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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47:19) 왜 야곱에게 말씀을 보이셨는가?

이요나 2007. 2. 26. 10:07

(시편147:19) 왜 야곱에게 말씀을 보이셨는가?

 

(시147:19)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시편147편은 할렐루야로 시작되는 시로서 매우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느혜미야를 중심으로 성전을 재건할 때 지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지배 아래서 뿌리를 내리고 이방민족 가운데서 번성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때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명령을 내리고 유대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70년 동안 이방 속에서 온갖 설움과 고통을 당한 성민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귀환 명령은 천지창조와 같은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I. 찬송 받으실 광대하신 주의 능력(1-4)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 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1)

 

서두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들의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가대에 줄을 지어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을 드리는 모습은 정말 거룩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생활이 진정 하나님을 찬송할 때처럼 아름다운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습니다.

 

시편기자는 2절에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고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노래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젊었을 때 포로가 된 사람들은 모두 이방에서 죽고 사실 돌아 온 사람들은 노인들이나 이방에서 태어난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망하여 이방민족 가운데 포로가 되면 그 백성은 모두가 독립운동가처럼 충성스런 국민이 됩니다. 아마 외국에 나가서 오랜 생활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민족의 고귀함과 고국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께 예배를 드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그들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속히 고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멍든 가슴의 한을 풀어내는 가장 좋은 치료였습니다.

 

4절에는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기록되었습니다. 하늘의 별은 인간이 존재한 이래 연구하고 조사를 해왔어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가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신다(욥9:7)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하늘의 군상들을 그가 친히 통치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 이후 이스라엘의 멸망 이래 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의 백성을 고토로 돌아 오게 하셨습니다(겔36:24). 이런 일은 그 어느 제왕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이제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땅에 옛 다윗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히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시온성 곧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II. 하나님의 지혜(5-11)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5)

 

이제 시편기자는 주의 광대하심과 그의 능력과 지혜를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라는 칭호는 물론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겨우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만을 생각하고 말할 뿐입니다.

 

오늘날 각 나라들이 서로 경쟁을 하듯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달을 비롯한 지구와 가까운 별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일부분에 속한 것입니다. 인간은 수천년 동안 하늘의 만상을 연구하고 궁리하였지만 그 비밀을 풀지 못하였습니다. 그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0장에서 하늘의 십이궁성의 비밀을 알고자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의 교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힘을 빌려 하늘의 비밀을 파헤치려 하였습니다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그들이 경영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A.      겸손한 자를 붙드심(6)

6절에서 기자는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여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를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대 원칙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한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를 아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자랑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는 고백이 겸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제단 앞에 선 죄인과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눈물을 흘린 죄인이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평안히 돌아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8:9-14). 그러나 인간은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아는 척하기도 하고 자랑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악인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은 넘어짐의 선봉이라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말하여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하였습니다.

 

원래 처음 하늘에는 구름이 없었습니다. 땅이 물로 둘러 쌓여 있어 지구는 온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 이후 지구는 인간의 지혜로 만든 문명의 기기들은 지구를 보호하고 있는 오존층이 깨어져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과 같은 위협에 노출되었습니다. 최근 학자들은 이 지구는 금세기 말이 지나기 전에 북극의 빙하가 없어져 생태계의 위협은 물론 기상의 대변화로 큰 재해가 있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있는 한 구름으로 하늘을 가리우고 태양의 위협으로 그의 백성들을 지키시며 또 때를 따라 비를 주어 산천의 초목이 자라게 하시고 이 땅에 기식하는 생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창고에 거두어 들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들을 기르시니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B. 하나님의 마음(10)

인간은 늘 이 땅의 지배자가 되기를 꿈꾸며 늘 전쟁을 예비하고 홀로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하여 달려 나아가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이에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10)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망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니라(신17:16) 하셨습니다. 말들은 전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의 다리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 인간의 지혜와 생각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승장구 이기게 되자 사단의 충동을 받아 전쟁에 나아갈 장정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 커다란 재앙을 받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전쟁은 사람의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하였습니다. 잠언서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광대하심과 그의 능력과 지혜를 깨달아 그에게 의뢰하는 것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III. 하나님의 통치(12-20)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12)

 

A. 예루살렘과 시온의 기쁨(12)

이제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의 복을 말하여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12) 노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며 시온은 택함을 받은 주의 성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의 성도 곧 교회를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성도의 복은 먼저 문빗장을 견고케 하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받는 공격을 주께서 막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며 나의 산성이며 나의 방패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 놓아도 그것일 지키지 못하면 허사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였습니다. 능력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출입문의 문빗장을 견고히 하셔야 만사가 튼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평안히 살 수 있으며 아름다운 식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지혜를 깨닫지 못하여 그 많은 재물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원수의 손에 내어 준일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두번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의뢰하십시오. 주의 성도들은 여호와가 파숫군이 되어야 평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B.     복음의 전파(15)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우리의 문빗장을 채우시고 또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로 그의 경내에서 평안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지자는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씀이 속히 달린다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선포를 언급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아름다운 강을 이루어 만물들이 소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록 22장에서 길가로 흐르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강을 보게 됩니다. 그 강가에는 달마다 열매맺는 나무가 서 있고 강가에는 어부가 서 있으며 나무 잎은 약초로 사용하며 이 강이 이르는 곳은 다시 소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말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19절에서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 보이시는도다 기록하였습니다. 하필이면 왜 야곱에게 보이신 것일까요? 야곱은 바로 세상 가운데 강한 육체적 속성을 가진 우리를 지칭한 것입니다.

 

야곱은 비록 찬탈자라는 사기꾼의 이름을 가진 자라도 결국 하나님과 싸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종적인 승리를 언급한 것으로 이 복은 오직 태어남으로부터 받은 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복 주시돠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1:3-5) 증거하였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의 아름다운 이름과 거룩한 뜻을 우리에게 두셨사오니 나로 하여 오직 여호와 우리 주를 찬양하게 하옵소서. 내가 영원히 주를 송축하오리이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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