.

 

IV. 최종의 권면(16-21)

A. 초대의 중심은 사람(16)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다윗의 뿌리요 다윗의 자손이란 이사야 11 말씀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나며 뿌리에서 가지가 나리라하신 말씀의 인용이다. 이것은 성경적 예언의 성취와 관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임장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광명한 새벽별이란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24:17) 하신 언약의 성취로서 세상을 비추는 영웅적 권위를 의미한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들에게 너희 있는 것을 내가 때까지 굳세게 잡으라 하셨고 이기는 자와 끝까지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 하셨고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같이 하리라 하시며 내가 새벽별을 주리라 하셨다(4:24-28).

 

새벽별이란 저녁부터 치자면 가장 늦게 뜨는 별이지만 낮으로 말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별이다. 그야말로 시작과 끝은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그의 계획과 장중 안에서 완성될 일로서 우리의 믿음과 인내의 동참을 요구하신 것이다.

 

B. 성령과 신부의 초청 메시지(17)

성령과 신부가 말씀 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것이요 목마른 자도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우리는 22장의 메시지의 중심은 교회를 향한 것임을 확인 있다. 사실 계시록 22장의 현실적 시제는 하늘과 땅으로 인간의 한계와 시계를 벗어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나 주께서 예언의 말씀을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보이신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를 위한 메시지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7절에서 거룩한 초대로의 메시지는 성령과 신부가 전하고 있다. 이미 하늘보좌에 올라 그리스도의 신부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의 신비로운 자태를 하고 있는 어린양의 신부 교회가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성도들을 향하여 거룩한 초대를 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것인가?

 

나는 우리의 믿음의 부모들이 천국에 가서도 자기의 자식을 위하여 중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메시지는 장차 그리스도 날에 그의 영광을 함께 어린양의 신부가 아직 세상에서 그의 날을 고대하며 믿음의 투쟁을 경주하는 교회를 향하여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린양의 신부로서 아브라함과 그의 사도들과 함께 하늘의 도성에 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아직 당신과 함께 하늘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생명수의 메시지를 전하여야 책임과 의무가 있다. 예수께서 초막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시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솟아 생명수는 원하는 자들에게 값없이 전달된다. 그것은 성령과 교회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일곱 교회 사자들을 향하여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선포한 것이다.

 

C. 초청을 외면한 자들이 받을 (18-19)

만약 당신이 메시지를 외면한다면 결국 당신은 생명나무의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고 성밖에서 울부짖던가 아이면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성령과 신부의 메시지를 받지 못하고 생명수를 받지 못하는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은 내가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하셨다. 말씀은 책의 말씀에 다른 지식들을 더하는 자들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부족한 듯이 여러 가지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접목 시키려 한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전도폭발 운동이라든지 상담학인 것이다. 모든 것은 부흥과 교회성장을 위해 생긴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작은 자가 자를 어떻게 성장 시킬 있으며 피조물이 창조자를 어떻게 부흥 시킬 있겠는가? 어린 자식이 자기 아버지를 성장 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배양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계속하여 주님은 만일 누구든지 책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하셨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짊어진 모순이다. 많은 목사들이 성도들을 영적으로 빨리 성장 시키려는 생각에 성경에서 필요한 부분만 급처방 하려 하고 있다.

 

최근 보사부에서 감기에 항생제를 제일 많이 처방하는 병원을 공개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들이 이러한 추세에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빨리 성장 시키기 위해 홀몬 주사와 고단백을 처방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모든 것을 그의 지혜 두셨다. 이것은 창조하신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지혜 안에 균형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D. 축복의 메시지(20-21)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 있을지어다 아맨

 

이제 주님은 마지막 권고의 말씀으로 성경의 끝을 맺는다. 주님은 먼저 속히 오리라하셨다. 세상 가운데서 인내의 믿음을 지키는 그의 신부 그리스도의 성도들에게 보다 감격할 말씀은 없다. 어린 아들들을 종들에게 맡기고 집을 떠난 부모가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속히 오리라는 말이다.

 

이에 그의 신부 성도들은 아멘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화답하였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이들의 염원 속에는 인내와 고통의 눈물이 서려있다. 사도 요한은 끝으로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하고 송영을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세상에 살고 복스런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여 하심이니라’(2:11-14) 하였으며 다시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2:15) 명하였다.

 

옳습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 주의 당부하신 말씀들을 지키고 말씀으로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하는 영광의 은혜가 우리와 너희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