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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44:1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의 복

이요나 2007. 2. 26. 10:08

(시편144:15)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의 복

 

(시144:15) 여호와로 자기 백성을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I. 나를 가르쳐 싸우게 하시는 여호와(1-2)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말씀은 시편 144편입니다. 본문에서 읽어 보았듯이 시편144편은 인생에게 있어 커다란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1절에서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그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고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신다는 것은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섬세하게 다루신다는 말씀입니다.

 

A. 나의 반석되신 여호와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를 싸움꾼으로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인생은 싸움판입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 이 땅에서 평화로운 때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평화로운 것 같아도 지구의 한쪽에선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 국가간의 전쟁뿐이겠습니까? 작게는 싸움 부부와의 싸움, 가족과 친지 그리고 직장에서의 경쟁과 정치판의 싸움은 정말 치열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인생에게 있어 가장 큰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다시 말하여 자기 생각과의 싸움 자기 육체와의 싸움으로 한 세상을 살게 됩니다. 결국 세상과의 싸움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가르치실까요? 먼저 여호와가 나의 반석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성경적 용어로서 흔들림 없는 커다란 토대가 되는 바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며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라(고전10:4)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광야에서 물을 구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의 지팡이로 반석을 쳐 물을 내신 일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실 굳은 반석에서 물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만 여기서 반석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을 때 불가능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B. 나의 인자

다윗은 2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반석되신 우리의 주 여호와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입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인자하심이 없이는 우리를 대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자란 안내와 자비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심에 있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C.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두번째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요새요 산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새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서 산으로 두른 성을 말합니다. 적의 침공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좋은 지리적인 조건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에서 이기는 가장 첫번째 조건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지형적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 성의 침입로를 알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들어 올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 여호와께 속해 있으면 그 누구도 우리를 침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가장 안전한 곳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게 있는 자는 그 누구도 빼앗을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D.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네번째로 다윗은 여호와는 나를 건지시는 자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요라 노래하였습니다. 여기서 나를 건지시는 자란 이미 내가 어떤 환난 중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수렁에 빠져 본 일이 있으신지요? 나는 여러 번 인생의 깊은 수렁에 빠졌었습니다. 담배와 술과 마약과 음란과 탐욕의 수렁에서 나를 구원하신 분은 주 여호와 곧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후에는 사단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사단은 나를 다시 탈취하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나를 찾아 다닙니다. 그들은 광명한 사자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하고 달콤한 유혹으로 나를 미혹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은 재물과 음행입니다. 하나는 눈의 욕망이요 다른 하나는 육체의 소욕입니다. 이것으로부터 나를 지키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실 뿐입니다.

 

 E. 통치자로 키우심

끝으로 다윗은 흥미롭게도 내 백성을 내게 복종 시키는 자시로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축복받은 왕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을 복ㅈㅇ 시키는 데는 오랜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는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사울 왕에게 쫓기며 겨우 자기 지파에게 인정을 받았던 반쪽짜리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온전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다윗을 유다와 이스라엘의 백성들로 복종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지난번 대선은 무엔가에 홀렸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며 혼란 뒤에는 평안이 찾아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 말씀과 같이 지도자가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였으면 합니다. 그러면 그가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주께서 그의 백성들을 그에게 복종 시키실 것이니다.

 

II. 인생무상(3-8)

여호와로부터 이와 같은 축복을 받은 다윗은 이제 자기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인생이 무엇이 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라는 질문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하늘의 신이십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오로지 자기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에게 이처럼 영광스러운 은혜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어느 사람도 우리를 이처럼 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A.     허망한 존재

다윗은 인생을 말하여 사람은 헛 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나이다(4) 증거하였습니다. 헛 것이란 존재가 아닌 것 무의미한 존재 무가치 보이지 않는 것 좌우간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위대한 일을 했다해도 인생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진시황제의 영화가 무슨 소용이며 나폴레옹의 영웅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들은 다 죽어 없어진 존재들입니다.

 

나는 가끔 지나간 나의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한 때 잘 살던 사람들은 죽은 자식 뭐만지듯이 지나간 일들에 대하여 후한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지금처럼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에 쫓기며 다람쥐 채 바퀴를 돌듯이 헛 걸음질을 치며 달려 갔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면 나 역시 질병을 앓고 누어있었을 것입니다

 

B.     인생의 소망

다위은 5절에서 주께서 하늘을 두르고 강림하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인간의 영적 한계를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의 호흡이 멈추면 그 존재의 무의미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음세상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의 고통입니다.

 

바울은 피조물의 한계를 말하여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니니 (로마서8:21,22) 하였고 다시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로마서8:23)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두번째로 인생의 불가항적적인 고통에 말하여 번개로 대적을 흩으시고 주의 살로 저희를 파하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들과의 전쟁입니다. 이 땅에 인생이 살아 있는 동안은 인간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인류가 존재한 이레 그 누구도 세상을 제패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전 6자 회담에서 북한의 핵동결 문제가 해결된 듯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일단 매듭을 지은 것인지 영구히 매듭을 지은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북한은 결국 100만톤의 기름을 지원하는 대가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개발한 핵무기가 폐기 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핵개발을 용인치 않게 하려는 미봉책인 것 같습니다. 그 중심에 선 한국이나 미국이 모두 대선이라는 명분이 있고 또 중국은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어떻게든지 협상을 이끌어 내려 했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세번째로 다윗은 주의 손을 펴사 큰 물과 이방인의 궤사한 입술과 거짓 오른 손에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큰 물이란 인생을 망하게 하는 세상의 풍속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문화의 흐름 같은 것이지요. 오늘날 동성애가 마치 아름다운 성문화인 것처럼 화려하게 포장되고 있습니다. 도저히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큰 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방인의 궤사한 입술과 거짓 오른 손이란 잘못된 지식들 곧 하나님의 진리를 외곡하는 불의한 종교와 경제력을 말합니다. 곧 물질만능시대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우리는 최종적으로 멸망을 당하는 종교 씨스템 바벨론과 화려한 세상의 지배자들을 모두 멸망시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III. 나의 새노래

끝으로 다윗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소망에 대하여 노래를 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새노래로 노래하며 열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로다하였습니다. 여기서 새 노래란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잘못된 모든 지식들에서 벗어나 인생을 영화롭게 하는 새 노래를 의미합니다.

 

저는 가끔 다른 교회에서 상담을 하러 오는 젊은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자기 교회에서 교사를 하며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너무 무지하기만 합니다. 그들의 언행은 종교적이고 삶의 행동은 세상 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할렐루야와 아멘이 습관처럼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의 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을 가지고 의의 논쟁을 버리던 바리새인들이나 율법사와 같습니다.

 

다윗의 새노래에는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장성한 지식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도로 충만해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우리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는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 데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창고에 먹을 것이 가득차고 들에 양이 가득하고 아무도 우리를 침략할 자가 없다면 우리가 남을 대적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무엇을 소망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복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나의 반석되신 주여, 당신은 나의 요새요 산성이며 피난처입니다. 나의 모든 소산과 나의 발걸음을 지키시며 내 생명의 호흡을 주관하시는 왕이십니다. 내가 오직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나이다. 부디 나를 받아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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