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계시록 강해

(계시록21장) 새 하늘 새 땅

이요나 2007. 2. 24. 11:15

(계시록21) 하늘

 

 (21:1) “내가 하늘과 땅을 보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아니함이라

(9 : 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위의 만물과 바다와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 말씀은 우리가 주와 함께 살아가 예루살렘 하나님의 도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아직 세상의 물질 구조와 질서 속에 속해 있는 우리로서는 충분한 이해를 없지만 이제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게 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체가 되어 모든 비밀들이 풀리게 것이다.

 

어쩌면 성경이 이러한 내용을 우리에게 미리 전달하는 것은 후일 우리가 하늘에 올라 어리벙벙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내용을 충실히 숙지하여 동료들은 모두 천사와 함께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산골 촌놈처럼 기웃대지 않기를 바란다.

 

I. 우주 질서의 변화

A. 물질의 변화

" 내가 하늘과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

성경에서 하늘’(heaven)이란 말은 582 나오며 하늘들 133번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하늘(sky) 아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삼층 하늘에 다녀 것을 언급하며 내가 밖에 있었는지 안에 있었는지 없었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대한 성경적 지식을 알아 필요가 있다. 

 

다윗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노래하였으며, 주님은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하셨다.

 

또한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따라 하늘에 있는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 믿음의 증인들에 대하여 저희가 이제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증거하였다.

 

이러한 증거들을 살펴 1절의 하늘 이란 우리가 살던 땅과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은 우리가 땅과 하늘(sky)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20:11) 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이 하늘과 창세기 1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신 말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기록한 것과 같이 처음 창조하신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새로 창조하신 하늘과 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된 세상을 펼치시기 위해 새로운 구조와 질서의 하늘과 땅을 창조(Bara)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없었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 아니할 것이라”(65:17) 하였으며 다시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하늘과 땅이 앞에 항상 있을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66:22)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이미 이날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 바라’(bara) 이해할 의미가 정확히 드러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자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있으며 그가 창조하신 모든 만물은 그의 주권아래 존재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예언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4:35) 말씀하셨다. 또한 베드로는 주의 강림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증거하며 다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하늘과 땅을 바라보는 도다’(벧후3:13)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땅에 관한 지식들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를 가장 흥미롭게 하는 것은 그때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실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켜 하늘에 거하게 하신다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주의 부활하심과 같은 새로운 영의 체질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은 크게 흥분되는 일이지만 아직 우리의 사고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것은 우리가 주와 함께 천년왕국에 살게 우리의 몸의 체질과 생체적 질서도 모두 변화되어 새로운 몸의 구조로 창조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바울은 우리의 변화될 것을 예언하여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예언하였다.  

 

또한 대환난 중에 살아 남아서 땅에서 주를 맞이할 사람들의 몸은 과연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가 매우 궁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아직 땅과 하늘아래서 살면서 그리스도의 철장 권세 속에서 육체와 영혼의 복을 누려야 것이므로 아마 지금의 육체를 그대로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때는 세상 환경이 크게 변화하여 기압의 변동이 없고 공해가 없으며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못할 것이므로 에덴동산에서와 같은 환경 속에서 인류는 천년의 복을 누리게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던 세상은 열역학 엔트로피 법칙 가운데 모든 물질세계는 멸하고 흥하는 흥망성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새로운 물질 질서가 세상에 적용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이 23.5도로 기울어진 지축의 변동이 발생한다면 지금 지구를 붙들고 있는 힘의 질서는 다른 질서로 바뀌게 것이다.

 

이사야서 13 13절에는 그러므로 네가 만군의 주를 분노로 맹렬한 진노의 날에 하늘들을 흔들며 땅을 제자리에서 움직이게 하리니하였고 다시 땅이 술취한 자같이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오두막같이 흔들리며 땅의 범죄가 땅을 무겁게 누르므로 땅이 넘어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24:20) 기록하였다. 모든 일들은 종말의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나타날 징조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한은 그곳에 바다가 다시 있지 않더라기록하였다. 바다는 인간의 죄로 얼룩진 땅을 일시적으로 중화하기 위한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여 왔으나 오늘날 바다는 지구의 더러움을 이상 감당하지 못할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늘과 땅에는 바다의 용도가 무용할 것이다. 이상 더러워질 것이 없음으로 중화 시킬 요소 또한 필요없게 것이다.

 

B. 예루살렘 성의 매력(2)

내가 보매 거룩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같더라”(2)

 

내용은 위에서 언급된 하늘과 땅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면 앞에서 언급된 계시록의 내용들이 뒤엉키고 만다. 먼저 1절에서 언급된 하늘과 땅은 천년왕국이 끝난 다음에 백보좌 심판 후에 그때까지 인류가 살던 처음 땅과 처음 하늘이 없어지고 대체로 예비된 하늘과 땅이다.

 

그러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신성 하나님의 속성을 뜻하는 곳으로 하나님의 보좌권에 속한 영역임을 알아야 것이다. 이곳에는 육체의 속성을 벗어나 하늘의 거룩한 속성을 변화 받은 하나님의 온전케 하신 성도들 그리스도의 신부로 초청된 자들이 거하는 신성도시인 것이다. 새로운 거처 예루살렘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께서 미리 가신 것이다(요한14 참조). 이곳은 또한 아브라함과 함께한 구약의 선지자들이 모두 소망하던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인 것이다(11:10, 16 참조). 천사는 16 이하에서 도시의 아름다움과 구조와 크기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것은 여기서 언급된 예루살렘이란 땅에 존재한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내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킨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성도 교회를 위해 예비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을 말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증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요한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정한 것과 같다 하였다. 인간의 언어로 이보다 아름다운 표현은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건축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영역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우주 만물의 형체나 건축물이나 모두 인간의 범위에서 생각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것들은 우리의 사고와 이상으로조차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차원적 신비에 속한 것임을 알아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또한 비교할 없다. 다만 상상 속에서 가슴을 설레이며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따름이다.

 

여기서 우리를 궁금하게 하는 한가지! 그것은 바로 우리 신부된 자들 첫째부활에 속한 자들이야 하늘로부터 내려온 도성 예루살렘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러면 하나님께서 처음 땅과 처음 하늘을 없애시고 하늘과 땅을 준비하셨으며 과연 그곳에서는 누가 것인가? 이것은 부족한 이해를 위하여 조금 후에 설명하기로 하자.

 

C. 하나님 뜻과 목적의 실현(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3)

 

음성을 듣는 사도 요한은 정말 가슴이 메어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때에 우리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노래한 다윗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과 함께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장막 가운데서 살아 왔다. 이에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증거하였다.

 

요한은 모든 눈물을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갔음이러라 말씀은 세상을 살아 사람들만이 있는 말이다.

 

어쩌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에게 말씀은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며 거룩한 삶을 살던 그의 성도들에게 있어 세상은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인내의 삶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성은 세상으로 우리가 믿을 때에 언약하신 약속이 실천되는 영원한 생명의 세상이다. 

 

이루었다 말씀은 귀에 익은 말이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의 시작이요 오늘 만물을 새롭게 하고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완성을 의미한다.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알파벳이다.

여러분은 요한복음에 소개된 사마리아 여인을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오랜 세월 목마른 인생을 살아 왔다. 그녀는 하나님께 예배를 하면서도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그녀가 주를 만난 그녀의 영혼은 생명의 말씀으로 충족함을 받았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땅에서 영혼의 만족을 위해 교회 교회를 전전하였다. 교회에서 이것이 만족되면 저것이 만족할 없어 갈급하였겠지만 이제 이상 갈급할 필요도 없고 방황할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로 친히 생명수로 충만케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가라사대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아들이 되리라기록하였다.

 

5절의 만물을 새롭게 한다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새로운 세계는 깜작할 사이에 모든 만물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천둥 번개와 태풍이 불고 맑고 청명한 하늘과 태양이 비추듯이 하늘 땅의 모든 만물들은 지금의 조직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창조될 것이다. 새로운 하늘의 몸으로 변화된 우리에게는 하늘의 속성으로 지어진 만물들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명령은 매우 특별하다. 말씀은 사도 요한으로부터 새로운 예언의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 우리 교회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시록을 읽을 시제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요한이 것은 미래 속의 세상이지만 메시지는 주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교회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명령을 받았다. 천사는 199절에서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전하였다. 요한이 메시지를 받을 말을 전하는 천사가 얼마나 위대하였는지 절을 하려고 했었다. 말씀을 전하는 천사의 모습이 거룩하였으면 사도된 요한이 감격하여 절을 하려 했을까 싶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영광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요한은 7절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아들이 되리라기록하였다. 지금 순간이 주께서 그의 신부 성도들에게 언약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인 것이다. 또한 반대로 8절에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 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기록되었다.

 

말씀은 7절에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과 대조를 이루는 말씀이다. 주님은 말씀을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고 있는 요한에게 하신 것일까? 말씀의 시제는 하늘보좌에 영생을 누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대상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의 날에 영광에 참여할 그의 성도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말씀이다. 여기서 천사는 모두가 첫째부활에 들어 와야 것을 역설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결단코 둘째 사망에 들어가서는 않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들은 우리 교회를 향하여 누누이 잠에서 깨어날 것을 종용하였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세상에 취해 더러운 생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차례 음행하는 자와 술취한 자들과 남색하는 자와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우상숭배자들은 결코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하리라 경고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들은 이러한 경계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고 교회부흥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은혜의 구원에 참예하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참예하지 못한다면 돼지가 씻고 다시 더러움에 눕는 것과 같다.  

 

II. 예루살렘으로의 초대(9-27)

A. 천사의 안내(9)

입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하나가 나아와서 내개 말하여 가로되 이리오라 내가 신부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우리는 이미 19 7절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 관한 메시지를 받았다. 주님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며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셨다. 여기서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의미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모두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초대에 목적이 있다는 말씀이다.

 

만약 천년 동안 수많은 종들과 증인들을 통하여 전달된 성경의 메시지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 삭제된다면 시작은 보고 결말은 보지 못한 건축자와도 같다 하겠다. 흥미롭게도 오늘 요한에게 어린양의 아내 신부를 안내하는 천사는 일곱 대접에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천사이다.

 

천사가 누구인지 우리는 하늘에 가서 있겠지만 오늘 말씀을 읽는 우리는 일곱 재앙을 받아 영원한 못으로 들어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에 참예한 어린양의 신부가 것인지 선택을 하여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글을 읽게 된다면 당신은 나와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게 것이다.

 

1. 요한의 위치(10)

천사는 요한을 성령의 능력으로 크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말씀을 보는 우리는 요한의 위치를 살펴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람을 아노니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자라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3,4)증거하였다. 요한과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 모세와 엘리야와 말씀을 나누는 변화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정황이 어떤지 없다. 우리가 아무리 상황을 이해하려 해도 실제로 체험을 사도 바울도 정확한 진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 천사가 사도 요한을 다시 데리고 다시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 갔다는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 아내 예루살렘을 미리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여기서 요한의 증거를 통하여 우리가 있는 것은 어린양의 신부 그의 아내는 2절에서 소개된 하늘에서 내려온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루살렘의 종합 설계도를 보게 된다.

 

2. 예루살렘의 종합 설계도(11a)

요한은 먼저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여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증거하였다. 여기서 벽옥이란 맑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을 말한다. 다이아몬드와 수정의 특성은 강하고 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른 그리스도의 교회는 믿음에 있어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고 수정처럼 맑아야 한다.

 

두번째로 요한은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기록하였다. 성벽이 있다는 것은 다른 것과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 성도란 거룩히 구별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새하늘 새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문을 통하지 않고는 들어 없음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믿음의 조상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아마 우리가 하늘에 가면 아담으로부터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하여 사무엘과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수많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그들이 세상에서 겪었던 일들 성경의 내용들을 상세히 듣게 것이다.

 

요한은 14절에서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기록하였다. 여기서 기초석이란 성의 토대가 되는 주춧돌을 말한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전3:9) 하였다. 만약 이스라엘의 건축자들이 지혜를 깨달았다면 하나님의 모퉁이 돌이신 예수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성의 규모를 알게 되는데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갈대로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예루살렘은 정사각 입방면체임을 있다.

 

스다디온이란 오늘날 스타디움의 어원으로서 올림픽 경기의 경주 구간을 나타내는 길이 단위이다.  1스다디온이 185m 에 해당하므로 12.000 스다디움은 2.200km에 해당된다. 또한 17절의 성벽의 두께가 144규빗이란 1규빗이 약 45cm이니까 약 65m가 된다.

 

그러면 우리가 살게 될 새 예루살렘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요한이 성의 면적을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은 정사각 입방체라 하였으므로 어림잡아 성의 크기는 약 110 km3체가 된다. 이 크기는 거의 달의 크기와 같은 면적인데 세상에 이처럼 큰 성이 어디에 있는가?  만약 한 사람이 살아갈 면적을 1 입방 마일(1.6km)로 잡는다 할 때 33억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 10평정도도 안되는 작은 방에서 살고 있는데 이처럼 넓은 공간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B. 예루살렘의 특성(18-26)

요한은 성벽의 재료에 대하여 벽옥과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 하였다. 이 세상에 어떤 제련공이 있어서 유리처럼 맑은 정금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손톱만한 다이아몬드를 가져도 부자라 하는데 성벽 전체가 다이아몬드라니 이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다.

 

사단은 세상의 부귀영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로하여 사람들은 금과 은과 각양 보석들에 현혹되어 서로 시기하고 도적질하고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살 새 도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유리처럼 맑은 금과 진주로 장식하였고 성벽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졌다.

 

어디 그뿐이랴! 요한이 본 성의 열두 기초석은 첫째는 벽옥(다이아몬드)요 둘째는 남보석(싸파이어)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에메랄드)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루비)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하였다. 이 보석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가슴에 붙인 각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들이다.

 

 1. 예배처소

요한은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이해할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영적인 해석을 통해서 다른 내용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이해하는 하나도 의심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의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늘의 천사든지 땅의 생물과 하늘의 하늘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뜻과 그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하신 것인데 생명을 바쳐 구원한 아들 어린양의 신부에게 무엇이 아까우시겠는가?

 

더욱이 이들은 세상에서 모든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고통과 슬픔을 모두 인내하고 거룩한 복음의 삶을 살지 않았는가? 이제 그의 아들의 아내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이들에게 무엇을 아끼겠는가? 그러니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무엇을 귀히 여기겠는가? 화려한 집을 탐하겠는가? 금은 보석을 탐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세상에서 주는 부귀와 영광을 누린다면 당신은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2. 영광의 (23)

22절에서 요한은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심이라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의 등이 되심이라하였다. 무엇 때문에 성전을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해도 없고 달도 없고 추위와 더위와 태풍도 없고 밤과 낮이 없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새롭게 창조된 초월세계에서 인공으로 지은 성전 따위는 이상 필요 없다.

 

3. 전세계적 통치(24-25)

시편 66 4절에는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할지어다기록되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다.  요한은 만국이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 오리라기록하였다.

 

주님은 처음부터 빛이셨다. 요한은 참빛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1:9,10) 증거하였다.

 

또한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하셨다. 모든 증거가 그대로 성취되는 순간이다.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권세가 있음을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행한 자신들의 영광을 가지고 성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축제에 참여할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는 달마다 축제가 열리는지도 모른다. 주께서 그의 신부 아내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나라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을 가지고 앞에 나아와 재롱을 부리게 될지도 모른다.

 

4. 하늘과 땅에는 누가 살까(25)

주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과 같이 하리라”(25:31,32)하셨다.

 

또한 요한은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닺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기록 하였다. 이미 우리는 이사야의 글에서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60:11) 말씀을 읽었다. 이사야는 어떻게 이것을 보고 있었을까?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것이 있다. 성이 필요한 것일까? 또한 하늘과 안에도 어떤 구별될 사람들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성이란 원래 밖과 구분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성은 요한이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그의 아내인 교회인 것이다. 그를 위해 처음부터 획하신 것이고 예비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늘 땅이 오기 전에 세상에는 살아서 그리스도의 철장 통치 가운데 천년 동안 자식을 낳으며 살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 첫째 부활에 참예한 성도들은 전혀 다른 몸의 구조를 갖고 있다. 천년 잠시 놓임을 받은 사단의 미혹을 받은 자들이 성도들의 진을 두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불을 내려 그들을 소멸하고 미혹하던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유황불 못에 넣게 된다(20:7-12).

 

그러나 미혹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것일까? 그에 대한 성경의 답변은 없다. 다만 성경은 20 12절에서 죽은 영혼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여 백보좌 앞에 나아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고 후는 사망과 음부(지옥) 모두 사단이 거한 게헨나 못에 던져지게 된다.

 

그러면 천년 동안 육체로 살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백보좌 심판에서 면천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것일까? 우리는 21 24절에 만국이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말씀 속에서 한가지 가능성을 발견할 있다.

 

사람들은 대환난을 피하여 육체로 주를 맞이하여 천년왕국에 들어 사람들로서 그들은 최고의 좋은 환경 속에서 엄청난 자손들을 낳아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게 것이다. 아마 그때는 노아 홍수 때와 같은 인구밀도를 이루게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은 24보좌의 통치를 받으며 각각 족속을 따라 왕국을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또한 2013절을 보면 사망과 지옥에 있던 자들이 책들에 기록된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 진다 하였으니 혹시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다면 심판의 부활’ (5:28,29) 나올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여기에 대하여는 분명한 주석을 없으나, 24절을 보면 민족들이 도시의 가운데로 다니며 땅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 것이라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하늘과 땅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되었을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 도성이 지구와 같이 둥글지 않고 사각입방체인 것으로 보아 새로운 질서를 가진 하늘과 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것은 혼자 해보는 상상일까?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나의 상상이 무시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얼마나 영화로운 소망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만이 누릴 있는 무궁무진한 영광이 아닌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땅의 모든 성도들은 더럽혀진 손을 씻고 모두 성결한 신부 수업을 하게 것이라 믿는다!)

 

요한은 27절에서 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또는 거짓말하는 결코 그리로 들어 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27) 기록하였다. 말씀은 8절에서와 같이 오늘날 온전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하는 교회에게 전하는 각성의 메시지인 것이다. 천사는 지금 요한에게 교회의 성도들은 어찌하던지 간에 첫째부활의 영광을 누리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선택은 이글을 읽는 당신에게 있다. 나와 함께 생명의 문으로 들어 것인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인가 스스로 판단하여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계시록22장에서 성경의 끝을 맺게 된다. 주여 부디 어서 오시옵소서.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