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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3:8)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

이요나 2007. 2. 24. 13:34

 (계시록3:8)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

 

(3:8)볼지어다 내가 앞에 열린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을 지키며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오늘은 빌라델피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살펴보자. 빌라델피아 교회는 사데의 동쪽 42키로 지점에 위치한 루디아 주의 작은 성읍으로 좋은 포도의 산지가 있어 양질의 포도주 산지로 유명하다. 빌라델피아라는 말은 버가뭄의 통치자였던 아달루스 2세가 사랑하는 동생 유메네스를 위하여빌라델포스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라는 이름을 지어 주면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살펴 일곱교회 책망을 받지 아니한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다. 교회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환난과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주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가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유대주의자들의 극심한 훼방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증거했다는 것을 통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서머나 교회는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을 받았지만 빌라델피아 교회는 유대주의자들의 굴복을 받았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수세기 동안 끊이지 않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교회로서의 명맥을 이어 회교국이 터키에서 지금까지도 천명의 성도들과 함께 기독교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당시 빌라델피아 교회의 지도자가 누구였는지 없지만  전승에 의하면 지역은 당시 빌립집사의 딸과 동등한 위치의 여선지자가 이곳에 있으면서 부흥을 이루었다고 한다.

 

I. 다윗의 열쇠

빌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7)

 

빌라델피아 교회 사자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캐릭터는 거룩하고 신실하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과 진리는 창조자 하나님의 임재와 인격을 나타낸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에게나는 여호와라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43:15) 하셨다. 따라서 거룩함과 진실함은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표호라 하겠다.

 

  A. 거룩함(Holy)

성경에서 거룩이란 단어는 헬라어 하기오스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가 거하시는 성전을 의미한다. 이사야 선지자는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영광이 땅에 충만하도다”(6:3) 증거하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시대에 와서 거룩함이란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성별 성도로서 부활의 영광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신약의 주제를 크게 구분한다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대목이 것이다. 성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기록 하였고 바울은 주의 죽으심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자로 앞에 세우고자 하셨다(1:22) 하였으며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 증거하였다(살전4:3).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의 자녀 우리가 거룩함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것이다. 

 

B. 진실(True)

헬라어에 진실이란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거짓이 아닌 참을 의미하는 '알레테스'이고 하나는 실제이고 유일하게 참된 것을 의미하는 '알레티노스'이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알레티노스로서 이 단어는 실제를 의미하는 영어 Reality에 가깝다고 하겠다. 따라서 진실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실제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 것이다.

 

주님은 예수께서 참 아들이심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요7:29) 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느니라(요14:9) 하셨다.

 

 C. 다윗의 열쇠

다윗의 열쇠는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권세를 의미한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다(요3:35) 하셨으며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요5:27) 하셨다. 또 계시록 1장 18절에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하셨다.

 

흥미롭게도 이 말씀은 이사야서 22장의 인용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서두에서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홀연히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것으로 그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셉나를 책망하여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사22:16) 하셨다. 셉나는 이방인 출신으로 히스기야 왕 때에 국고를 맡아 국고를 탕진한 자로 앗수르의 침략을 받을 때 애굽의 원조를 주창하던 기회주의자이다.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를 낮추고 그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야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의 집의 아비가 될 것이라’(사22:19-21)하시며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라’(사22:22)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의 주권과 관련된 말씀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마치 교회의 주권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개척교회들은 자립을 하지 못하여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울부짖고 있는 가운데 대형교회들은 서로 다투어 가며 천국에서나 있을 법한 초대형교회 짓기에 혈안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답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는 말씀과 함께 하신 말씀이다.

 

이와 같이 주님은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친히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어 이 땅에서 예정하신 모든 일들을 그대로 하늘에서 성취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 얼마나 멋진 계획인가? 또한 이 계획에 참여한 우리는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가?

 

II. 열린 문과 하나님의 계획(8-9)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리라”(8-9)

 

  A. 작은 힘

우리가 한 인생을 살면서 막히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  아무리 두드려 보아도 열리지 않는 문들이 있어 삶의 고비고비마다 투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하셨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성령의 축복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고 있던 작은 능력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에 기록된 능력은 파워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힘을 의미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의미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많은 능력을 과시하며 자랑하고 있다. 어느 교회는 전도 폭발의 능력을 자랑하며 어느 교회는 사랑의 봉사를 어느 교회는 새벽기도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도의 본분이요 믿는자의 삶이지 과시나 자랑할 일이 아니다. 

 

또한 어느 목사들은 예언이나 병고침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인 것이다. 누가 이러한 능력을 자랑한다면 그는 오만한 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작은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성도들의 살아가는 힘을 말씀하신 것이다. 

 

  1. 육체의 힘

어른들이 말하기를 사람은 밥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당연한 원리이다. 육체를 이루는 각 기관들은 그 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그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식을 먹어야 한다.

 

또한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영과 혼과 육의 삼위일체다. 따라서 영과 혼의 구성체도 각기 필요한 요소를 보충하여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영혼육의 하드웨어에 각기 그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

 

  2. 정신의 힘

우리가 혼에 해당하는 정신 부분에 힘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태어남으로부터 많은 학문과 기술들을 습득하며 또 문화와 예술을 섭렵하고 있다. 그로하여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 말한다. 이것은 모든 분야에 걸쳐 세상을 살아가는 힘인 것이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죽었던 영이 살아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의 요소가 따로 있다. 물론 믿는 우리들도 육체의 힘과 정신의 힘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다시 살아난 우리의 영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고 있다.

 

  3. 영혼의 힘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하시며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 하셨다. 따라서 생명의 떡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려 주신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육체의 끝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다시 살리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를 위해 내리신 생명의 떡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태초로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창조자 이시다(요1:1).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증거한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요17:14) 하시며 저희를 보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 기원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를 지키는 거룩함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이 말씀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시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거룩함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의미한다.

 

  B. 열린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있도록 기회를 주심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주께서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심을 알고 있다. 주님은 내가 살아 오는 동안 많은 길을 여시고 닫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후에도 계속 잘못된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주님은 일본으로 나가도록 길을 여셨고 다시 돌아 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으셨다.

 

꼼짝없이 국제 고아가 되어 버린 나는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하루 만나를 체험하며 살아야 했다그리고 주님은 내게 갈보리 채플의 문을 열어 그곳에서 헌신하게 하셨다. 갈보리 채플의 목사로 기름부음을 받던 하나님은 닫혔던 귀국의 문을 여시고  7년만에 서울로 돌아 오게 하셨다. 

 

서울 갈보리 채플을 개척한 나는 한국 목회자들을 위한 일들을 착수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2년만에 교회 문을 닫게 하셨고 오늘의 한남동으로 이전케 하셨다. 당시 사실 나는 갈보리 채플의 목사는 되었지만 갈보리 채플의 목회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갈보리 채플이 추구하는 성경 말씀에 대한 온전한  깨달음을 갖지 못했었다.

 

  C. 주의 말씀과 이름

이태원 교회를 문을 닫고서야 주님은 눈을 열어 성경을 보게 하셨고 나는 그의 문으로 들어가 그의 메시지를 듣기 시작했다. 계속하여 주님은 앞에 인터넷을 열어 수많은 젊은이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창세기를 보기 시작한 나의 눈은 계시록에 있고,  최근 하나님은 내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웨딩 관련 사역의 문을 닫으려 하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앞에 어떤 문에 열릴 것인지 짐작할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주님은 내가 일을 위해 문을 여시며 하지 말아야 일을 위해 문을 닫으신다는 것이다내가 이것을 깨닫게 것은 내게 아무 능력은 없지만 모든 마음과 생각들을 성경 말씀에 의지하고 후부터이다.

 

오직 말씀을 살펴 오기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매우 하였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 결국 그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문을 외면하고 있음을 본다.

 

그들은 자기 집착에 빠져 주께서 열어 놓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은 계속 열어 놓은 것이 아니다만약 당신이 주께서 열어 놓으신 문을 외면하고 계속 길로 가기를 고집한다면고통의 벽이 이르기까지 당신은 주의 메시지를 듣지 못할 것이다. 이미 당신의 눈은 라오디게아로 있기 때문이다.

 

  D. 거짓의 굴복

흥미로운 것은 주의 책망을 받지 않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가 모두 유대주의자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사단의 () 자칭 유대인이란 이스라엘 국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교리를 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대적하던 유대교도들을 말한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유대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들어와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잘못된 가르침을 하였다유대교의 지도자였던 이들은 설혹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해도 그들에게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가리칠 권세가 없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위해 사울과 바나바와 루기오 그리고 헤롯을 젖동생 마나엔과 같은 예언자와 교사들을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일은 커다란 논쟁이 되어 급기야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로 파송하여 유대주의자와 극한 논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일은 주께서 친히 베드로와 야고보의 지혜의 입을 열어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문제는 잘못된 교리를 유포하는 자들과의 영적전쟁이다. 일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현대판 유대주의자들이 남아 무리를 이루고 잘못된 교리를 교회 중에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갈보리 채플은 유독 유대인들이 많이 출석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교도들로 예수를 부인하며 그리스도 교회를 대적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많은 유대교도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복음에 동참하고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스미스 목사를 비롯한 미국의 갈보리 채플은 매년 이스라엘 방문 투어를 하고 있다. 선두에 변화 받은 유대인들이 있는 것을 주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날이 가까움을 실감하게 된다.

 

III. 영광의 면류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0-11)

 

A.     인내의 말씀

빌라델피아 교회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칭찬은 나를 흥분케 한다. 주께서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또한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하셨기 때문이다. 말씀은 앞에서 말씀하신 그들이 갖고 있는 적은 능력() 언급하신 것이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내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용기와 투쟁을 포함한 인내를 말한다.

 

나는 갈보리 채플의 목사로 부름 받은 내가 무엇을 해야 것인가를 선택하여야 하는 결단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회성장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혼란이었다. 나는 갈보리 채플 목사로 부름을 받기까지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한국교회에서 자랐고 훈련을 받았다

 

교회성장이란 참으로 매력 있는 부분이다. 부귀와 영광이 함께 뒤를 따라 오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 갈보리 채플을 개척할 당시 한국에서의 목사들의 지위는 최고로 존경 받는 시대였다. 지칠줄 모르고 성장하는 대형교회들의 매력은 한국에 새로운 교회의 모델을 들고 들어 나에게 상당한 매력이 아닐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셨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든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였다. 나는 1995 미국 갈보리채플을 처음 방문하며 갈보리 채플에 임한 은혜와 축복을 보게 되었다내게 갈보리 채플의 사역은  예루살렘을 보는 것과 같았다.

 

나는 미국 방문 텔레비전을 통해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다시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것을 목도하였다. 순간 나는 바벨론성이 무너지는 교회 성장의 모순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기록하신 성경말씀을 선택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였다. 배고픔의 인내, 욕망의 인내,  굴욕의 인내가 필요했다그로부터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계시록을 읽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영혼은 그의 말씀에 갈급해 있다.

 

    B. 시험의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 수많은 시험의 때를 만난다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이 아니라 우리의 부주의와 잘못된 선택으로 세상에 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당할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다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우리의 삶에 필요한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고 하나는 우리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있다.

 

그러나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신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이다주님은장치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하셨다이것은 이미 여러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환난의 시험이다 시험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지난 동남아시아 해안에 불어 닥친 쓰나미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미국 멕시코 만을 휩쓸고 허리케인의 참사는 전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이 손을 놓은채 바라보고만 있기 때문이다만약 이러한 재해가 우리나라에 임하였다면 한국은 통체로 날라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환난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환난은 국지적이 아니고 전체적이며 무엇으로도 극복할 없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 보게 요한계시록 6장부터 18장까지는 (three-and-a-half) 동안 땅에 임할 환난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었다물론 기록은 요한의 시점과 현대적 시차에서 오는 물리적인 갭이 내포되어 있어 그것을 읽는 우리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다시 말하여 이상 중에 사도 요한이 오늘날 하늘을 나르는 최첨단 미사일과 인공위성 그리고 핵폭발과 같은 것을 보았다면 그의 지식이 미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서술하였을까 생각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의 살아계심으로부터 그의 사도들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신 아무도 피할 없는  하나님의 예정이다. 다만 우리가 시험에 포함되어 있느냐 아니면 면함을 받을 것이냐에 있다오늘날 많은 믿는 사람들이 이러한 시험이 자신에게는 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메시지에 의하면 시험의 때를 면하는 사람들은 인내의 말씀을 지킨 자들에 국한되어 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당신이 필히 생각해야 것은 만약 당신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것을 믿는다 장차 땅에 임할 시험에 대하여 당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아야 것이다.

 

만약 교회를 위하여 많은 노력과 봉사를 아끼지 않고 사랑을 베풀어 당신의 삶이 그날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시험을 받는 사람들 속에 함께 있어야 한다면 오늘의 당신의 믿음과 교회를 향한 열정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나는 오늘 말씀을 읽으며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시험의 때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미 시험의 징조들이 우리 앞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성경은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기록하였다. 이것은 예화가 아닌 우리 앞에 일어날 일들의 예고로서 그날의 일들이 요한계시록 14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C. 면류관을 지키라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내가 속히 임하리리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하셨다여기서 우리는 그의 날이 매우 임박한 것임을 기억해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신지 천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르지 않았는데 오늘날 말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1. 속히 오리라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경고하였으며 다시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경계하였다.

 

여기서 과연 너희는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말한 것이다믿는 자들이 미혹을 당하여 말씀 밖에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이 모두 돌이키고 주의 가운데 서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2, 최후의 승자

또한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누구에게 면류관을 탈취당할 것을 경고하신 것이 아니라 만약 누가 주께서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인내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였다면 면류관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 간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것은 최종적인 승자를 언급한 것이다.

 

사실 면류관이란 최종적인 승자에게 주는 왕관이다성경에서 면류관이란 말은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예수께서 살아 생전에 받으신 가시 면류관이다(15:17). 그러나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받아야 면류관인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형제자매들을 가리켜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이라 하였으며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우리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증거하였다.

 

또한 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딤후2:5) 하였으며 다시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하였다.

 

또한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들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1:12) 하였고 베드로는 양무리의 본이 복음의 사역자들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벧전5:1-4) 권면하였다. 이와 같이 면류관은 맡은 소임을 다한 자들에게 허락된 것이다.

 

IV. 이름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하리라”(12)

 

 A, 성전기둥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약속은 참으로 든든하다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 하셨으니 말이다.여기서 성전의 기둥이란 하나님의 집을 받들고 지탱하는 힘을 의미한다. 오늘날 기관에는 기둥들이 있다. 국가와 단체 마다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따라서 기둥이란 공동체가 추구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중심을 이루게 된다. 국가의 기둥이란 대통령을 위시한 삼부요인들로서 국가를 이끌고   능력의 달인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또한 기업의 기둥이란 회사가 추구하는 경영에 합당한 아이디어와 활동력을 겸비한 인물이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교회에서의 기둥이란 교회를 이끌고 나갈 사역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교회들은 기둥 장로들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유는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주께서 말씀하신 기둥이란 그러한 외적인 요소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끌고 나갈 영적 요소와 핵심적 구성원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사역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요건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것이다.

 

출애굽 당시 고라의 반역이 있었다. 고라는 레위인 고핫의 손자로 그들은 성막 이동 성막의 지성소를 옮기는 임무를 수행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에 하나였다. 그는 모세가 아론의 지파로 제사장을 삼은 지도체제를 반발하여 족장 250명의 지지자들과 융합하여 르우벤 지파 아비람과 다단과 함께 민중반란을 도모하였다(4).

 

모세는 고라를 따르는 자들에게 고라의 향로를 중심으로 서게 하여 하나님의 판단을 물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와 함께 자들을 삼켜 버렸다. 이로부터 그들의 향로로 놋판을 만들어 제단을 덮게 하여 보는 이의 경계를 삼았다(4:19-40).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 속에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무엇을 추구하였는가 생각해 필요가 있다. 땅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각자 자기 교단과 교파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목적을 따라 교회부흥을 추구해 왔다.  결과 땅에는 대형교회들이 줄을 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외적인 부흥만을 위한 것이라면 통일교나 여호와 왕국보다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기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것이다. 바울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4:11,12) 증거하였다. 또한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것을 알게 하려함이니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말씀이다. 이것은 그가 처음부터 이곳에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님을 있다. 갈보리 채플에는 외부 교회에서 전향한 사람들이 많다갈보리 채플을 일으킨 스미스 목사 자신이 침례교로부터 나온 분이다. 데이빗 호킹, 레리 테일러 목사 역시 모두 다른 교단으로부터 독립한 목사들이다나는 결코 말씀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교회의 진리의 기둥이 오직 말씀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B. 예루살렘과 이름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이어진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합당한 이해를 위한 각별한 사고가 필요한 약속이다. 주님은 이들에게 개의 새로운 이름을 기둥에 새기실 것을 약속하셨다. 먼저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번째는 예루살렘의 이름이며 번째는 나의 이름이다.

 

빌라델비아는 사데와 같이 지진으로 번이나 폐허가 되었는데 때마다 로마의 디베료 황제와 베스파시안 황제는 빌라델비아 성읍 재건에 은혜를 베풀었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이러한 황제의 은덕에 감사하여 성의 이름을 ‘네오가이사랴’ 이름으로 불렀었고 번째에는 '플라비오'라는 이름으로 황제의 은총을 기렸다. 그러므로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이름을 갖는다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아직 나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늘에서 내려 오는 하나님의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없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에게 주어지는 이름을 발견할 있으며 20장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을 보게 된다.

 

계시록 19 11절에는 보라 백마와 자가 있으니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리라 기록하였고 다시 눈이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고 이름 것이 하나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그가 뿌린 옷을 입었는데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기록되었다.

 

계시록 22장에는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22:4) 기록되었다. 모든 말씀들을 살펴 보건 하나님의 이름과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는 계시록이 끝날 이르러 명확히 알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